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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100톤과 맞바꾼 북한 술 3500병, 한국 세관에 묶인 이유

2시간 전
한국 세관에 보관 중인 북한산 주류
정익현 이사장 제공
한국 세관에 보관 중인 북한산 주류

지난해 가을 한국 인천세관에 도착한 북한산 주류 3500병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통일부의 반입 승인을 받아 국내로 들어왔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통관 절차를 마치지 못해 반년 넘게 세관에 묶여 있어서다.

이번에 반입된 물품은 북한의 '고려된장술' 1200병과 '들쭉술' 2300병이다.

고려된장술은 40도에 달하는 북한판 양주로, 된장과 발효콩, 개성고려인삼 등으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매체는 이 술을 최현실 박사가 최근에 개발했다며 건강 증진 효과가 있다고 소개했다. 최현실은 북한의 국주인 '평양소주' 개발자다.

들쭉술은 백두산을 비롯해 자강도와 양강도 등 북한의 북쪽 지방에서 자생하는 들쭉나무(블루베리의 한 종류)의 열매로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들쭉술이 한국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당시 이 술이 건배주로 사용되면서부터다.

어떻게 들어왔나

북한산 주류는 북한 남포항에서 출발해 중국 대련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 술을 들여온 정익현 우리농사서로돕기협동조합 이사장은 BBC에 이번 거래는 물물교환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북한 측에 설탕 약 100톤을 제공했고, 그 대가로 술 3500병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정 이사장에 따르면 설탕은 중국에서 약 7500만원을 주고 구매한 뒤, 육로를 통해 북한 신의주에 보냈다.

정 이사장은 "중국은 단순 경유지였을 뿐"이라며, "술을 선적한 선박이 북한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선하증권(Bill of Lading, B/L) 등의 서류를 갖고 있다"고 했다.

이번에 북한산 주류가 반입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대북 민간교류 기조 변화가 있었다.

정 장관은 지난해 7월 취임 직후 "민간 접촉을 전면 허용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과거 정부에서 유지돼 온 '북한주민 접촉신고 처리 지침'을 폐기했다. 민간 교류를 통해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겠다는 구상이었다.

정 이사장은 북한 무역회사 상명 등과 계약을 맺고 지난해 9월 두 차례에 걸쳐 고려된장술과 들쭉술 등 총 3500병을 들여올 수 있었다.

왜 세관 통과 못하나

북한 술 3500병이 아직 한국 세관을 벗어나지 못한 직접적인 이유는 해외제조업소 등록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외제조업소 등록은 식품을 수입하기 전 해당 제조 공장 및 시설을 식약처에 등록하는 절차를 말한다. 수입 식품이 현지의 관리 체계 아래 생산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현장 실사에 동의한다'는 제조 공장 대표의 서명이 있어야 한다.

식약처는 지난해 정 이사장이 들여온 물품에 대한 해외제조업소 등록 신청을 반려했다. 필요한 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천 세관에 보관 중인 북한 고려된장술
정익현 이사장 제공
인천 세관에 보관 중인 북한 고려된장술

식약처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제조업소 등을 등록하지 않고서는 수입신고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통일부의 반입 승인과 별개로 식약처 등록이 이뤄지지 않으면 실제 통관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정익현 이사장은 "북한산 식품은 일반 해외 식품처럼 관련 서류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예를 들면 북한 기업에는 사업자등록증이 없기 때문에 그런 서류를 제출하기가 쉽지 않다"며 "북한 공장의 대표가 실사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해주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산 물건이 중국 등 제3국을 거쳐 거래가 이뤄질 경우, 원산지와 거래 경로를 입증하는 문제는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중국 단동의 한 매장에서 판매 중인 북한 들쭉술
BBC 독자 제공
중국 단동의 한 매장에서 판매 중인 북한 들쭉술

시행령 개정해 통관 완화

정부는 북한산 주류가 세관에 묶이게 되자 통일부와 식약처, 국정원, 관세청 등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응 방안을 논의해 왔다.

지난 1월 정부는 '남북교류협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2월에는 통일부와 식약처 공동으로 '북한산 식품등의 반입 절차 등에 관한 고시'를 제정했다.

고시는 북한산 식품 반입 때 해외제조업소 등록 여부를 실무협의회를 통해 판단하고, 현지실사가 어려운 경우 다른 국가의 전문기관 등에 실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했다. 북한산 식품의 특수성을 반영해 절차는 완화하되, 안전성 검증은 별도로 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지난 1월 4년 만에 대면으로 개최한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도 남북 협력기금 지원과 함께 교류협력 추진 기반 정상화를 강조했다.

다만 제도가 바뀌었다고 해서 곧바로 통관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최근 당사자(정익현)에게 보완 서류 제출을 요청했고, 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통관 요건으로 제시된 사항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식약처 관계자도 "(고시 제정 등으로) 절차상 가능성은 열려 있다"면서도, "당초 제조시설 등록에 필요한 영업등록증 등 증빙 서류가 제출되지 않았거나 미비해 세관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된장술 9만원, 들쭉술 10만원'

북한 술이 세관을 통과할 경우 얼마에 팔리게 될까.

정익현 이사장은 고려된장술 500ml는 약 9만원, 들쭉술 720ml는 약 10만원에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들쭉술 등 북한 주류는 과거 북한과의 접경 지역 일대에 위치한 통일전망대나 일부 주류 판매처에서 팔린 적이 있다. 당시 가격은 들쭉술 720ml에 4만5000원 정도였다.

2010년 5.24 대북제재조치 이후 남북 교역 중단이 길어지면서 당시 반입 물량은 대부분 소진됐고, 대신 한국 내에서 만들어진 들쭉술이 판매되기도 했다.

정 이사장은 이번에 다소 비싼 가격을 계획한 데 대해 물가 상승과 물류비, 세금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주세와 교육세, 부가가치세, 종합소득세까지 반영하면 원가가 상당히 올라간다"고 했다.

중국 단동에 위치한 북한 식당에서 판매 중인 대동강맥주
BBC 독자 제공
중국 단동에 위치한 북한 식당에서 판매 중인 대동강맥주

정 이사장은 된장술과 들쭉술이 시중에 유통될 경우, 향후 대동강맥주와 평양소주 등 다른 북한산 주류를 들여오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대동강맥주는 북한이 2000년대 초 영국의 양조 설비를 들여와 생산을 본격화한 맥주 브랜드다.

정 이사장은 대동강맥주를 대량으로 들여오고, 나아가 북한산 된장과 고추장, 김치류 같은 식품으로 교역 품목을 넓힐 계획이라고 했다.

과거 북한 소설책 등의 반입을 시도했던 정 이사장은 오래전부터 남북 민간 교류 확대를 주장해 왔다.

지난 2017년에는 금강산샘물의 국내 반입을 추진하는 등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 확대에 앞장서 왔다.

그는 "남북경협을 통해 교역량이 늘어나야 남북관계 회복의 계기도 마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설탕 100톤과 북한술 3500병이 물물교환 방식으로 거래됐다
Getty Images
설탕 100톤과 북한술 3500병이 물물교환 방식으로 거래됐다

북한은 왜 설탕을 받았나

한동안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적 지원과 한국 정부 및 민간단체의 지원 및 교류를 일체 거부해 온 북한이 이번 거래에서 설탕을 받아들인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북한에서 설탕은 가격이 높아 일반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쓰기 쉽지 않은 품목으로 거론된다. 이 때문에 단맛이 필요할 때는 사카린 같은 대체 감미료를 쓰는 경우가 많고, 설탕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이나 특정 용도에 더 많이 쓰인다.

코로나19 시기 국경 봉쇄와 대북제재 여파가 겹치면서 북한에서는 설탕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다. 최근 북한은 중국산 설탕 수입을 확대한 것으로 파악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따르면 교역 품목인 북한의 술과 한국의 설탕은 무기나 전략물자와는 성격이 달라서 대북제재에서 비껴나 있기도 하다. 다만 유엔 대북제재 적용 여부는 품목 자체뿐 아니라 거래 구조와 결제 방식, 자금 흐름까지 함께 따져 판단된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과거에도 북한에 설탕을 전달하고 북한 술을 가져오는 물물교환 방식을 추진했다. 지난 2020년 당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개성고려인삼술, 들쭉술 등을 한국의 설탕과 맞바꾸는 물물교환 방식을 검토한 바 있다.

정 이사장 역시 이번 거래방식에 대해 현금 거래에 대한 부담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결국 이번 거래에서 설탕이 오간 것은 북한 내 수요가 큰 품목인 데다 현금 거래 부담도 덜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월 한국을 "철저한 적대국이며 영원한 적"으로 규정했다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월 한국을 "철저한 적대국이며 영원한 적"으로 규정했다

남북 교류의 현주소

북한 된장술과 들쭉술 3500병이 세관에 장기간 보관 중인 상황은 남북 교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반입 자체는 성사됐지만, 이후 필요한 서류 확인과 보완 절차를 북측과 직접 협의할 통로는 사실상 완전히 막혀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남북관계를 '평화롭게 공존하는 관계'로 관리하겠다는 기조를 내세우며, 민간 교류와 협력 기반 복원을 정책 과제로 제시해왔다.

반면 북한의 공식 대남 기조는 정반대 방향이다. '북남 두 국가론'을 강조한 데 이어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월 제9차 노동당 대회에서 "한국은 철저한 적대국이자 영원한 적"으로 규정했다.

이처럼 북한이 대남 채널을 완전히 닫아둔 상황에서, 북한산 주류의 개별 반입이 곧바로 남북 교역 확대 흐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숙 전 유엔대사는 BBC에 "남북 간 교류는 정치적 상황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고, 북한이 남한을 '적대적인 두 나라 관계'로 보며 모든 분야의 교류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주류 반입이) 민간 교류 재개의 가능성이나 선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 전 대사는 이어 "특히 북한 지도부가 남한과의 교류를 철저히 봉쇄하고 통일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면 처벌하는 상황"이라며 "한국 정부가 아무리 접촉 제스처를 취하더라도 북한은 완강히 거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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