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미 인근 태평양서 마약 밀수 혐의 선박 4척 공습해 14명 사살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미군이 지난 27일(현지시간) 태평양 동쪽 공해상에서 마약 운반선으로 추정되는 선박 4척을 공습하여 14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멕시코 해군은 태평양 연안 도시 아카풀코에서 약 400마일 떨어진 해상에서 이번 공습의 유일한 생존자를 여전히 수색 중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태평양과 카리브해에서 마약을 운반하고 있다며 선박들을 공습하고 있는 가운데 가장 최근 벌어진 사건이다.
헤그세스 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단행된 공습이라고 설명한 이번 사건은 자국으로의 마약 유입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작전이 한층 격화했음을 보여준다.
한편 이러한 공습에 인접 국가들은 비난하고 나섰으며, 전문가들 또한 그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몇몇 의원들이 우려를 표명하며 대통령이 공습을 명령할 권한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28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이러한 공격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자국 외무장관과 해군 장성들에게 미국 대사와 만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모든 국제 조약이 존중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현재까지 이러한 공습으로 최소 57명이 숨졌는데, 이로 인해 미국과 콜롬비아 및 베네수엘라 정부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공습 대부분이 남아메리카 근처 카리브해에서 발생했으나, 최근 미국은 태평양 지역에도 관심을 돌리고 있다.
헤그세스 장관은 X를 통해 지난 27일 공격한 선박 4척은 "우리 정보기관에 의해 적발되었으며, 마약 밀매 경로를 따라 미약을 싣고 이동 중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첫 번째 공습에서 "마약 테러범" 8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2차례의 공습으로 각각 4명, 3명이 숨졌다.
이번 공습의 생존자는 1명이다. 헤그세스 장관에 따르면 멕시코 수색구조 당국이 "사건을 넘겨받아 구조 작업 조율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생존자의 상태나 현재 위치 등은 불분명하다. 멕시코 해군은 성명을 통해 "해상에서의 인명 보호를 위해" 순찰정과 항공기를 급파하여 수색 작업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미국의 폭격으로 불길에 휩싸이는 여러 선박의 모습을 담은 영상도 공개하며, "우리 국방부는 20년 넘게 다른 나라들을 방어해왔다"며 "이제 우리는 우리의 조국을 지키고 있다"고 적었다.
지금까지 최소 4차례의 공격이 주요 마약 밀매 경로로 손꼽히는 태평양에서 이루어졌으며, 나머지는 카리브해에서 이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는 공해상에서 선박을 폭격할 법적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작전이 육상 표적까지 확대될 경우 의회의 승인을 구할 수도 있다고 지난주 시사했다.
또한 육상 표적을 공습할 "준비가 완전히 되어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마약 밀매 차단 작전이 한 단계 더 고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공습에 대해 국제법 전문가들과 베네수엘라·콜롬비아 양국 정부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 노터데임 대학교의 국제법 전문가이자 국방부 군사 교육자 출신인 메리 엘런 오코넬 교수는 "범죄 용의자들도 적법한 절차를 밟을 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마약 밀매 용의자들을 즉결 처형하는 것은 마약 밀매보다도 더 큰 범죄"라고 덧붙였다.
지난주 BBC '뉴스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마우리시오 자라밀로 콜롬비아 외무부 차관은 이러한 공습은 "공정하지 않으며 국제법 위반 행위"라고 지적했다. 또한 선박에 있던 이들은 "자신을 방어할 기회조차" 없었으며, "어떠한 절차나, 사법적 명령 없이" 공격받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러한 공격은 미국과 양국 정부 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뤄졌다. 미국은 마약 밀매를 막지 못하고 카르텔이 "활개 치도록" 놔두었다며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미군은 카리브해 지역에는 병력, 항공기, 함정을 배치했으며, 지난주에는 세계 최대 전함인 'USS 제럴드 R. 포드'호를 해당 지역으로 파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마약 밀매 조직의 수장으로 지목했으나, 마두로 대통령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미군 증강이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정적인 마두로 대통령을 권좌에서 몰아내기 위한 시도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베네수엘라 법무장관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정부를 전복하려 하고 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미국이 금, 석유, 구리 등 베네수엘라의 천연자원을 빼앗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미국은 국제 사회에서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비난이 이어진 2024년 베네수엘라 대선 이후 마두로를 합법적 국가 정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여러 국가 중 하나로, 야권 측 개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야당 후보가 압도적인 표 차로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