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의 수류탄을 친구가 밖으로 내던진 덕에 전 살았습니다'

2년 전인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를 덮친 하마스의 공격 당시, 네팔 청년 비핀 조시는 하마스가 던진 수류탄을 벙커 밖으로 내던진 것으로 전해진다. 비핀은 이후 인질로 끌려갔다.
단 바하두르(27)는 BBC 네팔어 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수류탄 2개가 모두 폭발했다면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비핀이 용기를 내어 한 개를 밖으로 던졌다"고 했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최근 휴전 합의에 따라 하마스가 인도한 인질 시신 4구 중 한 구의 신원이 비핀 조시로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당시 23세로 이스라엘의 한 '키부츠(집단농장)'에서 일하던 비핀은 나머지 250명과 함께 인질로 붙잡혔다.
다만 비핀이 언제, 어떻게 사망했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지난 13일 인질 석방 기한 전까지만 해도 가족과 친구들은 비핀이 생존해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생존 인질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었고, 이들은 가장 믿고 싶지 않았던 소식을 접했다.
비핀, 단을 포함한 네팔 청년 17명이 농업 유학생으로 이스라엘에 도착한 지 3주가 조금 넘은 날, '알루밈 키부츠'가 공격을 받았다.
단은 "우리도 이스라엘에 전쟁이 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 규모의 지상전이 펼쳐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저 미사일이 날아다닐 경우 지하 벙커에 머물면 안전하리라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의 '일하며 배우기' 프로그램에 따라 초청받은 이들에게 이곳은 장차 네팔에서 가족들과 더 나은 삶을 꿈 꿀 좋은 기회였다.
단은 비핀의 용기 덕에 자신이 살아 있다고 했다.
단은 "공격 당시 (우리가 대피한) 벙커 근처로 수류탄 2개가 날아들었다"면서 "그런데 비핀이 그중 하나를 집어 들어 밖으로 던졌고, 하나는 안에서 폭발했다. 그로 인해 나와 다른 4명은 부상당했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핀은 다치지 않았습니다. 만약 수류탄 2개가 모두 폭발했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겠죠."
하마스의 공격으로 네팔 출신 학생 10명이 숨졌으며, 포로로 붙잡힌 이는 비핀 뿐이었다.
단은 "그와 다른 이들이 다른 벙커로 옮겨가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본 기억"이라면서 "부상당한 후 나는 움직일 수 없어 첫 번째 벙커에 남아 있었다. 그 후 그가 피신한 벙커에서 2차례 공격이 있었고, 그곳에서 포로로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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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은 비핀의 사망 소식에 무척 슬펐다고 했다. 그들은 네팔 티카푸르 소재 파웨스턴 대학 농업학과 동기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어제 매우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습니다. 모든 네팔인이 슬픔에 잠겼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이 슬픔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단에 따르면 비핀을 포함하여 다들 꿈도 비슷했다. 이스라엘에서 돌아온 이후 조금씩 저축하여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비핀은 축구와 농구를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몇 시간씩 목표와 미래, 꿈에 관해 이야기했죠. 비핀은 외모를 가꾸고 멋진 몸을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휴대전화도 사고 싶어 했죠. 제 휴대전화에는 우리가 함께 부른 우정 노래가 녹음되어 있습니다. 비핀은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지난 14일 이스라엘군 당국은 비핀 조시가 "전쟁 초기, 인질로 붙잡힌 상태에서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단은 만약 그렇다면 국제 사회가 응당 하마스에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지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은 자신은 부상당한 후에도 네팔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으나, 이스라엘 정부가 비핀의 가족을 도와주길 바란다고 했다.
비핀의 직계 유가족은 지금까지 어떠한 성명도 발표하지 않았다.
한편 지난 7일 촬영된 영상에는 그가 가자시티 내 알-시파 병원 내부를 걸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의 가족은 1년 동안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하고 있다가, 2023년 11월경 이스라엘군이 그의 인질 생활 영상을 공개했다.
이번 휴전 협상 체결 몇 시간 전, 비핀의 친척들은 이 영상이 "살아 있는 증거"라면서 기적을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고향인 칸찬푸르구 빔두타의 유가족은 슬픔에 잠겨 있다.

사촌인 키쇼르 조시는 BBC 네팔어 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비핀의 어머니와 누나는 인질 석방을 촉구하고자 미국으로 갔다고 전했다.
키쇼르는 가족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 있다면서 "비핀의 어머니와 누나는 오는 16일 미국에서 돌아온다. 아버지는 깊은 고통에 빠져 있다"고 했다.
한편 비핀의 시신이 가족에게 언제 인도될지도 아직 불분명하다.
네팔 외교부는 이스라엘이 숨진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유해를 네팔로 송환하고자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네팔 외교부는 애도 성명에서 "비핀 조시의 사망 소식에 충격이 크다. 이 슬픔의 시기,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고 밝혔다.
"비핀 조시의 유해가 네팔로 인도된 이후에도 우리는 관련 정부 당국 및 이해관계자들과의 협조와 협력하에 사망 원인 등 진실을 규명하고자 필요한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단은 자신을 포함하여 이스라엘에서 무사히 돌아온 동료들은 빔두타 소재 비핀 가족의 집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를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가족을 돌보고, 지원하고, 위로할 것입니다."
단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상태다.
"저는 현재 네팔로 돌아와 학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만, 비핀의 꿈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