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가을 등반이 위험해진 이유

맑은 하늘, 잔잔한 바람, 눈으로 덮인 히말라야 봉우리가 펼쳐진 그림 같은 모습. 가을철 에베레스트를 찾는 등산객들이 사랑했던 풍경이다.
하지만 이 또한 변하고 있는 듯하다.
기상 전문가들은 몬순(우기)이 전통적으로 등산 관광의 성수기였던 가을까지 이어지면서 날씨를 예측하기 더욱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이 길어진 몬순 막바지 기간 거의 매년 1차례 이상의 극심한 강우 현상이 기록되었는데, 이로 인해 산악 지역은 매우 위험해지고 있다.
지난 4일, 갑작스러운 눈보라가 불면서 에베레스트 동쪽 경사면 근처에서는 관광객들이 대거 고립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약 4900m 고도에서 며칠간 영하의 기온 속 발이 묶였다.
중국 국영 매체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등산객 약 600명이 안전하게 대피하였다. 저체온증과 고산병으로 1명이 숨졌으나, 나머지는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티베트 쪽에서 발생하였으나, 인근 네팔 쪽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져 메라피크 정상 등반을 시도했던 한국인 등산객이 숨졌다.
이 지역을 덮친 폭우와 폭설로 통신망이 마비되면서 외부 세계에는 이 같은 소식이 훨씬 늦게 전해졌다.
네팔 당국은 산사태 및 갑작스러운 홍수로 지난주 약 60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등반 가이드인 리텐 장부 셰르파는 "10월은 보통 맑은 하늘을 기대하는 시기"라면서 최근 몇 년간 등산객들이 예상치 못한 기상 이변 사태를 겪는 일이 잦아지고 있고 했다.
가을이 워낙 관광 성수기인 만큼 이 같은 극단적인 기상으로 인해 "트레킹 사업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원래 인도 북부와 네팔에서는 몬순이 6월부터 9월 중순까지 이어졌으나, 이제는 달라졌다.
네팔 기상청의 아르차나 슈레스타 부청장은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몬순이 10월 둘째 주까지 지속되는 해가 대부분이었다. 확실히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올해 10월 4일과 5일처럼 몬순 시즌 막바지에 찾아오는 폭우와 폭설이다. 슈레스타 부국장은 "짧은 시간에 집중되는 파괴적인 강수" 패턴이라고 표현했다.
히말라야 고지대에서 이는 눈보라와 폭설을 의미한다. 트레킹, 관광 등에 큰 위험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날씨가 급변했던 지난 주말에도 바로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 바람이 쉴 새 없이 몰아치고, 기온이 뚝 떨어지며, 시야가 급격히 좁아졌다. 등산객들을 중간 목적지까지 편하게 안내했던 길이 눈 속에 파묻히며 걷기조차 힘들어졌다.
네팔과 중국의 국경에 위치한 높이 8201m의 초오유산에서도 계속되는 눈보라속에 정상에 있던 등반팀이 일시적으로 물러났다. 총 6명으로 된 이 팀의 가이드를 맡은 밍마 셰르파에 따르면 "팀원들은 폭설이 그친 뒤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에베레스트 동쪽 경사면에 갇힌 등산객들의 상황은 훨씬 더 심각했다.
일부 등산객들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두꺼운 옷을 제대로 차려입었음에도 저체온증과 맞서 싸웠다고 전했다. 눈에 파묻힐봐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대부분의 시간을 제설 작업에 보냈다고 한다.
야크, 말 등을 동원한 제설 작업 등 잘 조직된 구조 작업이 없었다면 비극으로 끝날 뻔한 사건이었다.
이 산을 십여 차례 등반했다는 한 등산객은 BBC에 "(이 계절에) 이런 날씨는 처음"이라고 전했다.
한편 과학자들이 말하는 이 같은 극단적인 기상 현상의 주요 원인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공기 중 수증기량 증가이다.
공기가 습해지며 장기간의 건기 후에도 단기간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몬순 기간이 시작되면 4개월에 걸쳐 비가 고르게 내리곤 했다.
티베트 자치구 라사의 여행사 직원인 파상은 "최근 몇 년간 날씨가 매일 변하면서 고객들에게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9월, 10월은 원래 날씨가 좋아 성수기였으나, 최근에는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잦아지고,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폭발적으로 강력해진 몬순
기상 전문가들은 남아시아의 몬순이 최근 들어 더 강해진 이유가 '편서풍 교란(westerly disturbance)'과 자주 맞물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는 지중해에서 생성되어 동쪽으로 이동하는 저기압대를 가리킨다. 그런데 서풍의 영향을 받아 동쪽으로 찬 공기를 몰고 오면서 북인도, 파키스탄, 네팔에 비와 때로는 눈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저기압대가 따뜻하고 습한 몬순 공기와 만나게 되면 종종 극단적인 기상 현상으로 이어진다.
영국 레딩대학교의 기상학자 악샤이 데오라스는 "몬순이 사실상 폭발적인 엔진을 달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전통적으로는 편서풍 교란은 12~3월 사이, 인도 북부와 히말라야 지역에서 나타나는 겨울 현상이었다. 하지만 이제 기상학자들은 몬순기나 가을철 등 더 일찍 도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네팔 기상청은 에베레스트가 위치한 네팔 동부 지역에 쏟아진 이번 달 초 폭우와 폭설의 원인도 편서풍 교란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 서풍 교란이 몬순 끝자락 기간 남아 있던 저기압대를 자극하여 원래 서쪽으로 이동해야 할 구름을 동쪽으로 밀어냈다고 한다.
또한 과학자들은 지구가 따뜻해지는 가운데 편서풍 교란과 몬순 간 상호작용이 증가하면서 또 다른 특이한 현상이 포착되고 있다고 말한다.
따뜻해진 공기는 구름을 더 높은 곳으로 밀어 올린다. 이에 이러한 기상 현상이 히말라야산맥마저 넘어 티베트 등 이전에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던 지역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 6월 '네이처'지에 게재된 연구는 "따뜻해진 기후와 서풍 및 인도 몬순 간의 상호작용이 결합하며 티베트(청장) 고원을 온난하고 습한 기후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티베트 고원은 늘 기후가 건조한 지역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지역이 따뜻해지고 습해지면 날씨가 불안정해지고 눈보라와 폭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매년 에베레스트의 티베트 쪽 경사면 등반을 주관하는 '알펜글로우 익스페디션'의 수석가이드인 로건 탤벗은 "패턴을 신뢰하기 힘들어졌다. 계절마다 기상 조건을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이는 (히말라야 등반 시) 유연한 일정 관리, 실시간 의사 결정, 노련한 리더십 등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