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 가치 3년 만에 최저...트럼프에겐 오히려 희소식?

미국 달러화 가치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올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한 이후 무역 전쟁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미 통화는 약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발표된 5월 미국 제조업 지수가 3개월 연속 하락한 가운데 달러화 가치는 유로, 일본 엔, 영국 파운드 등 주요 통화 대비 3년 만에 최저치 수준으로 하락했다.
달러 약세는 미국 국민 및 경제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모건 스탠리, JP 모건, 골드만 삭스 등 일부 투자 은행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전쟁이 더욱 격화되고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의 경제에 대한 우려로 인해 달러 가치는 더욱 추락할 것으로 전망한다.

멕시코 소재 경제 단체 'BASE'의 가브리엘라 실러 경제 분석 책임자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보호주의 및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인해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있으며 미국의 명성도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러 책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미국의 성장 전망에 영향을 미치며, 달러를 안전자산으로 사용하는 국가들이 달러의 위상에 의문을 품게 한다고 설명했다.
달러 약세의 직접적인 결과 중 하나는 해외 시장에서 미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좋아진다는 점이다. 반면 미국 내 수입품 가격은 상승하게 된다.
금리
일반적으로 미국의 금리가 낮아지면 투자자나 은행 예금자들이 느끼는 달러의 매력이 떨어져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
따라서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미 연방준비제도(중앙은행 격)가 금리 인하에 신중해지게 된다. 금리 인상은 소비 축소를 유도하기에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자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에 금리 인하를 촉구해왔다.
그러나 연준이 달러 가치를 지키고자 금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로 한다면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동시에 달러 가치의 추가 하락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신뢰 추락
더 넓은 관점에서 여러 경제학자들은 최근의 달러 가치 하락이 미국에 대한 신뢰 추락이라는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반영한 결과라며 우려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경제학자인 배리 아이켄그린은 올해 4월 말 "달러에 대한 글로벌 신뢰와 의존도는 반세기에 걸쳐 쌓아 온 것"이라면서 "하지만 이러한 신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왜 달러 약세를 원하나
수십 년 동안 미국 행정부는 달러 강세를 장려해왔다.
달러 가치가 상승하면 미 행정부의 차입 비용이 낮아지며, 지정학적 관점으로도 국제 사회에서 미국이 강대국이라는 이미지를 투사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이란,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비동맹국의 달러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압박을 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미국의 경제 위기 속에서도 달러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일부 분석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시각이 다르다고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강세가 자신이 추진하는 미국 제조업 부흥의 걸림돌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약달러야말로 자국 제조업의 영광을 회복하고, 지지자들이 말하는 미국의 '황금기'로 돌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실러는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을 촉진하는 강달러 현상을 원하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미국이 국내 제조업을 부양하고, 공장 일자리를 회복하고, 수출을 늘리고, 이미 막대하며 갈수록 늘어나는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달러 가치가 낮아야 한다.
미 현지 언론과 일부 경제학자들은 현재 약달러 현상 이면에는 트럼프의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인 스티븐 미란이 제안한 일명 '마라라고 합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준비통화로서의 위상에 대한 의문
준비통화는 전 세계 중앙은행이나 당국이 보유하는 외국통화로, 국제 거래, 투자, 부채 상환 등에 사용된다.
이른바 '마라라고 합의'는 달러가 세계의 주요 준비통화라는 점이 특권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탈산업화를 초래한 부담이라는 시각에 근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달러에 대한 전 세계적인 수요는 달러 가치를 끌어올려 해외 시장에서의 미국산 제품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무역 적자로 이어지며, 미국 제조업체들은 임금과 원가 절감을 위해 해외로 생선 기지를 이전하게 된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 출신이자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과 공공정책을 가르치는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기고문에서 "미란 위원장의 계획은 언뜻 보면 현명해보이지만 사실 잘못된 진단에 근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고프 교수는 달러가 세계 주요 준비통화라는 점도 부분적으로 원인일 수 있으나 "사실 이는 미국의 지속적인 무역 적자를 초래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무역적자에 여러 원인이 존재하는 만큼, 관세가 만병통치약이라는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환율은 자유롭게 움직이는 존재로,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서 달러의 가치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하물며 미 의회도 직접 개입하여 달러의 가치를 올리거나 내릴 수는 없다. 달러의 가치는 거대한 전 세계 외환시장에서 결정되며, 대형 투자자들은 자신들의 기대에 따라 달러를 매매한다.
하지만 미 정부의 경제 정책은 시장에 신호를 보내며, 그 영향은 달러의 가치뿐만 아니라 금리와 같은 주요 경제 변수에도 영향을 미친다.
섬세한 장치
이 모든 요소는 하나의 톱니바퀴가 움직이며 다른 톱니바퀴에도 영향을 주는 정교한 기계장치처럼 서로 맞물리며 돌아간다.
실제로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한 관세 발표로 인해 투자자들의 신뢰가 약화되었고, 미 행정부가 재정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국채의 가치가 하락한 바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것이 일시적인 문제일 뿐 구조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보기도 하지만, 이런 신뢰 부족은 달러에 대한 신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즈호 파이낸셜'의 경제학자인 스티브 리치토는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위안화, 비트코인(암호화폐), 금 등 그 어떠한 자산이나 통화도 현재 시장의 모든 수요를 맞출 만큼 크지 않다"면서 "지금으로서는 (달러의) 대체재가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관세 및 달러화 가치 하락으로 인해 수입품 가격 상승이 예상되며 물가 상승 가능성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이들은 생활비를 낮추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공약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의 무역 전쟁, 의회에서 논의 중인 예산안과 감세안, 인플레이션, 금리, 그리고 이 모든 요소가 달러 가치에 미칠 영향 등 현재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가 달러가 아직 회복세로 돌아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진단한 가운데 지금으로서는 답보다 의문이 더 많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