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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조약: '무력침공시 지체없이 군사원조'…4조 조항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2024.06.20
김정은과 푸틴
BBC
북한과 러시아는 19일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세 단계나 격상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19일 북한과 러시아가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관계를 격상한 가운데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을 시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조약 내용을 두고 해석이 갈린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일 전날 열린 북러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합의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 전문을 공개했다.

조약 제4조는 "쌍방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북한과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북한이 ‘유사시 군사개입’을 상정한 옛 소련 시절의 동맹관계를 복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1961년 북한과 옛 소련이 체결한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 제1조에는 “체약일방이 어떠한 국가 또는 국가련합으로부터 무력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온갖 수단으로써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명시됐다.

사실상 '유엔헌장 제51조와 북한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한다'는 내용을 제외하고는 거의 유사하다.

‘유사시 자동군사개입’은 한쪽이 무력침공을 당해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면 상대방은 지체 없이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으로, 해당 조약은 1991년 소련이 해체된 뒤 1996년 공식 폐기된 바 있다.

2000년에 체결된 북러 '우호·선린·협조 조약'에는 ‘유사시 즉각 접촉한다’는 내용만 담겨 있다.

19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이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은 ‘동맹’이라는 단어를 세 차례나 사용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새로운 수준’이라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푸틴 대통령이 “협정에 따라 러시아는 북한과의 군사 기술 협력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히긴 했으나, “두 나라 사이 관계는 동맹 관계라는 새로운 높은 수준에 올라섰다”고 말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는 달리 푸틴 대통령은 ‘동맹’을 언급하지 않았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 조항에 대해 “방어적인 입장일 뿐”이라며 “한쪽이 공격당할 경우 다른 쪽은 유엔 헌장 51조와 러시아, 북한의 국내법에 따라 모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유엔 헌장 51조는 유엔 회원국에 무력 공격이 있을 경우,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을 가질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고려한 러시아의 속내?

김정은과 푸틴
SPUTNIK/KREMLIN POOL/EPA-EFE/REX/Shutterstock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에 맺어진 북러 조약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더 중점에 둔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 이후 진행된 언론발표에서 푸틴 대통령은 “오늘 서명한 포괄적 동반자 협정은 무엇보다도 협정 당사자 중 한쪽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언급한 “상호 지원”이 ‘유사시 자동군사개입’ 수준까지는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양욱 아산정책연연구원 연구위원은 2년 넘게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고려했을 때 “러시아가 현재 그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푸틴이 직접 움직여 북한한테까지 와서 손을 벌리는 상황에서 실제 북한한테 (군사적 원조를) 제공할 수 있냐라고 묻는다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급부 제공이 늘 문제”라고 전했다.

고재남 유라시아정책연구원 원장은 BBC코리아에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러시아가 (북한에) 도움을 받은 상황에서 김정은의 수준 높은 군사 협력 관계 요청을 마지못해 받아들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 정보당국과 유엔 등은 지난 몇 달간 우크라이나에 러시아가 발사한 미사일이 북한 탄도미사일임을 공개한 바 있다.

고 원장은 조항의 내용이 1961년과 유사한 것과 관련해서는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해석도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1961년 당시에는 공산 진영과 자유민주 진영이 격렬하게 대립했던 상황이고, 또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 있어서의 한반도적 상황도 고려했을 때 당시는 '유사시 자동군사개입'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었던 것이죠."

고 원장은 또 “(군사) 지원할 국가가 직면하는 여러 국내외적인 상황에 따라 충분히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확정적인 구속력을 갖는 조항이라기보단 유연성을 갖는 조항이라고 본다”며 “그렇기 때문에 1961년 유사시 자동군사개입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또한 “군사 동맹으로 보기는 어렵고, 준군사동맹적 성격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외교적 형식에 있어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것은 군사동맹적 성격을 갖고 있는 관계 설정이 아예 아닙니다. 러시아는 베트남과 몽골하고도 이와 같은 수준의 외교 관계를 맺었지만, 군사동맹적 성격을 갖고 있는 관계 설정이 아니었습니다.”

홍 연구위원은 “북한이 최대한 러시아와의 관계를 과시하고 한미동맹에 대항할 수 있는 동맹체계를 스스로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과대 포장해서 설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푸틴이 언론발표에서 발언한 내용에 중요한 맥락이 있다고 설명했다.

푸틴은 ‘무력 침공 시 상호 지원’ 부분을 설명하며 “특히 강조하고 싶은 건 최근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공격하기 위해 고정밀 장거리 무기 체계, F-16폭격기와 다른 첨단 무기, 러시아 영토 공격용 장비를 대규모로 공급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입장에서 이러한 공격이 가시화되면 침략을 당했다, 라고 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에 대해 북한이 공개적으로 (러시아를) 지원할 수 있는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 협정의 근거를 만든 겁니다. 그래서 지금의 러시아와 북한의 협력 관계, 소위 말하는 북한이 러시아의 전쟁에 무기를 공급하는 문제를 규정하는 일종의 장치죠.”

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북한의 지원을 사실상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최규빈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개인적으로 자동 군사 개입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조약 제4조에서 명시된 ‘지체 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가 “김정은 측이 더 요구한 부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며 “김정은은 자동 개입이라는 문구를 넣고 싶었을 수 있지만, 푸틴이 부담스러워해서 표현을 완화하면서도 가장 강력하게 표출될 수 있는 단어를 아마 ‘지체 없이’라는 표현으로 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한반도에 위협이라는 시각도

북한 탱크
KCNA/Reuters
왕선택 한평연구소 글로벌외교센터장은 이번 조약이 유사시 자동군사 개입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북러 간의 조약이 1961년 당시의 ‘유사시 자동군사개입’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의견도 있다.

왕선택 한평연구소 글로벌외교센터장은 BBC코리아에 “1961년도 군사동맹 상태로 복원 혹은 격상이 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19일 푸틴이 ‘상호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는 한 등급 낮은 수준의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20일 공개된 조약 전문에서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라는 부분을 봤을 땐 흔히 말하는 자동 군사개입 조항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외국의 무력 침략이 있을 경우, 자국에 준해 방어에 같이 나서겠다는 문장은 군사동맹의 기본적 요건을 다 갖춘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 또한 “이번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의 체결로 북러 관계는 냉전시대의 군사동맹 관계를 완전히 복원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올해 미국 대선에서 ‘미국우선주의’를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면 주한미군의 감축 또는 철수, 한미연합훈련의 축소 등을 추진하면서 미국의 확장억제는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의 핵우산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재 (한국의) 안보정책은 근본적으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왕선택 글로벌외교센터장도 “한국의 안보가 불리해졌다”고 말했다.

“한국이 러시아 및 북한에 대한 외교 협상을 통해 북러 간의 군사동맹을 체결하는 것을 저지했어야 되는데 못한 겁니다. 대한민국 입장에서 위협이 커진 거죠.”

아르메니아 국기와 시위하는 사람들
EPA-EFE/REX/Shutterstock
아르메니아는 러시아 정부가 제2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다며 불만을 표했다

한편 ‘유사시 군사적 및 기타 원조 제공’이라는 조항이 당장은 이뤄졌지만 추후에는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로 러시아와 아르메니아는 1997년 체결된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바 있으나, 2020년 9월 시작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의 제2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 러시아가 개입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에 나고르노-카라바흐 남부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상실했다.

러시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아르메니아 ‘본토’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나, 아르메니아 정부는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가 실질적 안전보장을 제공하지 않는다며 불만감을 표시했다.

왕 센터장은 “러시아의 외교는 특히 약소국에 대해선 철저하게 이익 중심으로, 필요한 경우 언제든 파기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약속해 놓고 필요하면 파기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지금 당장 러시아는 외교적으로 고립된 부분을 극복하는 게 중요한데, 북한이 적극적으로 연대를 하자고 하니까 일시적으로는 좋은 선택인 거죠. 러시아는 한국 정부에 ‘무력 침공을 받을 경우에만 작동하는 조약인데, 한국이 북한을 침략할 계획이 없다면 상관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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