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의 80%가 다문화학생', 초저출생 한국에서 이미 시작된 미래
"제가 러시아어로 통역을 안 해주면 애들이 수업을 하나도 못 알아들어요."
충남 아산의 둔포초등학교 5학년 김야나 양은 반에서 한국어-러시아어 통역을 맡고 있다. 반에서 한국어를 가장 잘하는 러시아 출신 학생이기 때문이다.
고려인 4세 야나는 2017년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왔다.
야나는 "저는 어린이집에서부터 한국인 친구들과 어울려 한국말을 자연스레 배웠지만", 지금 학교엔 "한국말을 못 하는 아이들이 훨씬 더 많다"고 말한다.
실제 이 학교는 전체의 약 80%가 다문화 학생이고, 이 중 대부분이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온 고려인 3, 4세들이다.
학교 곳곳에선 러시아어가 한국어보다 더 많이 들린다. 교문에 걸린 현수막, 계단에 붙은 각종 격언에도 한국어와 러시아어가 함께 쓰여 있다. 러시아어로 된 가정통신문도 배부한다.
이른바 '다문화 밀집학교'인 둔포초등학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학생들과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갈수록 러시아 애들이 많아져요'
"처음 입학했을 땐 반에 한국 애들이 더 많았는데, 한 3학년 때부터 러시아 애들(고려인)이 더 많아졌어요."
야나의 말대로 둔포초의 다문화 학생 비율은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올라갔다. 6년 전인 2018년만 해도 26.6%였던 이 수치는 2020년 절반을 넘은 후 올해는 79.2%로 급증했다. 학생 5명 중 4명이 다문화 배경 학생인 셈이다.
교무주임인 추대열 교사는 "부모의 국적과 체류 자격이 다 달라 정확한 통계를 내기는 어렵지만, 다문화 학생들 대부분이 고려인 후손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다.
고려인들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사이 항일 운동, 강제노동, 농업이민 등의 이유로 한반도에서 러시아 연해주로 넘어간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1930년대 소련 정부에 의해 중앙아시아 등지로 강제 이주당한 후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등의 국적자로 살았다.
법무부는 2000년대부터 이른바 고려인과 '조선족'으로 불리는 한국계 중국 동포에게 해외 동포 지위를 부여해 각종 체류 자격을 주기 시작했고, 2014년부턴 가족 동반 입국을 허용했다.
특히 가족 동반이 허용된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고려인 입국자는 빠르게 늘었다.
법무부는 국내 체류 고려인 수를 지난해 기준 10만 4577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10년 전 2만 1642명에 비해 무려 4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한국 애들은 한국 애들끼리, 러시아 애들은 러시아 애들끼리만 놀아요'
다문화 학생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다 보니 학교에선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언어다.
야나는 “말이 안 통하니까 한국 애들이랑 러시아 애들이랑 싸움도 자주 일어난다"며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답답해서 우는 애들도 있다"고 말했다.
학생회장인 6학년 김보비 양도 "같은 반 22명 중 한국인은 5명이고, 나머지 학생 중에서 한국말을 잘하는 친구들은 3~4명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말이 안 통하니까 한국 애들은 한국 애들끼리, 러시아 애들은 러시아 애들끼리만 논다"고 우려했다.
"많은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가도 수업을 거의 이해 못 한다고 저는 보고 있어요." 다문화 학생들의 한국어 교육을 담당하는 이중언어교사 김은주 씨의 말이다.
둔포초는 정규교과 외에 한국어가 서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다우리' 교실을 운영 중이다. 김 씨와 같은 이중언어 교사 다섯 명이 매일 2시간씩 학년별, 수준별로 학생들을 나눠 한국어 수업을 진행한다.
그러나 김 씨는 "고려인 친구들이 너무 많다 보니 학생들이 수업 시간 외에는 계속 러시아어로만 이야기한다"고 우려한다.
그는 "집에 가서도 러시아어만 쓰고 학교 밖에서도 한국말을 배울 기회가 많이 없다"며 학생들의 "한국어 학습효과가 낮다"고 토로했다.
수업 진행도 어렵다. 학생의 절반 이상이 한국어 수업을 이해 못 하다 보니 반마다 야나처럼 한국어를 잘하는 고려인 학생이 통역을 도와줘야 수업이 겨우 진행된다.
김보비 양은 "국어나 수학은 통역하느라 시간이 빨리 가버려서 좋은데, 체육시간엔 설명하느라 놀 시간이 줄어들어서 아쉽다"며 통역에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든다고 설명했다.
교사 추 씨는 "별다른 대책 없이 하루아침에 비율이 너무 높아져서 현장의 어려움이 매우 크다"고 토로했다.
'한국인 학생, 고려인 학생, 교사 모두가 어려워요'
"솔직히 딸을 이 학교로 전학시킬 때 걱정이 좀 됐어요."
지난해 2학년이던 딸을 이 학교로 전학시킨 한국인 학부모 박하나 씨의 말이다. 인근에 살던 박씨는 집 문제로 둔포면으로 이사 오면서 "아이를 이 학교에 보내도 될지 걱정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김 씨는 "지역 학부모 단체대화방에 이 학교에 관한 문의가 계속 올라온다"며 "옆 학교는 한국인 학생이 과밀 상태인데도 한국인 부모들은 둔포초등학교가 아닌 옆 학교를 보내려고 한다"고 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박 씨는 "막상 와서 보니 아이들은 너무 예쁘고 좋다"면서도 "옆 학교와 비교했을 때 교과 진도가 느린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교사들은 이런 상황이 모두를 위해 좋지 않다고 우려한다.
교무부장 추 씨는 "고려인 학생들은 일단 학교에 말이 통하는 친구가 많아 즐거워한다"면서도 "이렇게 계속 지내면 앞으로 이 친구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우려했다.
이중언어 교사 김 씨도 "수업을 못 따라가니까 자존감도 많이 낮아진 것 같다"며 학생들을 걱정했다.
실제 고려인 학생의 학교 적응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민정책연구원 박민정 연구위원은 "이주 배경 학생들의 경우 학교를 이탈하는 비율이 높다"며 "특히 언어 습득을 제대로 하지 못한 고려인 학생들은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 학업 포기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근태 교감은 "(현재 정책은) 다문화 학생들이 전체의 20%일 때를 기준으로 만든 것으로, 이 비율이 80% 가까이 되는 학교를 운영하려니 한국인 학생, 고려인 학생, 교사들 모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런 현상은 둔포면뿐 아니라 고려인들이 정착하는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경주 흥무초의 경우 올해 입학생 40명 중 4명만 한국인이고, 나머지 36명은 모두 고려인 자녀들이다.
인천의 함박초, 안산의 선일초, 광주의 하남중앙초 모두 다문화 학생 비중이 50%가 넘는다. 이들 학교 역시 다문화 학생의 대부분이 고려인 자녀들이다.
광주 하남중앙초의 나옥주 교장은 "한국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이사 간 집에 고려인들이 들어오는 일이 반복되면서 지역의 고려인 비중이 빠르게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통상 어려움을 심각한 문제로 꼽으며 "학교에서 아이들을 친하게 하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다문화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도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언어, 문화권에서 이주한 사실상 최초의 집단
"고려인들은 다른 언어, 문화권에 살다 한국에 정착한 사실상 최초의 이민자 그룹이라고 볼 수 있어요." 안산의 고려인 지원단체인 ‘고려인 너머' 김영숙 상임이사의 말이다.
김 씨는 이들이 "현재까지 다문화 학생의 대다수를 차지해 온 결혼이민자 자녀들, 그리고 한국계 중국 동포들과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결혼 이민자 자녀들은 엄마가 외국인이어도 나머지 식구들이 다 한국인이어서 언어적 어려움은 비교적 덜한 편이에요. 중국 동포들도 한국어를 잘하고 문화적 차이도 비교적 덜하죠."
고려인 전문가인 인하대 성동기 교수도 "중국은 자치주 정책을 펴서 많은 동포 아이들이 한국말을 모국어로 배우는 반면, 고려인들은 소련 시절에 무조건 러시아말만 쓰게 하다 보니 대부분 한국말을 잊어버렸다"고 설명한다.
김 상임이사는 "중국 동포들은 소통에 큰 문제가 없는데도 한국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며 "2000년대 폭발적으로 늘었던 중국 동포들의 이주가 주춤한 사이 현재는 고려인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공장에선 선호 대상, 지역에선 기피 대상?
김 상임이사는 고려인들이 "대규모 제조업 공장들이 있고 집값이 싼 곳"에 정착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안산·아산·천안·광주·인천 등지의 고려인 집단 거주지가 대체로 이런 지역"이라고 설명한다.
아산에서도 고려인 집단 거주지는 현대차 아산공장의 하청 업체들이 밀집한 서북 지역 인근의 신창면, 아산 테크노밸리 근처인 둔포면에 형성됐다.
둔포면에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이모 씨는 이들이 취업하는 일자리가 "한국인들이 꺼리는 곳"이라며 "고려인들이 없으면 공장이 안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동네에 일단은 젊은 사람이 없고, 한국 사람들은 일하러 와도 단순노동을 못 견디고 빨리 떠나버려요. 그래서 고용주들이 고려인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 사람들은 불법체류 이슈도 없으니까요."
아산 이주노동자센터 우삼열 소장은 이주 노동자의 정착을 엄격히 제한하는 한국에서 고려인의 독특한 위치에 주목한다.
"한국에 오는 이주노동자들의 대부분이 받는 단기취업(E9) 비자로는 최장 4년10개월까지만 체류가 가능해요. 그런데 이 비자는 노동조건에 대한 관리·감독도 엄격해요. 반면에 고려인들은 계속 연장할 수 있는 동포 비자를 갖고 있고 법무부가 노동조건도 잘 안 봐요."
그는 이어 "재외동포 비자가 마치 이분들을 엄청 위하는 비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현장에선 제조업 인력을 안정적으로 채우기 위한 비자로 쓰이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달 경기도 화성시의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에서도 사망자 17명 중 11명이 재외동포 비자를 가진 중국동포들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아산 신창면에 사는 고려인 3세 니 데니스 씨도 인근의 자동차 부품 하청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2018년 카자흐스탄인 아내, 그리고 다섯 명의 자식과 함께 한국에 왔다.
니 씨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고려인 아니면 다른 외국인이고 한국인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큰딸도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먼저 온 형제들도 대부분 자동차 관련 공장에서 일해요."
니 씨는 "아이들을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기 위해 왔다”며 “아이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해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여기가 고향이에요. 한 번은 카자흐스탄에 잠깐 갔다 온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왜 여기 왔어? 한국에 가고 싶어'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는 "한국 생활에 대체로 만족한다"면서도 현재 거주 중인 신창면에 고려인 비중이 올라가는 현상에 대해선 다소 우려했다.
"지금 사는 아파트에 처음 이사 온 2019년만 해도 이웃이 다 한국 사람이었어요. 러시아 사람 내 가족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한국 사람들 많이 나가고 있어요."
해당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현재 러시아 등지 출신 거주민 비율이 60% 이상"이라며 “인근 지역이 지금 대부분 이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니 씨는 "러시아 사람들은 한국 사람 옆에 있으면 좋은데, 한국 사람들은 러시아 사람이 옆에 있는 게 싫은가 봐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아산시에 따르면 신창면의 외국인 인구는 2019년 약 4554명에서 2024년 4월 약 9554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인 인구는 약 2만5000명에서 약 2만1000명으로 4000명 이상이 줄었다.
이에 대해 이민정책연구원 최서리 이민데이터센터장은 "어느 나라에서나 출신국 커뮤니티 안에서만 사는 이주민들은 어느 정도 있기 마련"이라면서도 "한국에선 이제까지 이런 분리 현상을 어떻게 할 것인지, 중국 동포나 고려인들을 어떻게 통합할지에 대한 정책이 전무하다시피 했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받지 않으면 안 될 이민자들, 한국은 준비가 돼있나?
전문가들은 아산의 사례처럼 앞으로 국내 학교에 정착하는 외국인들이 더 늘어날 거라 입을 모은다.
박 연구위원은 "한국 정부가 그간 이민을 철저히 통제해 왔기에 한국에 오는 상당수의 외국인이 가족 동반이 불가능한 단기 노동자들"이었다며 "그러나 앞으로는 자녀를 동반해 정착하는 정주형 이민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기록적인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감소, 지역소멸, 노동절벽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이민에 대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도 활발해지고 있다.
충북 제천시는 올해부터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시 차원에서 고려인 유치에 나섰다. 제천은 시장 주도로 올해까지 300명의 고려인을 유치하고 이들의 정착을 지원할 계획이다. 시장이 직접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에 방문해 고려인 유치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제천시가 고려인 정착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법무부가 2022년 신설한 ‘지역 특화 비자' 덕분이다. 법무부는 인구 감소 지역으로 외국인 유입을 늘리기 위해 각 지자체의 요청에 따라 장기 체류가 가능한 동포(F4) 또는 그 외 외국인 거주 비자(F2)를 발급하기로 했다. 올해엔 66개 지자체가 이 비자를 통해 외국인 유치에 나서고 있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정주 가능한 노동 비자 쿼터를 대폭 늘렸다. 단기취업(E9) 비자 소지자 중 장기 체류, 가족 동반이 가능한 숙련기능(E7) 비자로 체류 자격을 전환하는 쿼터를 기존 2000명에서 올해 3만5000명으로 17배 이상 확대했다.
정부는 지난 1일 신설을 발표한 인구전략기획부가 저출생, 고령화 문제는 물론 이민, 인력 정책도 함께 담당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 사회가 이민을 받아들일 제도적 기반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성 교수는 "그동안 한국은 이민이 어려웠기에 우리가 말하는 다문화 가정의 대부분은 중국 동포들이거나 국제결혼 가족이었다"며 "다문화 정책이 대부분 결혼이주여성과 그 가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결혼이민 가정은 정부에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외국 국적 동포는 그런 일들이 전혀 없어요."
박 연구위원도 "학교는 정해진 교육을 해야 하는데, 학교 현장에서 한국어 교육을 비롯해 모든 것들을 감당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서울시의 경우 다문화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교육하는 ‘한빛마중교실’이라는 프로그램을 최근 들어 조금씩 늘리고 있지만 다른 지자체는 이런 여건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최서리 센터장도 "이제까지 외국인들을 어떻게 데려와서 부족한 일자리를 채울지, 도구적으로만 생각해왔다"며, "이제는 이분들을 우리 사회에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때"라고 말한다.
"지금 굉장히 중요한 시점에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인구에 대한 위기감이 이 사회가 이민을 다르게 바라보는 변화의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