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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부터 탄핵까지…'혼란의 4개월' 무슨 일 있었나?

1일 전
계엄은 짧았지만, 이후 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정국이 혼란스럽게 돌아갔고 탄핵심판 최종 선고일이 오기까지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BBC
계엄은 짧았지만, 이후 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정국이 혼란스럽게 돌아갔고 탄핵심판 최종 선고일이 오기까지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4월 4일은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있는 날이다. 이로써 12·3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난 지 4개월여 만에 대통령 파면 여부가 결정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초 비상계엄을 선포했지만,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모여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빠르게 통과시키면서 약 6시간 만에 계엄이 해제됐다.

계엄은 짧았지만, 이후 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정국이 혼란스럽게 돌아갔고 탄핵심판 최종 선고일이 오기까지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계엄부터 탄핵 선고에 이르기까지, 지난 4개월을 되짚어본다.

가장 긴박했던 이틀간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는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월 3일 밤 10시 23분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담화문을 6분간 낭독했다.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먼저 야당의 주요 정부 관료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와 예산안 삭감 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라고 밝혔다.

이후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와 국회에 진입했지만, 국회에 계엄을 저지하기 위한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이 빠르게 모이면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여야 의원 190명 중 190명 전원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계엄령 선포 후 약 2시간35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탄핵심판대에 오르기까지

야당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탄핵 대신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주장하면서 야당과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 해제 후 첫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해 법적·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며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운영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라고 했다.

결국 1차 탄핵소추안은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정족수 미만으로 폐기됐다.

윤 대통령은 1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앞선 담화와는 달리 야당에 대한 강한 비판을 이어가면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은 2차 탄핵소추안 투표 때도 단체로 표결에 불참하는 듯했으나, 당 내부에서도 비판 여론이 일면서 결국 전원이 참석했다. 그 결과 찬성 204명, 반대 85명, 무효 8명으로 탄핵안이 가결됐다.

탄핵안 가결 후 윤 대통령은 직무 정지되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국정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권한대행이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3명 임명을 보류하자, 야당은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안을 제출했다.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을 임명했다.

커지는 갈등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점점 심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서울서부지방법원이 1월 19일 새벽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법원 앞에 모여있던 일부 대통령 극렬 지지자들이 법원에 난입해 건물과 집기를 부수며 이례적인 폭동 사태를 낳았다. 경찰은 해당 사건으로 수십 명을 구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부지법 사태를 기점으로 경찰은 탄핵심판이 이뤄지는 헌법재판소를 중심으로 경계를 강화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늦어지면서, 재판소 앞은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사람들과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집회를 열며 주말마다 인산인해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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