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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린 투명인간입니다'… 모디의 인도에서 살아가는 이슬람교도의 이야기

2024.04.29
타지마할을 구경하는 이슬람교도들의 모습
Getty Images
인도의 이슬람교도는 2억 명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 인도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소수 집단이다

6년 전,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아그라 소재 명문 학교에 다니는 9살 난 이슬람교도 소년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 귀가했다.

소년은 어머니 리마 아마드에게 “학급 친구들이 날 파키스탄 테러리스트라고 놀렸다”고 토로했다.

작가이자 상담가로 활동 중인 아마드는 그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아들이 어찌나 사납게 주먹을 꽉 쥐었는지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날 정도였습니다. 아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반에선 친구들끼리 모의 싸움이 벌어졌다.

“그때 어느 남학생 무리가 아들을 가리키며 ‘쟨 파키스탄 테러리스트다. 죽여버리자!’고 외쳤다고 합니다.”

아울러 아들은 일부 학생들이 자신을 ‘날리 카 키다(시궁창에 사는 벌레)’라고도 불렀다고 털어놨다.

이에 아마드가 학교 측에 항의하자 학생들은 “그저 상상한 것일 뿐 …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아마드는 아들의 학교를 옮길 수밖에 없었고, 현재 16세가 된 아들은 홈스쿨링 중이다.

아마드는 “아들의 경험을 통해 이곳 (지역사회가 변했다는) 진동을 느꼈다”면서 “내가 이곳에서 자랄 때만 해도 전혀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과거엔 부유층이라는) 계급적 특권 덕에 언제나 이슬람교도임을 느끼면서 살아가지 않았고, 보호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젠 계급과 특권으로 인해 더욱더 눈에 띄는 대상이 된 듯합니다.”

리마 아마드
Bimal Thankachan
명문 학교에 다니던 리마 아마드의 아들은 학급 친구들로부터 ‘파키스탄 테러리스트’라고 놀림당했다. 이에 아마드는 즉시 아들의 전학을 결정했다

나렌드라 모디 현 총리가 이끄는 힌두 민족주의 성향 정당인 ‘인도인민당(BJP)’이 집권한 2014년 이후 2억 명에 달하는 인도 이슬람교도들의 삶은 험난하다.

소위 힌두교 자경단 조직돼 소 거래업자로 의심되는 이들을 괴롭히고, 이슬람교도들의 소유한 소규모 사업체를 공격했다. 모스크(이슬람 사원)에 불만을 품은 청원도 제기됐다.

인터넷상에선 이슬람교도 여성들의 사진을 공개하며 이들을 ‘경매’에 부친다는 앱도 제작됐으며, 우익 단체와 일부 주류 언론은 이슬람교도 남성들이 결혼을 통해 힌두교 여성을 개종시키는 일명 사랑의 지하드’를 추진하고 있다는 거짓된 주장을 통해 이슬람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아울러 인도에선 이슬람교도 혐오 발언이 급증하고 있다. 신고된 발언의 4분의 3이 BJP당이 집권한 주에서 발생했다.

최근 저서 ‘힌두교인 인도에서 이슬람교도로 살아간다는 것’을 공개한 지야 우스 살람은 “이슬람교도들은 모국에서 2등 시민, 투명 인간과도 같은 소수 집단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집권 BJP당과 모디 총리는 인도에서 소수 집단이 차별받고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한다.

모디 총리는 미국 ‘뉴스위크’지와의 인터뷰에서 “(소수 집단이 차별받는다는 주장은)이는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 밖의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흔히 내놓는 발언일 뿐”이라면서 “심지어 인도의 소수 집단조차 더 이상 이러한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가족 대대로 수십 년간 아그라에 살면서 힌두교 친구도 많이 사귀었던 아마드는 분명히 변화를 느끼고 있다.

2019년, 아마드는 동문들이 모인 ‘왓츠앱’ 단체 대화방을 탈퇴했다. 이슬람교도는 아마드를 포함해 단 둘 뿐인 대화방이었다. 인도 정부가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파키스탄 소재 무장 세력에 대한 공습을 시작한 후 올라온 메시지가 탈퇴의 계기가 됐다.

“만약 저들이 우리를 미사일로 공격하면 우리는 저들의 집에 쳐들어가 저들을 죽여야 한다”는 해당 메시지는 테러리스트와 인도의 적들은 그들의 집 안에서 죽여야 한다는 모디 총리의 발언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아마드는 “이성을 잃었고, 친구들에게 대체 왜 이러냐고 물었다. 왜 민간인과 아동 살해를 용납하냐고” 따져 물었다. 아마드는 자신이 평화를 옹호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아마드는 “누군가 내게 넌 이슬람교도이기에 친파키스탄 성향이냐고 물었다. 내게 반국가적이라며 비난했다”고 회상했다.

“갑자기 비폭력 호소가 반국가적 발언과 동일시됐습니다. 저는 친구들에게 조국을 지지한다고 해서 폭력적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곤 그 대화방에서 나왔습니다.”

칼림 아흐메드 쿠레시
Bimal Thankachan
이슬람교도인 칼림 아흐메드 쿠레시에게 택시 옆자리 승객은 가방에 들어 있는 악기가 혹시 총기인지 물었다

변화는 여러 곳에서 느껴진다. 아마드의 넓은 집은 오랫동안 성별과 종교에 관계없이 아들이 반 친구들과 어울리는 아지트와도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근거 없는 ‘사랑의 지하드’ 주장이 퍼진 이후 힌두교도 여학생들에겐 아들의 방에 너무 오랫동안 머물지 말고 특정 시간이 되면 나가달라고 말하게 됐다.

“아버지와 전 아들을 앉혀두고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친구 관계를 조심하고, 너무 늦게까지 나가 놀지 말라고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사랑의 지하드’를 펼치고 있다고 언제든 의심받을 수 있으니까요.”

한편 아그라에서 5대째 살고 있는 환경운동가 에룸 또한 아이들의 대화가 변했음을 느낀다고 했다.

이곳의 학교에서 일하는 에룸은 어느 날 한 아이가 같은 반 이슬람교도 친구에게 “내게 말 걸지 마. 우리 엄마가 너랑 말하지 말랬어”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에룸
Bimal Thankachan
우타르프라데시주 아그라의 학교에서 일하는 에룸은 아이들의 대화에서 이슬람교도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를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저는 ‘이게 진짜인가?!’라는 생각을 했다”는 에룸은 “이러한 아이들의 대화는 [이슬람교도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를 반영하고 있었다. 이는 앞으로 쉽게 해결하지 못할 문제로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에룸은 개인적으로 힌두교도 친구도 많았고, 이슬람교도 여성으로서 별다른 불안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는 더 이상 어린이들 간 문제가 아니다. 아그라에서 작은 언론사를 운영하며 종교 간 화합을 추진하는 시라즈 쿠레시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간 오랫동안 지켜왔던 친밀감과 호의가 사라지고 있다며 한탄했다.

쿠레시는 최근 시내에서 발생한 한 사건을 얘기해줬다. 아그라에서 양고기를 배달하던 한 남성이 갑자기 힌두교 우익 단체 조직원들에 의해 제지당한 후 경찰에 체포돼 감옥에 갇혔다고 한다.

쿠레시에 따르면 “이 남성은 공식적인 (양고기 판매) 허가증을 소지하고 있었음에도 경찰은 체포했으며, 이후 풀려나긴 했다”고 한다.

이곳의 많은 주민들이 쇠고기를 들고 탔다는 이유로 공격받는 이슬람교도 승객이 늘어나면서 이슬람교도들의 기차 이용에 변화가 생겼다고 토로했다.

아마드 또한 “이제 이슬람교도들은 늘 조심하며, 대중교통 이용 시 육류 음식은 가지고 타지 않으려고 한다. 혹은 여유만 된다면 아예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칼림 아흐메드 쿠레시는 아그라에서 7대째 거주하는 토박이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으나 현재 보석 디자이너 및 음악가로 활동 중이다. 또한 아그라의 문화유산 산책 프로그램도 이끌고 있다.

최근 칼림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흔히 연주하는 현악기인 라바브를 들고 어떤 힌두교도와 함께 델리에서 아그라로 가는 택시를 함께 타게 됐다.

칼림은 “그런데 이 승객은 악기 케이스를 보더니 혹시 총기가 아니냐며 열어보라고 했다”면서 “내 이름을 듣고는 이런 반응을 보인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이런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젠 이동할 때마다 제가 어디 있는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행동을 하는지 매우 조심하게 됩니다. 심지어 기차에서 검표원에게 제 이름을 밝히기조차 불안합니다.”

그러면서 칼림은 “정치가 사람들 간 관계에 독을 섞고 있다”면서 이러한 사태의 분명한 원인으로 꼽았다.

2022년 6월 14일 콜카타에서 시위 중인 이슬람교도 시민 운동가들
AFP
2022년 콜카타에서 열린 공동체 화합을 위한 집회에 참석한 이슬람교도 시민 운동가들

한편 델리의 어느 따듯한 오후, 사이드 자파 이슬람 BJP당 대변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슬람교도들이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면서 이슬람 혐오가 증가하는 건 “무책임한 언론사의 탓”이 크다고 돌렸다.

사이드 대변인은 “어디서 작은 사건이라도 일어나면 언론이 이를 마치 전례 없는 사건인 것처럼 부풀려 보도한다. 인도는 14억 명이 사는 나라고, 이러한 사건은 집단 간 혹은 집단 내에서 몇 번이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사건 한두 개를 일반화해서 [집권 BJP당이 반이슬람교도 성향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습니다. 누군가 이러한 사건에 대해 이슬람교도를 노린 사건이라고 말하는 건 잘못된 일입니다.”

BBC는 사이드 대변인에게 만약 자녀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학급 친구들에게 가족의 종교로 인해 ‘파키스탄 테러리스트’라고 놀림당했다면 어떻게 반응할지 물었다. 전직 은행가 출신으로 2014년 BJP에 입당한 사이드 대변인에겐 두 자녀가 있으며, 그중 1명은 재학 중이다.

이에 사이드 대변인은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건 학교의 책임이다. 부모들은 자녀가 그런 말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국민의 795가 힌두교도인 나라에서 힌두교 라슈트라(국가)를 세운다는 BJP의 발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까.

사이드 대변인은 “국민들은 이게 수사학적인 표현임을 알고 있다. 우리 정부나 당이 이런 소리를 한 적이 있는가? 언론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들에게 그토록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가? 우리는 언론이 이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목할 때마다 화가 난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BJP내 이슬람교 대표는 없다는 사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까. 실제로 BJP당 내부엔 이슬람교도인 장관도, 상하 의원도 없으며, 전국에 1000명이 넘는 지방의회 의원 중에서도 이슬람교도가 없다.

상원의원 출신인 사이드 대변인은 의도적인 게 아니라고 항변했다.

“‘국민회의당(INC)’ 등의 야당은 BJP당을 무너뜨리고자 이슬람교도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만약 어느 정당이 이슬람교도 후보를 내세웠는데, 이슬람교도들이 그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는다면 어느 정당이 그에게 후보 자릴 내주겠습니까?”

실제로 2019년 인도 총선에서 BJP에 표를 던진 이슬람교도는 8%에 불과했으며, 점점 더 많은 이슬람교도들이 야당에 표를 주고 있다.

일례로 2020년 비하르주 선거에선 이슬람교도 주민의 77%가 야당을 지지했으며, 2021년 웨스트벵골주 선거와 2022년 우트라프라데시주 선거에선 각각 77%와 79%가 야당인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당’과 ‘자나타 사마즈와디당’을 지지했다.

사이드 대변인은 국민의회당 주도로 야당들이 민심을 유지하고자 주민들에게 “공포와 불안”을 심은 것이며, 반면 모디 정부는 “[지역 사회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모든 국민들에게 복지 제도의 혜택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일부 제도에선 이슬람교도들이 가장 큰 수혜자이기도 합니다. 지난 10년간 인도에선 대규모 폭동이 일어난 적도 없습니다.”

지난 2020년 인도에선 시민권개정법(CAA)이 논란 끝에 통과되면서 폭력 사태가 발생해 50여 명이 사망한 바 있다. 대부분 이슬람교도였다.

그러나 사이드 대변인은 이슬람교도들이 주류 사회로부터 자신들을 스스로 고립시키고 있다며 비난했다.

“이슬람교도들은 자신들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단순히 표밭으로 취급받는 삶에서, 종교 지도자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모디 총리는 국민들이 행복하게 공존하고 차별받지 않도록 사회를 통합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BBC는 사이드 대변인에게 모디 총리의 집권 하에 사는 인도 이슬람교도들의 미래가 어떨지 물었다.

“매우 좋습니다 … 사람들의 생각이 천천히 변하고 있습니다. BJP에 동조하는 이슬람교도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전망이 좋습니다.”

그러나 전망이 좋은지 아닌지 말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이러한 혼란의 시기에 많은 이슬람교도들이 이슬람교도 공동체가 내부적으로 개혁의 과정을 겪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사실이다.

살람은 “이슬람교도들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한편 교육받고 있다. 이슬람교도 교육자들과 지식인들은 힘을 합쳐 도움이 필요한 지역사회의 학생들이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면서 “이렇듯 (공동체 내부에서) 스스로 개선하려는 노력은 칭찬받을 만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함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비하르주 출신인 아르주 파르빈은 교육을 통해 가족과 함께 빈곤에서 벗어날 길을 찾은 이들 중 하나다.

아마드의 아들과 달리 파르빈의 걸림돌은 종교적 갈등이 아닌, 주변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아버지였다.

“아버진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고, 전 다 큰 아가씨이니 마을 사람들이 이에 대해 떠들어댈 것이라며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전 아버지에게 이런 식으로 더 이상 살 순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성들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요. 더 이상 우리의 미래를 보류할 순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파르빈은 과거 지역 병원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치료 시기를 놓쳐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마을 선생님들이 들려준 공학자나 의사가 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도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게 됐다.

파르빈은 “나라고 왜 할 수 없어?”라고 묻게 됐고 그렇게 1년 만에 가족 중 최초로 고등 교육을 받는 여성이 됐다.

그러나 파르빈은 공립 학교가 아닌, 무료 학교인 ‘라마니 30’을 통해 시골 마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치인이자 학자인 이슬람교도 마울라나 왈리 라마니가 2008년 소외된 이슬람교도 학생들을 위해 설립한 교육 시설이다.

현재 ‘라마니 30’은 비하르주의 주도인 파트나를 포함한 도시 3곳에서 여학생과 남학생 850명을 가르치고 있다. 선발된 학생들은 이곳 학교가 임대한 건물에서 생활하며 공학, 의학, 회계 같은 분야의 대입 시험을 준비한다.

이곳 학생 대부분이 가족 중 최초로 공부하는 사례로, 과일 상인, 농장 노동자, 육체노동자, 건설 노동자의 자녀들이 많다.

이미 졸업한 약 600명은 이미 소프트웨어 공학자, 공인 회계사 및 기타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 의사도 6명 배출했다.

파르빈 또한 내년에 의과대학 입학 시험을 치를 예정이다. 인도에선 매년 전국 의과대학 707곳의 신입생 10만여 명을 뽑는 시험에 200만 명 이상이 경쟁한다.

라마니 30 수업 현장
Anshul verma
‘라마니 30’은 가난한 이슬람교도 학생 850명에게 까다로운 공대 및 의대 입학 시험 준비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파르빈은 “나는 도전할 준비가 됐다. 난 산부인과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15세 소년 모하메드 샤키르 또한 ‘라마니 30’ 내 교육이야말로 자신이 가족들을 구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티켓이라 여긴다.

지난해 4월, 샤키르는 친구들과 함께 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파트나로 왔다. 힌두교 축제 행렬로 촉발된 종교 갈등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을 통과해야만 하는 길이었다. 물 한 병과 대추야자 몇 알만 들고 길을 떠난 이들은 모스크에서 하룻밤 머물며 결국 도착해 ‘라마니 30’ 입학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샤키르는 “부모님은 너무 무서워하셨다. 나보고 가지 말라고 했다”면서 “그러나 나는 부모님께 ‘지금이 기회다. 지금 가지 않으면 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고 회상했다.

컴퓨터 과학자를 꿈꾸는 샤키르는 종교적 갈등에 대해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

“저는 어머니께 (라마니 30 입학) 시험에 합격해야만 집에 돌아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는 길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있겠어요? 저희 마을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가 완벽히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 인도, 내부적으로도 계급, 종파, 카스트, 지역 등으로 나뉜 이곳에서 이슬람교도들의 미래는 어떠할까.

살람은 “오래 이어지는 두려움”을 말했다.

“사람들은 보통 이슬람교도들을 위한 일자리가 부족하고 물가가 너무 높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물가, 실업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존권에 관한 문제죠.”

이슬람교도 청년들도 요즘 들어 이러한 두려움을 호소한다.

최근 책 ‘불타는 도시: 알리가르에서 보낸 소년기’를 펴낸 제야드 마스루 칸은 “혹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도망칠 나라를 정해둔 사람들이 많다. 망명가야 할 때를 대비해 캐나다, 미국, 튀르키예, 영국 등에 정착해 사는 친지들에게 연락하는 이들도 있다”면서 “나처럼 폭력 사태에서도 안전하다고 느꼈던 사람들도 이젠 고국에 있는 가족들의 미래를 걱정한다”고 덧붙였다.

여전히 아그라에 사는 아마드 또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느낀다.

“초반엔 [이슬람교도를 겨냥한 공격은] 비주류적이며 금방 지나갈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벌써 10년 전입니다. 이젠 많은 것들이 영원히 사라졌으며, 파괴됐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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