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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은 공포와 혼란이었습니다'...한국인 근로자가 말하는 미 현대차 공장 이민단속국 체포 작전

1일 전
공장에서 이민 단속이 진행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의 한 장면. 남성들이 단속 당국의 차량에 손을 대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
EPA/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 handout
주 및 연방 요원 약 400명은 공장 단지 밖에 집결한 뒤 내부로 들어가 작업자들을 일렬로 세웠다

미국 조지아주 자동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지난 4일(현지시간) 대규모 이민 단속 작전이 벌어졌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한국인 근로자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연방 요원들이 들이닥쳐 수백 명을 체포하면서 현장이 공포와 혼란에 휩싸였다고 증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남성은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한 해당 공장 건설 현장에서 미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한국인 300명을 포함해 475명을 체포했으며, 일부는 쇠사슬에 묶여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이 남성과 동료들이 단속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회사 상부로부터 전화가 쏟아진 당일(4일) 아침이다. "여러 전화선이 동시에 울렸고, 작업을 중단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최대 규모로 알려진 이번 단속 소식이 전해지자 근로자들의 가족들이 다급히 연락을 시도하는 등 혼란이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들은 모두 구금되어 있었고, 휴대전화는 사무실에 두고 갔다. 이들의 전화벨이 계속 울렸으나 (사무실이) 잠겨 있어서 우리도 받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미 당국에 따르면 일부 작업자들은 근처의 하수 연못으로 뛰어내리는 등 도주를 시도했다.

요원들은 이들을 국적 및 비자 상태에 따라 분류한 뒤 여러 차량에 나누어 이송했다.

이날 주 및 연방 요원 약 400명은 조지아주 사바나(서배나)에서 약 30분 거리인, 76억달러(약 10조6000억원) 규모의 이 거대한 공장 단지 외곽에 집결한 뒤 오전 10시 30분경 현장에 진입했다.

3000에이커 규모의 부지에 들어선 이 공장 단지는 지난해 문을 연 이후 전기차 생산 조립을 이어오고 있었다. 이민 당국은 단지 내 건설 중인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불법 고용이 있었다는 의혹을 조사해왔다.

당국은 국토안보부 역사상 단일 사업장에서 진행된 최대 규모의 이민 단속이었다면서,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없는 수백 명을 구금시켰다고 설명했다.

BBC Verify 팀은 해당 배터리 공장 내부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SNS 영상을 검토했다.

한 영상에는 마스크와 'HSI(국토안보부 조사국)'라는 머리글자가 적힌 조끼를 착용한 한 남성이 무전기를 들고 "우리는 국토안보부에서 나왔다. 이 현장 전체에 대한 수색 영장을 갖고 있다. 즉시 공사 및 현장의 모든 작업을 종료하라"고 말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한편 BBC Verify 팀이 만난 이 한국인 남성은 공장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사바나에서 합법적인 취업 비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이번 급습에 대해 "충격적이지만 놀랍지는 않다"고 했다. 구금된 대다수가 현장에서 생산 설비를 설치하던 정비공들로, 하청업체가 고용한 이들이라고 한다.

아울러 체포된 이들 중 일부는 서울 소재 본사에서 파견되어 트레이닝을 진행하던 직원들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아직 BBC가 검증한 정보는 아니다.

이 남성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근로자 대부분이 미국에 체류할 자격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비자가 체류 목적에 맞지 않거나 취업 자격이 이미 만료된 상태였을 가능성이 크다.

'HSI'라고 적힌 조끼와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남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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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국토안보부 수사 역사상 단일 사업장에서 진행된 최대 규모의 이민 단속 작전이다

BBC는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에 입장을 물었다.

두 업체는 단속 이후 발표한 공동 성명을 통해 "건설 현장에서의 활동과 관련해 당국과 전적으로 협력하고 있다"면서 "당국을 돕고자 건설 공사도 일시 중단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또한 현대자동차 측은 "현재 파악된 바에 따르면, 구금된 이들 중 자사가 직접 고용한 직원은 없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사업하는 모든 시장에서 모든 법규를 철저히 준수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BBC Verify는 또한 미국 국토안보부에도 접촉하여 정확히 왜 작업자들이 구금되었으며, 이들이 공장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물었다.

급습 다음 날인 5일, 스티븐 슈랑크 국토안보수사국 특별수사관은 구금한 475명 전원이 "미국 내 불법 체류하던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미국에 입국한 상태였다. 일부는 불법으로 국경을 넘었고, 일부는 비자 면제 프로그램으로 입국했으나 취업은 금지된 상태였으며, 일부는 비자를 소지했으나, 체류 기간이 초과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당국이 '저전압 작전'이라 명명한 이번 급습은 기존 현대자동차 공장이 속한 단지에 건설 중이던 전기 배터리 공장을 겨냥했다.

ICE가 공개한 작전 당시 영상에는 연방 요원들이 장갑차를 타고 도착한 뒤 공장 내부에서 작업자들을 일렬로 세우는 모습이 담겨 있다. 쇠사슬에 묶인 채 차량에 실리는 이들도 있다.

또 다른 영상에는 탈출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이는 두 남성이 강물에 빠진 모습, 스페인어로 말을 거는 요원들에게 붙잡혀 물에서 끌려 나오는 또 다른 남성의 모습도 담겼다.

한편 이번에 인터뷰에 응한 이 익명의 근로자는 체포된 이들에게 동정심을 느끼지만, 트럼프 행정부 하에 이러한 단속이 일어난 것에 대해 놀랍지 않다고 했다.

"그들은 미국 우선주의를 외친다. 합법적으로 미국에서 일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국 비자 취득에 드는 시간과 복잡한 행정 절차가 외국 기업들이 프로젝트를 제때 완료하기 위해 편법을 사용하게 부추긴다면서, 이제는 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많은 기업이 미국에 대한 투자를 재검토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데 예전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그는 이번에 구금된 이들 중 다수가 전문가들이기에 현지에서 이들을 대체할 만한 노동자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주말 BBC가 현장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4일 벌어진 단속의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다만 도로변에서 촬영 중이던 취재진에게 두 보안팀이 다가오더니 자리를 옮기라고 요청했다.

조지아의 현대자동차 공장
Getty Images
76억달러(약 10조6000억원) 규모의 이 거대한 공장 단지는 조지아주 사바나 시에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조지아주 엘라벨에 자리한 이 전기차 공장은 주변 풍경을 압도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며, 2022년 프로젝트 발표 이후 지역사회의 주요 고용 창출원으로 자리 잡았다.

공화당 소속의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 주지사는 76억달러 규모의 이 단지에 대해 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 개발 프로젝트라며 홍보한다.

한편 이러한 사업은 사바나 지역 한인회의 재활성화로도 이어진다. 조다혜(미국명 루비 굴드) 회장은 "한인회가 점점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조 회장은 ICE의 이번 체포 작전에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주 가까이서 벌어진 이번 사건이 한-미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길 바라며, "내게도, 유명한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에도 충격을 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추가 보도: 아이샤 셈비, 이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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