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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TV 쇼의 흐름을 바꿨던 '도전! 슈퍼모델'...제작되는 게 맞았을까?

3일 전

"난 널 응원했어! 우리 모두가 널 응원했어! 그런데 어떻게 감히?"

'아메리카스 넥스트 톱 모델(ANTM, 도전! 슈퍼모델)'에서 타이라 뱅크스가 참가자 티파니 리처드슨에게 분노와 실망을 쏟아내는 이 장면은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의 전설로 남았다.

수백만 시청자가 보는 앞에서 전직 슈퍼모델이 희망에 찬 젊은 참가자를 마구 몰아붙이는 장면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프로그램의 가장 충격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이 뿐만이 아니었다.

참가자들을 향한 체형 비하, 인종을 바꾸는 콘셉트, 위험한 곡예에 가깝거나 "굴욕적인" 도전 과제 등을 적절히 버무리며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을 계속 끌어들였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전성기에도 ANTM은 리얼리티 TV 쇼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는 논쟁을 촉발했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이 프로그램을 처음 보게 된 시청자들은 의문을 품었다.

"이 프로그램은 도대체 애초에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거지?"

일주일마다 한 번씩 화보 촬영 대결을 펼치며 모델 지망생 여성들을 경쟁시키는 방식의 ANTM은 그야말로 문화적 현상이었다.

2003~2018년에 걸쳐 총 24개 시즌이 방영됐으며, 유명한 모델 소속사와의 12개월 계약을 꿈꾸는 새로운 참가자들이 매번 등장했다.

해당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던 뱅크스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ANTM은 170개 국가 및 지역에서 방영됐으며, 여러 국가에서 현지 스핀오프 프로그램이 제작됐다.

한편 ANTM과 현지 스핀오프 프로그램을 모두 경험한 인물이 있다. 18살에 영국판 '브리튼스 넥스트 톱 모델'에 처음 출연한 소피 섬너다.

소피 섬너와 심사위원이었던 제이 매뉴얼
Getty Images
ANTM 시즌 18의 우승자인 소피 섬너(왼쪽)는 해당 리얼리티 쇼가 의도적으로 "사람을 정신적으로 자극해 흔들어 놓았다"고 말한다

영국판에 출연하고 3년 뒤, 21세의 섬너는 ANTM 시즌 18에 출연했고, 결국 우승도 했다. 해당 시즌은 '영국의 침공'이라는 주제로, 영국 출신 모델들이 미국 출신 경쟁자들과 맞대결을 펼치는 내용이었다.

섬너는 BBC 뉴스비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판 프로그램에 비교하면 영국판은 "가벼운 소규모 대회" 같았다고 했다.

그는 당시 심사위원들이 자신의 외모를 세세하게 평가했던 것을 회상하며, 이는 당시 동료들에게 가슴 성형을 권유하고 "케이트 모스처럼 마른 체형"을 요구하던 가혹한 모델 문화가 "반영"된 결과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다른 도전 과제들, 특히 참가자들의 "인종을 바꾸는" 콘셉트는 완전히 "쓰레기"였다고 지적했다.

"모두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죠."

섬머는 해당 프로그램의 참가자로서 자신을 의도적으로 한계까지 몰아붙이기 위한 경험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제작진은 섬머에게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높이 338m의 마카오 타워 위에서 화보 촬영을 하도록 설득했다고 한다.

프로그램 측이 참가자들을 보호할 의무를 다했는지 관해 묻자, 섬머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우리는 이 쇼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것이었죠."

섬머는 자신 역시 제작진들이 원하는 바를 "인지"하고 있었다면서, 비록 이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스타가 되지는 못했으나, 그러한 플랫폼을 제공받은 점에 대해서는 "분명 감사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섬머는 미국에 진출하게 됐고, 현재도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 중이다.

그러나 섬머는 미국의 여러 소도시 출신 많은 젊은 여성들이 "엄청난 커리어" 성공을 기대하며 ANTM에 출연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한편 당시 ANTM 제작진은 적어도 초창기에는 오늘날 리얼리티 쇼 제작자들처럼 SNS와 씨름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올리퍼 트윅스트처럼 TV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분석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들도 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ANTM 참가자 100여 명을 인터뷰하기도 했던 트윅스트는 뉴스비트와의 인터뷰에서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일부 참가자들의 처우와 묘사 방법이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ANTM을 현대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결과를 알고 나면 누구나 말은 쉽다"고 강조했다.

즉 "리얼리티 TV라는 장르가 아직은 낯설었던 시절에 제작된 쇼이기에 관용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ANTM은 흑인 여성을 쇼의 얼굴로 내세웠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프로그램 장르 자체를 개척한 프로그램입니다."

"당시엔 새로운 도전이었고, 그만큼 실수도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러나 이를 그렇게 단순한 문제로 보지 않는 이들도 있다.

ANTM의 역대 논란을 조명하는 이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는 2003년 ANTM의 시즌 1에 참가한 에보니 헤이스의 이야기도 담겼다.

뉴욕 출신으로 당시 23살이었던 헤이스는 당시 심사의원들로부터 피부 질감이 "칙칙해" 보이고, 성격이 "너무 거칠다"는 평가를 들었다고 한다.

헤이스는 뉴스비트와의 인터뷰에서 23년이 지난 지금도 그 경험으로 인한 상처에서 "회복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내 인종, 피부 질감, 헤어스타일 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순수한 소녀로서 이 경험을 즐기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지난 몇 년간 애청자들은 쇼에서 드러난 시각과 발언은 당시 시대적 분위기의 산물이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헤이스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당시에도 자신이 받은 대우에 충격을 받은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TV 쇼가 뉴욕 출신 흑인 여자애인 나 에보니를 선택해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피부 질감이 너무 거칠다고 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제가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워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헤이스에 따르면 이러한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 당장 버스를 타도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말을 걸어온다"는 설명이다.

또한 제작진 중 누구도 이후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사과하고자 연락해온 적이 없으며, 헤이스는 시리즈 방영 이후 뱅크스를 다시 본 적도 없다고 한다.

넷플릭스의 새 다큐멘터리 '리얼리티 체크: 인사이드 ANTM'(Reality Check: Inside America's Next Top Model)에서 뱅크스를 비롯해 제이 매뉴얼, J 알렉산더, 나이젤 바커 등 당시 심사위원들은 그 시절의 충격적인 순간들에 대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뱅크스는 자신이 흑인 여성으로서 업계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바탕으로 ANTM을 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자신이 보기에 모델 업계에는 다양성이 필요했고, 이를 반영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출연자인 섬너는 뱅크스가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대의를 지지하고 싶었으리라 믿는다. 다만 뱅크스 또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시청률 제고와 수익 창출이 전반적인 목표가 돼 버렸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섬너는 "뱅크스는 거대한 시스템에 휘말려 시청률을 높여야 했고, 압박에 시달렸다고 말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 말을 이해해요."

현재 TV 진행자 겸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섬너는 이제는 패션 업계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했다고 믿는다. 그가 꼽는 가장 큰 원동력은 뱅크스가 아닌 '미투' 운동이다.

"뱅크스는 변화를 이끌 인물이 될 수 있었나?"는 섬머는 "물론이지만, 결국 다른 이들이 그 역할을 해냈다"고 덧붙였다.

ANTM 출연진과 함께 있는 타이라 뱅크스
Getty Images
신작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 타이라 뱅크스는 참가자 티파니 리처드슨에게 쏟아냈던 분노에 대해 입을 열었다

한편 3부작으로 구성된 이번 신작 다큐멘터리에서는 뱅크스 또한 시즌4에서 보여준 티파니 리처드슨과의 대립과 같은 순간들은 "지나쳤다"고 인정했다.

해당 다큐멘터리의 감독인 다니엘 시반과 모르 루시는 뉴스비트와의 인터뷰에서 ANTM 제작자와의 인터뷰 장면은 4시간에 걸친 녹화본에서 발췌한 것이라면서, 뱅크스를 비롯한 원작 프로그램 제작진 누구도 이번 다큐멘터리의 최종 편집이나 편집 방향에 대해 관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루시는 "뱅크스는 (이번 다큐멘터리) 참여를 결정한 순간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틱톡 등에서 원작 프로그램이 크게 회자됐습니다."

"타이라 역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기 입장을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ANTM을 2026년의 시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데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나, 시반은 시청자들에게는 새로운 관점에서 과거를 비판할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또한 이 논쟁에서 어느 편에 서야 할지 확신하기 힘들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은 패션계의 인종 및 체형 다양화에 크게 기여했지만, 동시에 많은 잘못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의 양면을 모두 바라보는 것만이 이를 비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BBC는 타이라 뱅크스를 비롯한 프로그램 제작진, 방송사 '더 CW' 측에 의견을 요청했다.

'리얼리티 체크: 인사이드 ANTM'은 오는 2월 1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BBC 뉴스비트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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