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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가기 시작합니다'…중국 감옥에서 5년을 살아남은 호주인의 이야기

2025.05.20
중국 교도소와 교도관의 모습
EPA
호주 국적의 매튜 라달즈는 해당 사진과 비슷하게 생긴 베이징의 한 수용시설에 5년간 수감되어 있었다

불결한 감방에서 수십 명과 함께 지내는 삶, 끊임없이 수면권을 박탈당하는 삶, 24시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 감방, 열악한 위생 상태와 강제 노동.

매튜 라달즈가 말하는 중국 교도소의 실상이다. 호주 국적자인 그는 과거 중국 베이징 제2교도소(외국인 수감자들을 위한 시설로 잘 알려진 곳이다)에서 5년간 복역했다.

현재는 중국을 떠나 살고 있는 라달즈는 자신이 겪거나 목격한 극심한 신체적 처벌, 강제 노동, 식사 제한, 정신적 고문 등에 대해 공개적으로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BBC는 라달즈의 이 같은 주장을 같은 시기 복역했던 다른 수감자들을 통해 확증했다. 그중 많은 이들이 여전히 중국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안전을 걱정해 익명을 요청했다. 이제는 다 잊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편 중국 정부는 이와 관련한 BBC의 의견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끔찍했던 시작

라달즈는 2020년 1월 2일 체포되며 시작된 자신의 복역 생활에 대해 회상하며 "(교도소에) 도착했을 때 내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첫 번째 경찰서에서는 2일동안 끊임없이 구타당했다. 48시간 동안 잠도 못 잤으며,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못한 상태였다. 엄청난 서류 더미에 강제로 서명해야만 했다"고 했다.

당시 베이징에 살고 있었던 라달즈는 약속했던 휴대전화 화면 수리 비용을 놓고 전자제품 시장 상인들과 싸움에 휘말렸으며, 이로 인해 부당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거의 100%에 달하는 유죄 판결률을 자랑하는 중국의 사법 시스템에서 무죄 주장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말을 듣고 결국 형량이라도 줄이고자 거짓으로 강도죄를 자백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 문서에 따르면 그에게는 징역 4년 형이 선고되었다.

그렇게 수감 생활을 시작하게 된 라달즈는 먼저 별도의 구금 시설에서 수개월간 생활하며 훨씬 더 잔혹한 일명 '전환 단계'를 겪었다고 한다.

이 기간 수감자들은 끔찍한 조건의 환경에서 극도로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만 했다고 한다.

"우리는 샤워는커녕 몸을 씻는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수개월간 씻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화장실도 특정 시간에만 사용할 수 있었으며, 무척 더러웠습니다. 위층 화장실에서 흘러내리는 오물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떨어졌습니다."

그 기간을 견딘 후 마침내 그는 '일반' 교도소로 옮겨졌다. 수감자들은 비좁은 감방에서 함께 생활해야 했으며, 전등은 24시간 켜져 있었다.

식사도 생활하는 감방 안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라달즈에 따르면 아프리카와 파키스탄 출신 수감자가 가장 많았으나, 아프가니스탄, 영국, 미국, 남미, 북한, 대만 출신 수감자들도 있었다. 마약 밀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착한 행동' 점수제

라달즈는 수감자들이 심리적 고문과도 같은 학대에 정기적으로 시달렸다고 했다.

이중 하나가 바로 '착한 행동 점수제'다. 이론상으로는 수감자들이 형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수감자들은 공산당 문학을 공부하거나, 교도소 내 공장에서 일을 하거나, 다른 수감자들을 고발하면 월 최대 100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4200점을 쌓으면 이론상으로는 형량을 줄일 수 있었다.

계산을 해보면, 수감자가 3년 반 동안 매월 최대 100점씩 모두 얻어야 하는 구조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점수제가 심리적 고문 수단 혹은 조종 수단에 불과했다는 설명이다.

교도관들이 수감자가 이 목표에 거의 도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갑자기 중대 위반 사항이 발견되었다면서 일부러 점수를 깎곤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반 사항에는 다른 수감자들과 음식을 나누거나 모으는 행위, 복도에 그려진 선에서 벗어나 "잘못" 걷는 행위, 침대에 양말을 잘못 걸어두는 행위, 심지어 창문에 너무 가까이 서 있는 행위 등이 포함된다.

2012년 8월 31일 반체제 인사 왕 샤오닝이 석방되던 날 제2 교도소 밖에 대기 중인 중국 공안
AFP/Getty
라달즈가 수감되었던 베이징 제2교도소의 정문. 2012년 촬영한 사진이다

BBC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수감자들 또한 이 같은 점수제에 대해 언급하며 이는 수감자들의 기를 꺾기 위해 설계된 심리 게임이라고 묘사했다.

상하이에서 2년간 복역한 영국 출신 피터 험프리는 자신이 지내던 교도소에도 유사한 점수제가 있었다면서, 수감자들을 통제하는 수단이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교도관들이 고위로 형량 축소를 막았다고 한다.

험프리에 따르면 "어디에나 감시카메라가 있었다. 한방에 3대씩 설치되어 있었"으며, "만약 복도에 표시된 선을 넘은 모습이 교도관이나 카메라에 적발될 경우 처벌을 받았다. 침대를 군대식으로 똑바로 정리하지 않거나, 치약을 지정된 위치에 두지 않아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집단적 압박도 있었습니다. 한 수감자가 이런 규정을 어기면 감방 내 수감자 전체가 함께 처벌을 받는 것입니다."

또 다른 수감자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5년간 복역하면서 점수제를 통해 실제로 감형받은 사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편 라달즈는 자신을 포함해 이 점수제에 애초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당국이 다른 방식으로 심리적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가족과의 월별 통화 시간을 줄이거나, 여러 혜택을 감축하는 식이었다.

통제 수단이 된 식량

하지만 가장 흔한 형태의 처벌은 바로 먹을 것을 줄이는 일이었다.

BBC가 이야기해 본 다른 전 베이징 제2 교도소 수감자들 또한 식사는 대부분 더러운 물에 둥둥 떠다니는 배추가 전부였으며, 종종 당근이 떠다니기도 했고, 운이 좋으면 작은 고기 조각이 들어있었다고 했다.

만터우(중국 북부식 하얀 빵)도 제공되었다. 라달즈에 따르면 수감자 대부분이 영양실조 상태였다.

또 다른 수감자의 증언에 따르면 수감자들은 언제나 배가 고팠기에 만터우를 많이 먹었다. 영양 상태도 심각한데다 일주일에 30분만 외부 운동이 허용되었기에 빈약한 상체에 복부만 부푼 사람들이 많았다는 설명이다.

한편 수감자들은 친척들이 일명 교도소 '계좌'에 돈을 입금하면 그 돈으로 비누, 치약 같은 생필품이나 추가 식량을 구매 할 수 있었다. 이 돈으로 컵라면이나 두유가루도 구매할 수 있었으나, 이러한 '특권'은 언제든지 박탈당할 수도 있었다.

라달즈는 교도소 내 공장 근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14개월 동안 구매권을 박탈당했다. 해당 공장에서는 수감자들을 동원해 기업에 납품하는 기초적인 제품을 조립하거나 중국 공산당을 위한 선전 전단을 제작했다.

회색빛의 교도소 내부와 교도관
AFP/Getty Images
베이징의 또 다른 교도소인 제1교도소 내부가 지난 2012년 드물게 언론에 공개되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수감자들이 일명 '농장'에서의 노동을 강요받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량으로 작물을 재배했으나, 절대 이 작물을 먹을 수 없었다.

라달즈는 이 농장이 교도소를 방문한 법무장관에게 인상적으로 훌륭한 감옥 사례로 소개되었으나, 전부 보여주기식이었다고 주장했다.

"토마토, 감자, 양배추, 오크라 등을 재배했지만, 시즌이 끝나면 큰 구멍을 파고 전부 묻어버렸다"는 것이다. 아울러 "고추나 오이 같은 것을 가지고 나갔다가 잡히면 8개월 동안 독방에 감금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수감자는 당국에서 시찰을 나올 때면 식단 상황이 더 나아 보이도록 갑자기 닭다리 같은 고기가 나오기도 했다고 했다.

험프리는 상하이 수감 생활 중 식량 사정도 비슷했다면서, 결국 이는 수감자들 간 권력 다툼으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주방에서 일하는 교도소 노동자들은 좋은 제품은 먼저 슬쩍 한 뒤 배급하곤 했습니다."

라달즈 또한 베이징 제2교도소에서 아프리카와 대만 출신 수감자 집단 사이에서 이와 비슷한 갈등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나이지리아 수감자들은 주방에서 일하며 "한 달에 1번 사과 한 봉지나 요거트, 바나나 몇 개 같은 작은 혜택을 챙겼다"는 것이다.

수염을 기른 라달즈가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Courtesy Matthew Radalj
아버지와 재회한 라달즈의 모습. 라달즈는 여전히 감옥에서 지내고 있는 이들에게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 후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대만 출신 수감자들이 교도관들을 설득해 주방을 넘겨받았고, 이후 귀중한 추가 식량 통제권도 확보했다.

결국 이는 대규모 싸움으로 번졌고, 라달즈 또한 이 싸움에 휘말린 탓에 다른 수감자를 때린 혐의로 194일 동안 독방에 감금되었다.

독방에서는 소등이 가능했으나, 반대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매우 어두운 환경에서 보내게 되어 감각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다.

게다가 안 그래도 적었던 식량 배급은 반으로 줄어들었다. 가로 1.2m 세로 1.8m 크기의 삭막한 독방에서 반년을 지내는 동안 읽을거리도, 대화할 상대도 없었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미쳐가기 시작합니다. 그게 바로 독방의 목적이기도 하고요 … 그래서 매우 빠르게 결정해야 합니다. 방이 정말 정말 작은지, 아니면 정말 정말 큰지요."

"4개월이 지나면 계속 혼잣말을 하게 됩니다. 교도관이 와서 '괜찮냐'고 묻습니다. '왜요?'라고 답하면 '너 지금 웃고 있잖아'라고 합니다."

그때 라달즈는 마음속으로 "당신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지 않냐"고 답하곤 했다.

한편 라달즈에 따르면 중국 현지 언론이나 방문하는 관료들에게 수감자들의 삶이 나쁘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가끔 거짓 '선전선동' 장면을 연출해야만 했던 것도 중국 교도소 생활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다

한번은 '컴퓨터실'이 마련되기도 했다.

"모든 수감자를 모아놓더니 각자 이메일 주소를 받게 될 것이고, 이메일을 보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나이지리아 수감자 3명의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터넷에 연결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혼란스러웠으나, 교도관들은 그들에게 '하는 척 연기'하라고 지시했다.

"이 모든 것은 수감자들이 컴퓨터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게 하기 위한 연출"이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해당 사진 촬영 이후 컴퓨터에는 비닐봉지가 씌워졌고, 다시는 사용되지 않았다.

일기

라달즈의 일기장 페이지
Courtesy Matthew Radalj
라달즈는 일기를 쓰며 감옥에서 지낸 시간을 자세히 기록했다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라달즈는 코로나19 시기 지급받은 마스크를 찢어 이용해 비밀리에 일기를 썼다. 이 과정에서 일부 북한 수감자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제가 일기를 쓰고 있을 때면 북한 수감자들은 '더 작게 써요 … 더 작게!'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라달즈에 따르면 수감자 중에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투옥되었다는 사실을 알릴 방법이 없는 이들이 많았다.

일부 수감자들은 계좌에 돈이 입금되지 않아 가족에게 전화를 걸 수 없었다. 자국 대사관 측에서 교도소 전화 시스템에 가족의 전화번호를 등록하지 않아 연락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었다. 공식적으로 승인된 번호로만 통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달즈가 일기를 밖으로 빼돌리려 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수감자들은 자신의 가족 전화번호를 넘겨주며 부탁해왔다.

"출소할 당시 제게 자신의 가족들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 전해달라며 요청한 수감자들만 60~70명이었습니다."

그는 공장에서 모아둔 접착테이프로 일기를 적은 마스크 조각을 최대한 단단하게 감싸 계란 크기로 만든 뒤 경비원들이 보지 않는 사이 이를 삼키고자 했다.

하지만 삼키지 못했다. 카메라로 이 상황을 목격한 교도관들이 "왜 구토하는 거지? 왜 계속 구역질을 하지? 무슨 일이지?"라고 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키는 대신 메모 뭉치를 숨기고자 애썼다.

2024년 10월 5일 출소를 앞두고 라달즈는 5년 전 첫 체포 당시 다투던 과정에서 찢어진 옛 옷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재킷 안감에 찢어진 부분이 있었고, 그는 교도관이 보지 못한 틈을 타 메모 뭉치를 그곳에 숨겼다

라달즈는 교도관들에게 누군가가 자신의 계획에 대해 밀고했다고 믿는다. 출소 전 관리들이 찾아와 그의 감방을 수색하고 '뭐 잊은 거 없냐'며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제 모든 물건을 부쉈습니다. 저는 저들이 절 다시 독방으로 보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혐의를 적용해서요."

하지만 그의 옷을 들고 있던 교도관은 그 안에 비밀 일기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들은 '여기서 꺼져!'라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비행기에 탑승해서, 비행기가 이륙해서, 안전띠 착용 표시가 꺼진 후에야 재킷 안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메모 뭉치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출소 이후의 삶

베이징에서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 그를 게이트까지 안내한 경찰관은 라달즈의 탑승권을 사용해 동료들에게 줄 면세 담배를 구매했다.

"그는 제게 중국에 돌아오지 말라면서 10년간 입국 금지가 내려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래요? 좋네요. 담배 피우지 마세요. 건강에 안 좋아요'라고 했습니다."

그 경찰관은 웃었다.

한편 호주 땅을 다시 밟은 라달즈는 마침내 퍼스 공항에서 아버지와 재회했다. 부자는 포옹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후에는 오랜 연인과 결혼해 현재 양초 등을 제작하며 살아가고 있다.

라달즈는 자신은 여전히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분노를 느끼며, 오롯이 회복하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과거 동료 수감자들이 건넨 연락처 목록을 통해 연락을 하고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수감자들의 가족에게 연락을 하고, 대사관에 부탁도 해서 이들이 더 나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고향의 가족이나 지인들과 거의 10년 가까이 연락하지 못한 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수감자들을 돕는 일은 라달즈 본인의 회복에도 도움이 되었다.

라달즈는 "내가 느끼는 자유에 큰 감사함을 느낀다"면서 "삶의 가장 단순한 것들에 대해 깊이 감사하게 된다. 하지만 감옥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대해 막중한 책임감도 느낀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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