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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양상을 바꾼 신무기들이 있는 곳, 우크라이나 최전선 '킬존' 내부를 가다

3시간 전
도네츠크주 코스티안티니우카에서 한 우크라이나 군인이 하늘의 FPV 드론을 경계하는 모습
93rd brigade, UAF
전선인 도네츠크주 코스티안티니우카에서 우크라이나 제93여단 소속 병사가 하늘의 드론을 경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소속 한 보병은 고립된 상태로 최전선의 참호에서 225일을 버텼다. 근육이 극도로 쇠약해져 제대로 걷기조차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다.

지휘관들은 다른 병력으로 교대하고자 5차례나 시도했으나, 끝내 그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최전선에서는 끊임없는 드론 위협 탓에 병력 교대 자체가 극도로 위험한 작전이다.

도네츠크주 코스티안티니우카 근처 이 지역은 현재 가장 위험한 격전지 중 하나로, 우크라이나 군 당국 또한 러시아가 이 지역 외곽까지 접근했음을 인정했다.

'켄야'라는 이름의 이 보병은 결국 지뢰와 드론의 위협을 피해 이틀에 걸쳐 11km를 걷고 나서야 후방의 여단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 상황
BBC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 상황

우크라이나 제93여단은 진격하는 러시아군으로부터 코스티안티니우카와 그 주변 마을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전략적 요충지가 함락될 경우, 러시아는 동부 돈바스 지역의 마지막 남은 우크라이나 거점인 크라마토르스크와 슬로우얀스크를 향해 북쪽, 동쪽, 남쪽 등 여러 방향에서 진격할 수 있게 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돈바스 점령을 러시아의 "우선 목표"로 보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에 따르면 그는 이를 올해 안에 달성하고자 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올여름 또 다른 대규모 공세를 계획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는 돈바스에서 좀처럼 진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웹사이트 '딥스테이트'에 따르면, 러시아가 4월 돈바스에서 확보한 영토는 이전 달의 절반 수준이었고, 2025년 12월 면적과 비교하면 6분의 1에 불과했다.

켄야의 임무는 자신의 위치를 사수하고 외부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러시아 군이 먼저 공격해 올 경우에만 교전에 나섰다.

켄야에 따르면 "대부분의 교전은 드론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신무기들은 전쟁의 양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켄야와 여단 소속 병사들은 현대 전쟁의 역설이라고 부를만한 현실을 몸소 겪고 있다. 전선에서 기계가 점차 인간을 대체하고 있지만, 영토를 점령하거나 방어하는 일에서는 인간 병사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탱크가 줄지어 나열하고, 병사들이 파도처럼 밀려가며 적진을 향해 돌격하던 전투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

대신 병사 2~3명이 들판을 걸어 이동하거나, 오토바이나 말, 자전거 등을 타고 이동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지상의 움직이는 모든 것을 추적하는 드론이 지배하는 이 광활하고 황량한 이른바 '킬존'에서 살아남으려면 두터운 무장보다는 속도가 더 중요하다.

이곳은 전선의 회색 지대로, 양측이 원격으로 운용하는 드론의 사정권 안에 놓여 있다.

켄야는 "우리는 진지 밖으로 나갈 때마다 살아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면서 "밤에는 열화상 카메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자 대드론 은폐 망토를 착용했지만, 효과는 길어야 20분 정도에 불과했다"고 회상했다.

드론으로는 진지를 점령할 수 없고, 고지대나 교차 지점을 통제할 수도 없다.

따라서 로봇과 원격 조종 무기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도 전쟁의 오래된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지상 병력이 없다면 어떤 영토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크라이나가 켄야 같은 군인들을 전장의 작은 참호와 벙커에 배치해두는 이유다. 이들의 할 일은 그 자리를 지키고 버텨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군인들에게 있어 가장 큰 두려움은 러시아군에 위치가 발각되는 일이다.

전선에서 122일을 버틴 카니가 바로 그런 일을 겪었다. 팔레스타인 출신 학생인 그는 1990년대 우크라이나로 건너와 정착했다.

카니가 있던 진지는 2층짜리 민가의 지하실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러시아군의 드론 공격과 포격으로 결국 무너져 내렸다.

러시아군이 지하실로 진입하려 하자 카니와 동료 병사들은 사격하며 맞섰고, 그 과정에서 이들의 위치가 노출됐다.

카니는 "우리가 거기 있다는 걸 알게 된 러시아군은 먼저 드론으로 폭탄을 투하하더니, 그 다음에는 자폭 드론을 보냈다"고 했다.

광섬유 케이블에 연결된 드론 한 대가 이들이 있던 지하실 안으로 날아들었으나, 입구에서 케이블이 뒤엉키며 제자리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이에 카니는 케이블을 향해 총격을 가해 드론과 원격 조종자 간 연결을 끊어냈다.

바로 그때 러시아 병사 2명이 진지를 습격했다.

"그들은 밖에서 대전차 지뢰를 터뜨려 입구를 파괴하고 잔해로 덮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죽었다고 생각한 거죠."

카니와 전우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파놓은 비밀 출구 덕분에 살아남았다.

110일간 버티다 최근 철수한 또 다른 우크라이나 병사 그라나타는 자신들이 진지를 포기도록 만들고자 러시아군이 가스 폭탄을 투하했고, 이 과정에서 동료 병사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돈바스의 킬존으로 향하는 모든 보급로가 차단된 상태이기에 식량과 탄약 또한 드론을 이용해 전방 진지로 실어 나른다. 그러나 이마저도 완벽하지는 않다. 드론이 공격당하거나, 교란당하는 일이 종종 있어 보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켄야 또한 식량이 부족했으며, 전달된 식량조차 쥐가 갉아 먹는 일이 많다고 회상했다.

"쥐는 금속만 아니면 무엇이든 갉아먹습니다. 쥐 때문에 통조림을 제외한 모든 식량을 빨리 먹어야 했습니다. 안 그러면 쥐들이 다 먹어 치웠습니다."

참호에서 가장 부족했던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병사들은 모두 물이라고 답했다.

켄야는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던 순간은 비가 내리던 날"이라면서 "옷을 모두 벗고 밖으로 나가 씻었다"고 했다.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25도까지 떨어졌다. 낡고 해진 침낭으로는 얼어붙은 땅이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의 냉기를 견디기 어려웠다.

카니의 동료 병사 하나는 시름시름 앓다가 "어느 날 갑자기 깨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사인은 저체온증이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측이 올여름 공세를 준비하며 전선에서 병력을 재편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에 대응해 러시아군의 물류 및 보급로에 대한 공격을 강화했다고 한다.

이러한 공격 또한 러시아군의 진격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됐을 수도 있다.

미국 '전쟁연구소(ISW)'에 따르면 지난달만 놓고 본다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획득한 영토보다 잃은 영토가 더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우크라이나 영토를 지켜내는 핵심 역할은 여전히 최전선의 보병들이 맡고 있다. 카니는 이들이 없다면 전선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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