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이버 애국주의'의 위험성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아침, 중국 광둥성 선전시 소재 일본인학교 교문으로 걸어가던 한 10세 소년에게 괴한이 다가와 칼을 휘둘렀다.
결국 소년은 숨졌고, 해당 사건에 일본과 중국 양국 모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는 외교적 갈등으로 이어졌다.
일본 정부는 이번 사건이 외국인 혐오에 의한 범죄라는 입장이다. 일본 외무부는 이번 공격이 “악의적이고 반일적인” SNS 게시물의 결과라고 비난했다.
온라인 평론가들은 이번 사건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날짜인 9월 18일쯤에 일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1930년대 초 일본의 중국 만주 점령으로 이어진 사건이 벌어진 날짜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최근 몇 년간 외국인 혐오 수사가 증가하면서 나타난 온라인 애국주의가 현실 세계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중국 온라인상에서는 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게시물 수가 급증했으며, 당시 일본의 침략은 여전히 양국 민족주의자들에게 민감한 주제로 남아 있다. 중국에 일본이 전쟁 중 저지른 잔혹 행위는 오랫동안 뼈아픈 부분으로, 중국은 일본이 여전히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이 같은 온라인 게시물은 외국인 혐오, 비애국적이라며 자국민을 공격하는 중국 내 더 광범위한 현상의 일부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이버 애국주의를 중국 정부도 거의 제지하지 않고 있으며, 온라인 애국주의가 반외국인 정서와 자국민에 대한 비애국자 비난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본다.
한편 일각에서는 온라인 애국주의가 너무 지나치다고 본다. 자국민을 비애국적이라며 비난하는 온라인상의 행태가 이념성 순수성을 지키자는 ‘문화혁명 2.0’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온라인 애국주의가 지난 1960~1970년대, 중국 공산당의 소위 적에 대한 국가 주도의 폭력 운동이었던 문화혁명을 연상시킨다는 주장이다. 당시 ‘홍위병’으로 알려진 청년 조직이 주도한 숙청으로 당시 수십만 명이 사망했으며, 가족, 이웃할 것 없이 서로를 배신하고 밀고했다.
작가이자 대학교수인 장 셩은 최근 수필에서 “과거 사람들은 홍위병을 소환했지만, 현재 사람들은 샤오펀훙(소분홍, 온라인 애국주의를 전개하는 사람들)을 소환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외국인 혐오 게시물
이번 사건에 대해 중국 네티즌 대다수가 남학생의 죽음을 애도했으나, 일부 사이버 민족주의자들의 태도는 이와는 매우 다르다.
‘웨이보’의 한 인기 댓글은 “나는 일본인들이 역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이상 이들이 어떻게 죽는지 상관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으며, 또 다른 댓글은 일본인들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중국인을 죽였다면서 “지금까지도 사과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어떻게 이들을 문명인이라고 할 수 있나”고 지적한다.
심지어 한 관료는 사적인 단체 대화방에서 “일본인 아이 하나가 죽은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며, “일본인을 죽이는 건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봉황TV’에 따르면 해당 관료는 현재 조사 받고 있다고 한다.
일본 측이 이 “야비한” 범죄에 대한 답을 요구하자, 중국은 이번 사건 관련 이야기를 강하게 검열하고, 이를 “우발적이며 개인적인 사건” 혹은 “개별적인 사건”이라고 부르며 사건의 규모를 축소하고자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최근 몇 달간 외국인을 노린 벌써 3번째 사건이다. 각 사건 발생 때마다 중국 당국은 “개별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일례로 올해 6월에는 일본인 어머니와 아들이 중국 소재 일본인 학교 밖 버스 정류장에서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을 보호하려던 중국인 여성 1명이 결국 숨졌다.
이보다 불과 몇 주 전에는 지린성의 한 공원에서 미국인 강사 4명이 괴한이 휘두른 칼에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두 사건 모두 범행 동기는 분명하지 않았으나, 온라인의 외국인 혐오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는 불안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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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매, 비난 등…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캠페인
한편 사이버 민족주의자들이 휘두르는 분노의 칼끝은 비단 외국인만 향하지 않는다. 최근 몇 달간 중국인 혹은 기업들도 애국심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있다.
‘농푸 스프링’은 중국의 대형 음료 제조 업체로, 이들의 생수 제품은 중국 내 편의점, 식당 등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올해 3월, 애국주의자들은 농푸 스프링의 제품에 일본 관련 요소가 있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제품 라벨에 있는 건축물이 일본 신사를 닮았으며, 상징과도 같은 빨간색 생수병 뚜껑은 일본 국기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이에 온라인에서는 짧지만 격렬한 캠페인이 벌어졌다. 일부 네티즌들은 불매 운동에 나섰으며, 사람들이 화를 내며 농푸 스프링 제품을 변기에 버리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SNS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모옌 또한 작품에서 일본군을 “미화”했으며, 비애국적 요소가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한 애국주의 블로거는 모옌이 중국을 모욕했다며 그를 고소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 크게 우려하는 목소리로 나왔다. 관영 신문 ‘환구시보’의 편집장 출신인 후 시진은 모옌과 같은 예술가에 대한 애국주의적 공격이 결국 창작 의욕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개적으로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지식인인 유 지엔롱은 최근 외국인 상대 칼부림 사건은 “위험한 포퓰리즘이 촉발했다”며, “이 같은 포풀리즘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영 언론조차도 온라인 민족주의자들이 “애국심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공산당의 의견을 대변하는 ‘인민일보’에는 “여론을 선동하고, 불에 기름을 부어… 관심을 얻고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을 반드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논평이 실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공산당이야말로 이러한 불을 지피는 데 일조했다고 말한다.
무엇이 불을 지피는가?
홍콩 침회대 커뮤니케이션 스쿨의 로즈 루치우 부교수는 “국가가 승인한 애국주의”와 외국 영향력에 대한 중국 당국의 끊임없는 경고가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격렬한 애국주의”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적으로 비애국적 행위로 간주돼 처벌될 수 있다는 위협으로 인해 상황이 더욱 악화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중국 정부는 중국 정부는 현재 “영웅과 순교자의 행위와 정신을 왜곡하거나 모독하는 등의”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작가 모옌에 대한 소송에 이용된 바로 그 법규이기도 하다.
또한 중국 정부는 광범위한 반간첩법을 통과시켰으며, 시민들을 상대로 외국인들의 의심스러운 활동을 신고하라는 캠페인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 정부는 자신들의 통치 정당화를 위해 학생들의 애국심 강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중국의 어린이들은 어릴 때부터 조국뿐만 아니라 중국 공산당도 사랑하도록 교육받는다.
한편 코로나19 전 세계적으로 기간 반중국 정서가 커지고, 서방에서는 무역 갈등으로 인해 중국에 대한 의심이 커지면서 일부 중국인들은 외국이 중국을 부당하게 차별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아울러 중국의 경제 둔화, 커지는 사회 문제 등도 영향을 미쳤다.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에서 중국의 온라인 애국주의에 관해 연구하는 플로리안 슈나이더 교수는 “많은 중국인이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고민을 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부동산 위기, 청년 실업, 연금 증발 등이 모두 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다”면서 “애국주의는 이러한 불만을 표출하기 위한 매우 쉽고 강력한 틀”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모든 요소가 결합하며 지난 몇 년간 중국 온라인상에서는 애국주의 블로거들이 크게 떠올랐다. 그중에는 팔로워 수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중국과 중국 공산당의 미덕을 찬양하고, 적들을 비난하는 애국주의 콘텐츠를 찍어내며 잠재적으로 수입을 창출한다.
슈나이더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은 종종 좌파 혁명적 열정으로 나서는 것이라 자신들을 포장하지만, 외국인 혐오 운동과 복고 운동을 주도하는 타국의 극우와 더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는 포퓰리스트”인 이들은 “사회를 상상 속 영광스러운 과거로 되돌리겠다는 꿈을 품고 있으며, 모든 엘리트와 외국 세력을 방해물로 간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위험한 균형
때로 중국 당국 또한 이러한 우려에 귀를 기울이는 듯한 모습이다.
올해 7월, 대중의 항의 속에 논란이 됐던 국가보안법 개정안이 조용히 철회됐다. 당국은 “중화민족의 정신을 훼손하고 감정을 해치는” 행위를 금지하는 해당 법안이 “대중의 정당한 권리와 정상적인 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중국의 SNS 플랫폼들도 주기적으로 관련 계정을 정지시키며 온라인 애국주의자들을 통제하고자 애쓰고 있다.
잘 알려진 애국주의 인플루언서인 시마 난과 구얀무찬은 경고 없이 검열됐다. 블로거의 작가 모옌을 향한 소송도 법원에서 기각당했다.
올해 한 쇼핑몰에 일장기를 닮은 장식품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한 블로거도 계정 폐쇄 조치를 당했다. 한 국영 언론의 평론가는 해당 영상은 “애국심이라는 온라인 트래픽에 편승한 악의적인 주장”이라며 신랄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 당국은 온라인 애국주의자들을 그리 강하게 단속하진 않는 모습이다.
중국 당국에 반대하는 계정이나 사람은 신속하게 폐쇄되거나, 사회 안정을 해친다는 이유로 체포되기도 한다. 그러나 애국주의 블로거들은 그 수사가 때로는 선동적일지라도 자유롭게 행동하는 등 활동 가능 범위가 더 넓다. 국영 언론이 나서 이들의 콘텐츠를 재게시하며 이들의 목소리를 부추기기도 한다.
BBC는 중국 정부에 민감한 콘텐츠로 간주되는 다른 콘텐츠만큼 애국주의 콘텐츠가 철저히 검열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에 대해 루치우 부교수는 중국 정부가 온라인 애국주의를 “자신들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반정부 목소리를 없앨” 안전한 배출구로 간주하기 때문일 수 있다면서, 특히 지금처럼 “불만을 표출할 사회적 배출구가” 필요한 경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덧붙였다.
즉 중국 정부는 애국주의자들을 격려하고 때로는 통제하는 방식으로 “애국주의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고 있으며, 통제 불가능의 수준으로 확산할 위험이 있을 때만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위험한 도박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중국 정부는 최근 몇 년간 자신들의 권위에 심각하게 도전하는 여러 시도를 성공적으로 탄압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이 그랬으며, 2022년 고강도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백서 시위 등이 그렇게 잠잠해졌다.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애국주의의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애국주의가 여전히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슈나이더 교수는 “중국 지도부 입장에서 애국주의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것”이라면서 “현재 우리는 그에 따른 대가를 목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중국 지도부가 그 대가를 줄이고자 애국주의를 재고하거나 혹은 버릴까요? 저는 그렇다고 보지 않습니다.”
추가 보도: 이안 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