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총리, '바이든 사퇴' 후 혼란한 미국 정계에서의 미묘한 균형잡기
자국 국민과 미국 행정부로부터 가자 지구 전쟁을 끝내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번 주 미국을 방문한다. 현재 혼란한 미국의 정치 상황은 총리의 방미 일정과 향후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며(코로나19에서 회복한다면), 미국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연설자로 나서게 된다. 이는 네타냐후 총리의 4번째 미 의회 연설로, 외국 정상으로는 역대 최다 기록이다.
이번 방미 일정을 통해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 지구 전쟁에 대한 자신의 강경한 태도로 인해 지난 몇 달간 이어진 미 당국과의 긴장을 완화하는 한편, 자국민에겐 자신이 가장 중요한 동맹국과의 관계를 약화시키지 않았음을 보여주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이스라엘의 차기 파트너에 대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부각되고 있으며, 네타냐후 총리의 방미 일정에 대한 관심도도 떨어질 수 있다.
한편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까지 자국에서 달갑지 않은 관심의 중심에 섰다. 인질 석방을 위해 하마스와의 휴전 협상에 집중하라는 시위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시위에 참여한 리 시갈은 “총리가 현재 협상안에 서명하기 전임에도 대서양을 건너 정치적 혼란이 불거진 미국에 가겠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리의 형제 키스(65)는 현재 가자 지구에 억류돼 있다.
리는 네타냐후 총리의 이번 방문은 정치적 행보라면서, 총리가 그만 ‘장애물’처럼 굴고 어서 휴전 협정에 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개인적인 정치적 이유로 협상을 일부러 느리게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 진전이 있는 것처럼 보였던 회담에 새로운 조건을 던져 협상가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주장에 리 또한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실제로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에 양보할 경우 내각을 무너뜨리겠다고 위협하는, 극우 성향의 두 내각 장관의 압박에 굴복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최근 휴전 협상이 실제로 타결될 수 있다며 낙관적인 전망을 드러냈던 백악관의 좌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칭 시온주의자로, 역대 가장 친이스라엘적인 미 대통령이다. 이스라엘을 향한 지지와 공감으로 많은 이스라엘인들의 찬사를 얻는 인물로,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 공격 직후 이스라엘을 직접 방문하며 더욱 이를 공고히 했다.
그러나 그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 지구의 하마스에 맞서 ‘완전한 승리’를 이루겠다는 네타냐후 총리의 주장에 대해 점점 더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팔레스타인 건국 등의 내용이 담긴 전후 해법을 거부한 이스라엘 총리에게 불만을 품은 상태다. 아울러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더욱더 보호하고, 가자 지구로의 인도주의적 원조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거부한 총리에게 분노하고 있다.
게다가 가자 지구에서 갈수록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미국 내에서도 반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리고 미 당국은 이번 갈등의 중동 지역 내 확산을 우려한다.
한편 국정 수행 능력에 대한 의문이 커지며 바이든 대통령의 힘이 약해진 상황에서 그가 네타냐후 총리를 계속 압박하기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전직 이스라엘 총리로, 네타냐후 총리를 비난하는 에후드 바라크는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 결정이 오히려 그의 힘을 더 키워줄 것이라 봤다.
바라크 전 총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외교 정책 분야에선 레임덕 현상을 겪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젠 유권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할 필요가 없기에 어떤 면에서 더 독립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 문제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아마 이젠 정말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며 훨씬 더 자유롭다고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바라크 전 총리는 네타냐후 총리를 미 합동 회의의 연설자로 재차 초대한 미 당국의 결정에 대해 실수라고 비난하며, 수많은 이스라엘 국민이 하마스의 공격을 가능케 한 총리의 정책 실패를 지적하고 있으며, 국민의 4분의 3이 총리 사임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바라크 전 총리는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을 대표하지 않는다”면서 “총리는 이스라엘 국민들의 신임을 잃었다 … 그리고 미 의회가 총리를 다시 초대해 마치 그가 이스라엘을 구하는 듯한 그림을 연출하는 건 네타냐후 총리에게도, 이스라엘 국민들에게도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든 간에,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의 군 지도부를 계속 공격하면서 현재 하마스의 힘이 크게 약화했기에 군사적으로 계속 압박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을 떠나기 전 네타냐후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도 그런 분위기로 흘러갈 것이라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앞으로 몇 달간 양국에 모두 중요한 목표를 향해 어떻게 나아갈지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면서 “인질 전원 석방, 하마스 격퇴, 이란 및 그 대리 세력으로 구성된 테러 축에 대한 저항, (분쟁으로 인해 살던 지역을 떠난) 남부와 북부의 이스라엘 국민들의 안전한 귀향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에 매우 중요한 초당적 지지를 얻어내고자” 미 의회에서도 이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실은 네타냐후 총리의 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초당적 지지가 분열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그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으나, 민주당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최근 상원에서 네타냐후 총리야말로 팔레스타인과의 지속적인 평화를 가로막는 장애물 중 하나라고 지적하며 미 정계에서 작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인질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에서 연설자로도 나선 토마스 니데스 전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 주말 BBC와의 인터뷰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많은 의원들이 품은 걱정거리를 이해하고 이에 대응해 주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미 의원들이 “인도주의적 문제를 해결하고, 이번 싸움이 팔레스타인인이 아닌 하마스와의 싸움을 분명히 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이는 카멀라 해리스 현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돼도 나올 수 있는 메시지다. 해리스가 대통령이 돼도 미국의 이스라엘 정책엔 변화가 없을 것이다. 가자 지구의 분쟁 종식을 촉구하는 한편 이스라엘의 안보를 보장하고, 아랍 국가들과 함께 이 지역의 평화를 구축하는 ‘종전 그다음 날의’ 계획을 세워나가자는 생각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우선 해리스는 바이든과 달리 이스라엘과 오랜 역사 및 정서적 유대감으로 얽혀 있지 않다. 해리스는 바이든과는 다른 세대 인물일 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 더 젊은 층이 공유하는 정서에 더 가까울 수 있다”는 게 믹 멀로이 전 미 국방부 중동 담당 부차관보의 설명이다.
“미국이 가자 지구에서 사용되는 무기, 군수 물자를 제한하자는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방미 일정을 통해 가자 지구에 대한 논란 대신 이란으로부터의 위협으로 관심을 돌리고자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내 ‘후티’와의 갈등이 고조된 상황이기에 더더욱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왈라 뉴스’의 탈 샬레브 외교 특파원은 네타냐후 총리가 겨냥하는 주요 청중은 자국민일 것이라고 봤다.
샬레브 특파원은 네탸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자신이야말로 미국에 이스라엘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미스터 아메리카”임을 보여주고 싶어 하며, 아울러 10월 7일 공격으로 실추된 이미지도 회복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샬레브 특파원은 “총리가 미국에 가서 의회 앞에서 연설을 하고, 백악관에서 회담한다면, 그의 국내 정치 지지층엔 옛날의 ‘비비’가 돌아온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비비’는 네탸나후 총리의 별명이다.
“지난해 10월 7일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실패한 비비가 아니라, 의회에 가서 기립 박수를 받는 옛 비비가 돌아왔다고 보여주고 싶은 거죠.”
또한 네타냐후 총리 입장에선 미 정계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관계를 추구할 기회이기도 하다.
샬레브 특파원은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의 승리를 원한다”면서 “선거 전 트럼프와 좋은 관계를 다질 수 있길 희망한다”고 설명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해 현재 자신이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받고 있는 압박을 완화해 주길 바라며, 그동안 시간을 벌고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이스라엘 폴리시 포럼’의 마이클 코플로우 또한 “트럼프가 승리하면 자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에 네타냐후가 트럼프의 승리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고 언급했다.
“휴전 협정, 서안 지구 정착촌 문제, 정착민 폭력 사태에 대해 자신을 압박하는 바이든이 사라지는 거죠 … 트럼프의 재집권 후 상황이 이렇게 될지 의심해 볼 이유는 많지만, 적어도 네타냐후 총리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경쟁에서 물러난 지금, 과연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압박 수위를 조절할지 혹은 남은 임기 동안 가자 지구 전쟁 종식에 집중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