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이슬람 신학교 항의로 난항 겪는 최초의 '모유은행' 설립 시도
파키스탄 최초의 모유 은행을 설립하려는 야심찬 프로젝트가 카라치의 이슬람 신학교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앞서 해당 프로젝트를 조건부로 승인한 이슬람 성직자들은 개관을 며칠 앞두고 이를 철회했다.
파키스탄은 세계에서 5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로, 유니세프에 따르면 남아시아에서 가장 유아 사망률이 높다.
모유 은행과 같은 시설은 어린 아기들의 생사를 가를 수 있는 사안이다. 생모의 모유를 먹을 수 없는, 조산아나 아픈 영아들에겐 최고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위한 투쟁
바시라는 전에 살던 마을에서 아들을 출산했으나, 아들은 출산 직후 오래 버티지 못했다.
이후 카라치로 이사한 바시라와 남편 라힘 샤는 둘째 딸을 낳았고, 딸마저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바시라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딸은 미숙아였고, 의사들은 내게 모유 수유를 권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제 모유량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바시라 부부는 무력감을 느꼈다.
“제 딸은 집중치료실의 인큐베이터에 있었습니다. 7개월 만에 태어났거든요. 모유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분유도 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딸을 살리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자식을 잃은 어떤 여성이 이들의 생명줄이 돼 줬다.
바시라는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다 최근 출산 직후 아기를 잃은 여성을 찾았다”면서 “그 여성에게 모유 수유를 부탁했고, 흔쾌히 동의했다”고 회상했다.
남편 라힘은 이 여성의 도움이 없었다면 딸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 덧붙였다. “딸의 면역력을 위해 모유가 절실히 필요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모유 은행
바시라의 경우 기증자가 직접 딸에게 수유했다.
반면 모유 은행의 경우 기증자의 모유는 인체에서 나온 생물학적 물질이기에 가공 과정을 거친다. 이후 안전성 테스트를 거쳐 냉동고에 보관된 뒤, 모유가 필요한 영아에게 전달된다.
말레이시아와 이란 등 이슬람교도가 많은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일부 종교학자들은 이러한 모유 은행이 수유에 관한 이슬람 율법에 위배된다고 말한다.
이슬람 세계에선 생물학적으로 혈연관계가 아닌 아기에게 모유를 수유하면 이 여성과 아기는 “모유를 통한 친족” 관계를 맺게 된다고 본다. 그래서 동일한 여성의 모유를 먹고 자란 아이들은 형제자매로 간주된다.
이슬람에선 율법상 허용되거나 율법에 일치하는 행위를 ‘할랄’이라고 부르며, 그 반대는 ‘하람’이라 한다. 그리고 최근, 파키스탄의 일부 종교학자들이 나서 모유 은행 설립 계획이 ‘하람’이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당국은 “이슬람 율법을 따르는 모유 은행을 설립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신드주의 아즈라 페추호 보건장관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슬람 이념위원회’에 여성들이 이슬람 율법에 따라 모유를 수유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발송했다고 언급했다.
같은 여성의 모유를 먹은 형제자매간 결혼은 이슬람 율법상 불법이라는 우려에 대해 페추호 장관은 “모유 기증자에 대한 기록을 남길 것이며, 이는 기증 받은 영아의 부모에게 전달된다. 기록 추적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페추호 장관은 남아는 남아의 어머니에게서만, 여아는 여아의 어머니에게서만 모유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강화해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는 2012년 튀르키예 이슬람 율법 학자들이 택한 방식과도 유사하다.
파트와
카라치의 모유 은행은 지난해 12월 25일에 이슬람 기관들로부터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당국이 기증자의 이름을 수혜자에게 공유해야 하며, 이슬람교도 여성의 모유는 이슬람교도 영아에게만 제공된다는 조건이다.
아울러 금전적 거래가 있어선 안 되며, 임신 기간이 34주 미만인 아기에게만 제공될 수 있다. 아울러 친모의 모유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만 기증받을 수 있다.
파키스탄 헌법은 모든 법과 정부 부처가 샤리아법, 즉 이슬람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당국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고 자신했으나, 카라치의 한 지역 신학교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지난달 16일 발표된 개정 파트와는 이슬람 율법 안에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지침을 모유 은행이 따르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신드 아동 건강 및 신생아학 연구소(SICHN)’ 측은 이슬람 신학교인 ‘다룰 울룸 카라치’로부터 파타와를 전달받은 이후 모유 은행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SICHN 측은 “이 문제에 대해 다룰 울룸 카라치와 ‘이슬람 이념 위원회’에 추가 지침을 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SICHN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프로젝트가 과학적으로도 타당할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올바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양분과 면역력
유니세프에 따르면 파키스탄에선 신생아 1000명 중 54명이 사망한다. 파키스탄 당국은 오는 2030년까지 이를 12명으로 낮추고자 한다.
모유는 영아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과 면역력을 전달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생후 0~23개월의 모든 아동이 최적의 모유 수유를 받는다면 매년 5세 미만 어린이 82만 명 이상이 생존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한편 파키스탄의 모유 은행 프로젝트를 지원한 유니세프는 이번 논쟁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
2018년 WHO와 유니세프는 생모의 모유를 먹을 수 없는 영아에게 다른 여성의 모유를 먹일 것을 권고했다. 미국과 유럽이 보건 당국 또한 이러한 경우 기증 모유 수유를 권장한다.
글로벌 규제 미비
WHO에 따르면 모유 은행을 운영하는 곳은 전 세계적으로 60개국 이상이다. 그러나 종교계의 반대는 여전히 막강하다.
지난 2019년 방글라데시에 설립된 한 모유 은행은 종교 단체의 시위로 1달 만에 운영을 중단했다.
‘미국 소아과학회’의 연구 논문에 따르면 “서방 국가의 무슬림 가정의 경우 기증자의 신원을 알 수 없어 모유 은행 사용을 꺼린다”고 한다.
아직까지 모유 은행 설립과 관련해 국제 사회에서 정해진 가이드라인은 없다. WHO는 이러한 가이드라인 수립 작업에 이제 막 착수한 상태다.
한편 파키스탄 최초의 모유 은행 설립 프로젝트의 운명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바시라의 어린 딸은 기증자의 세부 정보를 제공한다는 병원 내 비공식적인 합의 덕에 현재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바시라는 이제 다른 엄마들을 돕기 위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기증해 준) 그 어머니에게 영원히 감사할 것”이라는 바시라는 “만약 이 은혜를 갚고 생명을 구할 기회가 있다면 그 아이에게 똑같이 베풀 것”이라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