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 망명, 탄핵…역대 한국 대통령의 스캔들 역사

4월 4일 공식적으로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각종 스캔들로 인해 평판이 훼손되거나 임기를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전직 한국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게 됐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는 기소되거나, 망명하거나, 투옥된 이들도 있다.
윤 전 대통령 본인 또한 검찰총장 재직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수감을 끌어낸 수사를 지휘하던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 윤 전 대통령은 탄핵과는 별개로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내란죄로 수사받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윤 전 대통령이 기소될까 두려워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정치적 커리어가 극적으로 끝난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에 대해 살펴봤다.
강제 망명
이승만 전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 약 30년간 항일 독립 운동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 국가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를 존경하지만, 권위주의적 행보를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이 전 대통령은 1948년 취임 직후 정치적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법을 시행했으며, 6.25 전쟁 중 민간인 학살에 대한 비난도 받고 있다.
당시 야당은 1960년 이 전 대통령의 재선 결과에 불복하며 투표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이는 결국 학생 주도의 시위로 확대되었고, 일부 시위대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지기도 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하야했다.
그리고 그해 5월 하와이로 떠났고, 1965년 그곳에서 사망했다.
측근에 의한 암살

일제강점기 초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에 입대해 만주 지역에서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복무했다.
그러던 1961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이승만 정권의 뒤를 이어 출범한 장면 내각을 전복시켰고, 이후 대통령이 되었다.
박 전 대통령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릴 정도로 급격히 경제가 성장하던 18년 동안 한국을 이끌었다. 이 시기 한국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현대, LG, 삼성과 같이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대기업 육성에도 힘썼다.
그러나 임기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정권은 점점 더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1972년에는 헌법의 일부 기능을 정지시키고, 국회를 해산한 뒤 스스로 '종신 대통령'으로 올라섰다.
박 전 대통령의 경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한국은 반대파를 잔인하게 탄압하는 그의 통치에 반발한 시위가 거세지며 큰 혼란을 겪었다.
그러던 1979년 10월, 그는 저녁 만찬 자리에서 자신의 중앙정보부장이자 오랜 친구였던 김재규에게 암살당하게 된다.
내란죄, 쿠데타, 학살 혐의로 수감

1980년, 군 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게 된다.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의 계엄령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였던 광주에서 잔인한 군사 진압 작전을 지휘했다. 당시 민주화 운동가 200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전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매년 10% 안팎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는 죽는 그날까지 사과하지 않았던 독재자로 대부분 기억되고 있다.
1983년 전 전 대통령은 북한이 주도한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았다. 미얀마를 국빈 방문하던 중 그가 참석한 행사에서 폭탄이 터진 것이다. 이 사건으로 21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1988년 전 전 대통령은 쿠데타 동지이자 육군 장군 출신인 노태우를 후계자로 지목했다.
두 인물 모두 쿠데타 및 광주 학살에 가담한 혐의, 부패 혐의로 1996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 중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쿠데타를 옹호하며 "그때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은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두 전 대통령 모두 2년만 복역한 후 1997년 사면되었다.
뇌물수수 조사 중 스스로 생 마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지 않고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었다. 1977년 판사로 임용되었으나, 이후 판사직을 그만두고 인권 변호사가 되어 친공산주의 의혹을 받는 학생 운동가들을 변호했다.
2002년, 그는 대선에서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게 된다. 초반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2%에 불과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한국을 역내 다른 국가들과 함께 "강한 중견국"으로 만들고자 했으며, 북한과는 교역과 지원을 통한 소위 햇볕 정책을 추진했다.
2007년 퇴임 후에는 고향인 경남 지역으로 돌아가 오리 농장을 운영했다. 그러나 퇴임 14개월 뒤, 그는 600만달러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부패 수사에 직면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여론은 사후 크게 개선되었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는 한국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으로 꾸준히 평가받고 있다.
부패 혐의로 수감

현대건설 CEO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1992년 정계에 입문하여 10년 뒤 서울 시장직에 당선되었다. 2007년 선거에서는 투표일을 앞두고 현대차 관련 스캔들이 다시 불거졌음에도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이 전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 위기 시절 나라를 이끌었으며, 2018년 동계 올림픽 유치에도 성공했다. 2013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그의 뒤를 이어 당선된 인물이 한국 역사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이다. 그는 암살당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아버지의 명성을 바탕으로 이미지를 내세웠다. 그러나 측근인 최순실(무속 사이비 종교 지도자의 딸)과 연계된 부패 스캔들로 인해 2016년 탄핵을 당하게 되고 1년 뒤에는 구속수감되었다.
퇴임 5년 뒤, 이 전 대통령 역시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되어 수천만달러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삼성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유죄가 인정되었다.
박 전 대통령은 22년, 이 전 대통령은 15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두 전 대통령 모두 이후 사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