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전쟁 또는 불안한 휴전? … 레바논 '통신기기 폭발' 이후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시민들은 혹시나 또 다른 공격이 발생하는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을 안고 휴대전화와 같은 통신 장비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 지역에는 이보다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및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이란 간 전면전 발생 가능성이다.
지난 17일 레바논 전역에서 무선 호출기 수천 개가 폭발한 데 이어 다음 날인 18일에는 헤즈볼라 조직원을 겨냥한 무전기 폭발 사건이 발생해 현재까지 37명이 사망하고 2600명 이상이 다쳤다.
이번 연쇄 공격의 배후로 이스라엘이 지목되고 있으나, 이스라엘은 아직 이에 대해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17일,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전쟁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선포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레바논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를 살펴봤다.
1. 헤즈볼라가 약해졌다고 판단한 이스라엘이 '결정적인' 승리를 기대하며 추가 공격을 감행하는 상황
전면전에 대한 공포가 커지는 가운데 피라스 아비아드 레바논 보건부 장관은 레바논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비아드 장관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지난 이틀 간 일어난 두 건의 공격은 저들(이스라엘)이 외교적 해결책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레바논은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한편 아랍 정세에 정통한 분석가인 에후드 야리는 이번 공격으로 이스라엘에는 헤즈볼라와 헤즈볼라가 지닌 엄청난 정밀 유도 미사일 보유량에 맞서 결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로 헤즈볼라는 통신 체제가 망가졌으며, 다수의 현장 지휘관이 부상당했으며, 일부는 위중한 상태다.
야리는 이스라엘 ‘N12 뉴스’ 웹사이트에 “현재와 같은 상황이 언제든 재현되긴 어렵다”고 적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현재 헤즈볼라는 2006년 2차 레바논 전쟁 이후 최악의 상황입니다.”
폴 아담스 BBC 국방 특파원은 가자 지구에서 전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스라엘군이 이 드문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지, 더 큰 분쟁이 벌어질지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
- 이스라엘의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 암살...먹구름 드리운 가자 휴전 협상
-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무엇이며,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게 될까?
- 이스라엘-레바논 국경 지역에서 포착된 파괴와 공포
2.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지상전을 전개하며 보복하는 상황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지난 19일 이번 공격에 대해 이스라엘이 “모든 한계, 규칙, 레드라인(용인할 수 있는 한계선)”을 넘어섰다고 비난했다.
나스랄라는 이번 공격이 헤즈볼라를 향한 전례 없는 공격임은 인정하면서도, 헤즈볼라의 지휘 및 통신 능력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 같은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 중이라고 덧붙였다.
나스랄라는 “전쟁 범죄, 선전포고. 그 어떠한 이름을 붙여도 타당한 일”이라면서 “이게 바로 적들의 의도였다”고 언급했다.
나스랄라는 정당한 처벌을 다짐하면서도, 당연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가자 지구에서 휴전 협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국경 지역에서 이스라엘과 주고받고 있는 교전은 계속될 것이며, 폭력 사태로 인해 실향민이 된 이스라엘 북부 주민들은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에서 중동 및 북아프리카를 연구하는 암자드 이라키 연구원은 이번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에 “도발적인 신호”를 보냈으며, 이로 인해 훨씬 더 격화된 역내 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라키 연구원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헤즈볼라는 이제 상황을 고조시켜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으며, 그렇게 할 경우 이는 이스라엘 군에 이미 소문이 돌고 있는 지상 침공을 감행할 명분을 주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라키 연구원은 “가자 지구에서 자신들이 세운 핵심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상태”이기에 이스라엘 정부로서는 “북부 전선에서 헤즈볼라를 상대로 억지력 개념을 다시금 분명히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설명했다.
3. 이번 공격으로 헤즈볼라가 약화되고, 추가 분쟁 가능성은 감소하는 상황
나피세 코나바드 BBC 페르시아 중동 특파원은 현재 베이루트에 있으며, 나스랄라의 연설을 지켜봤다.
코나바드 특파원은 이번 공격이 엄청난 타격이었던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나스랄라 또한 큰 공격이었다면서, 헤즈볼라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큰 시험대”에 올랐다고 인정했다.
코나바드 특파원은 나스랄라의 이 같은 발언은 현재 이들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지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에 부상당한 이들 대부분이 고도로 훈련된 젊은 엘리트 대원들이다. 그리고 현재도 이스라엘-레바논 국경 지역에서는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가 헤즈볼라가 추가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을 막진 못하겠지만, 어느 정도 영향은 미쳤다는 게 코나바드 특파원의 분석이다.
다만 헤즈볼라에는 동맹 세력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란,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예멘의 후티 등 이들 동맹 세력은 헤즈볼라뿐만 아니라 레바논 자체도 레드라인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최근 코나바드 특파원과 대화한 어느 준군사 단체의 대원은 자신들은 이미 레바논을 드나들고 있었으며, 헤즈볼라를 돕는 정보원들도 포진해 있다고 했다. 이러한 단체들은 수년간 시리아에서 함께 싸워왔으며, 헤즈볼라는 현재 이들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레바논에서 벌어진 이번 공격은 효과적이었지만, 헤즈볼라라는 그룹은 지역에서 여러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게 코나바드 특파원의 설명이다.
4. '무선 통신기기 공격'이 더 광범위한 전략의 일부가 아니었던 상황
고든 코레라 BBC 안보 특파원에 따르면 또 다른 가설도 존재한다. 이스라엘의 첩보 기관 ‘모사드’가 원래는 접경국인 레바논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에 대비해 무선 통신 기기 폭발을 준비했을 것이라는 설이다.
그러나 헤즈볼라 내부적으로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던 무선 호출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생겨났고, 이에 모사드는 “지금 작동하지 않으면 쓸모없게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난 17, 18일에 무선호출기 및 무전기의 폭파 장치를 발동시켰다는 것이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이번 공격이 더 큰 계획의 일환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게 코레라 특파원의 설명이다.
‘채텀 하우스’의 이라키 연구원 또한 무선 호출기와 무전기를 폭발 장치로 바꾸는 작업은 몇 년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몇 달 전부터 준비해 온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현재 여러 언론에서는 왜 하필 지금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추측하고 있다.
이라키 특파원은 “일부 언론에서는 헤즈볼라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이 사용하던 이 장치들이 조작됐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보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의 작전은 천천히 축소하는 한편 이제는 레바논 쪽으로 점점 더 관심을 돌려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공격은) 보다 전략적이고 조직적인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하는 언론 보도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