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이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성소수자에게 우호적인 이유는?
최근 태국 국왕이 동성 간 결혼 허용을 골자로 한 결혼평등법을 최종 승인하면서 태국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ESEAN) 국가 중 최초로, 아시아에서는 3번째로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국가가 됐다.
새 법안은 ‘남편과 아내’라는 용어 대신 ‘배우자’라는 용어가 사용돼 모든 개인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헌법의 원칙을 따르게 된다.
최종적으로 통과되기까지 20여 년이 걸린 이 법은 왕실 관보에 게재된 지 120일 후인 내년 1월 2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결혼평등법에 따라 태국에서는 18세 이상이면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법적으로 결혼과 이혼을 할 수 있다.
사회보장 수급권, 의료비 상환권 등 배우자로서 정부의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배우자의 의료 결정권, 자산 관리권 등도 정당하게 누리게 된다.
BBC 태국어 서비스는 유독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태국이 성소수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우호적이고 개방적인 이유 3가지를 살펴봤다.
- 태국 국왕, '동성 결혼 허용 법안' 승인…내년 1월부터 합법적 결혼 가능
- 태국 유명 트랜스젠더 재벌,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원회 인수
- 싱가포르, '동성애 금지법' 폐지로 새롭게 불붙는 동성결혼 합법화 논쟁
종교적인 이유
‘프린세스 마하 차크리 시린톤 인류학 센터’의 나루폰 두앙위셋 박사는 지난 10여 년간 태국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역사, 문화, 다양성에 대해 연구해온 전문가다.
두앙위셋 박사는 BBC 태국어 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불교는 교리상 성소수자를 금지하거나 이들을 벌하는 내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불교는 오직 ‘반드하카’, 즉 양성애자나 내시의 승려로의 출가만을 금한다는 설명이다.
“이슬람교나 기독교 사회에서 흔히 그랬던 것과 달리 불교 중심 사회에서는 이들을 체포, 투옥, 구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태국의 주요 종교인) 상좌부불교의 생활 방식에 따르면 만약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개인은 반(半)여성, 반남성, 혹은 트랜스젠더로도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두앙위셋 박사는 이러한 종교적인 배경 덕에 태국 사회가 상대적으로 다문화적인 성향으로, 유연하다고 본다.
아울러 태국은 불교 외에 힌두교의 영향도 받은 국가다. 힌두교는 다신교로, 신은 남성도 여성도 아닐 수 있다. 그렇기에 대부분 태국인이 믿는 이 같은 종교에 이미 성별은 다양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내재돼 있는 것이다.
식민지 경험은 아시아를 어떻게 바꿨나
한편 18세기 당시 ‘시암’이라고 불렸던 태국은 식민지가 아니었기에 서구 식민지주의 국가들의 영향권 아래 강하게 종속되지 않았다. 당시 서구 식민지배자들은 기독교에 따라 동성애를 신의 통치에 반하는 죄로 간주해 동성애를 금지하는 법을 채택했다.
예를 들어 버마(이후 ‘미얀마’)는 태국과 마찬가지로 성소수자에 대한 개방적인 사회였다. 버마의 트랜스젠더들은 무당이 되거나, 결혼 등의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등 종교의식에서도 자신들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1820년대 무렵 버마를 통치하게 된 영국 식민지배자들은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동성애를 신의 통치에 반하는 죄로 간주해 버마 국민들을 상대로 동성애 행위를 금지하는 중죄법을 시행했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태국의 이웃 국가들도 이렇듯 영국의 영향을 받았다.
역사적 이유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등 1880년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에서도 동성 연인을 인정하지 않았던 영국의 중죄법과 유사한 법이 있었다.
베트남의 경우 중국에서 유래된 유교적 사상도 영향을 끼쳤다. 유교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고, 가정에서 남성은 결혼해 후계자를 낳아야 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늘날 이들 국가는 성적 다양성에 대해 그리 개방적이지 않다.
한편 두앙위셋 박사는 이슬람 교리가 성적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수용에 미치는 영향도 언급했다.
“이슬람에서는 남성은 여성처럼 옷을 입을 수 없으며, 다른 남성과 연인관계를 맺을 수도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슬람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를 억압하는 힘으로 작용한다고 봅니다. 종교적 율법을 위반한 이들을 살인하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한편 태국 사회가 성소수자에 더 우호적인 데에는 역사적인 이유도 있다. 과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결혼한 남성은 가족을 떠나 아내와 함께 살아야 했다.
따라서 아들이 결혼하면 가족 입장에선 노동력을 잃는 셈이다. 그래서 성소수자인 아들이 더 선호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성소수자라 해도 농장 등의 공공장소에서 아주 정상적으로 일하고 행동했다. 따라서 고대 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차별받지 않았다.
‘평등 결혼’ 이뤄냈지만…여전히 도전 과제 있어
태국 사회도 불과 최근 10년 전부터 성소수자의 권리 신장 젠더에 관한 차별 및 편견 철폐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 여러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국제 성소수자 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태국의 성소수자 운동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최근 동성 결혼이 승인되긴 했으나, 여전히 태국 사회에는 도전 과제가 남아 있다.
두앙위셋 박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비록 태국이 서방 국가의 식민지가 된 적은 없으나, 군사적 권위주의와 그들의 교육 시스템에 지배받았고, 태국 사회의 권력자들은 지난 80년간 젠더 편견을 강화했습니다. 그렇기에 성소수자들의 완벽한 안식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두앙위셋 박사의 이 같은 발언은 1930년대 후반 총리였던 쁠랙 피분송크람 전 총리를 가리킨다. 피분송크람 총리는 태국 국민들은 자신들의 출생 성별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엄격한 규정을 내세우는 등 여러 신설 규정을 통해 태국을 현대화하고자 했다.
따라서 학자들은 태국의 결혼평등법 제정이 성소수자들의 승리이긴 하나, 곧바로 성소수자들이 가족과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고 본다.
두앙위셋 박사는 “예를 들어 많은 서양 국가에서는 결혼 평등법이 10~20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에서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괴롭힘을 당하곤 한다”면서 “따라서 법이 제정된다고 이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보장할 순 없다”고 덧붙였다.
시장조사 업체 ‘유고브’가 태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태국민의 대다수인 약 64%가 결혼평등법에 긍정적인 태도였으며, 32%는 기쁘다는 반응을, 18%는 자랑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14%는 희망을 느낀다고 답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이 법안을 더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온라인 설문조사는 시장조사 업체인 유교브가 결혼평등법에 대한 태국인들의 의견을 묻고자 18세 이상 태국인 2055명을 대상으로 7월 18일~23일까지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