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관광객만 갈 수 있는 북한의 '완벽한' 해변 휴양지

북한이 강원도 원산에 새로 개장한 갈마 해안 관광지구는 현재 러시아인들만 이용할 수 있다. BBC는 이곳을 최초로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해 7월 1일 문을 연 원산 갈마 해안 관광지구는 김정은 북한 지도자의 관광 산업 강화 계획의 핵심으로 손꼽힌다.
개장 전만 해도 북한 주민과 외국인 모두를 위한 관광지로 홍보했으나, 개장 직후 북한 측은 러시아 관광객을 제외한 외국인의 방문을 "일시적으로"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현재까지 2개의 러시아 관광단이 이곳을 다녀갔으며, 3번째 관광단이 이번 달 18~25일 머무를 예정이다.
BBC 러시아는 갈마 관광지구를 방문한 한 러시아 관광객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여성은 "사람 없는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면서 하얀 모래사장은 "매일 완벽하게 평평하게 정리되어 있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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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흠잡을 데 없이 좋았다'

인사 담당자인 아나스타샤 삼소노바(33)는 지난달 원산 갈마 관광지구를 처음 방문한 러시아 관광단의 일원이었다.
삼소노바는 "매일 (해변은) 완벽하게 청소되고 평평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흠잡을 데 없이 좋았다"고 했다.
"일광욕용 의자도 모두 새것이었고, 모든 시설이 깨끗했습니다. 모래사장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구간도 완만했습니다. 네, 모든 게 정말 좋은 해변이었습니다."
삼소노바에 따르면 "처음에는 관광 일정에 문제"가 있어 "러시아 관광객들이 해안 관광지구에 들어갈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고 한다.
원래 일정에 따르면 관광객들은 첫날 평양에서 개선문과 김일성 광장 등을 둘러본 뒤, 다음 날 갈마 해안 관광지구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하루 더 평양에서 머물러야 했고, 예정과 달리 비행기 대신 기차로 원산에 도착했다.
이에 관광객들은 가이드를 설득해 원래 평양에서 보내기로 했던 하루를 해변 관광지구에서 지낼 수 있도록 허락받았고, 그 덕에 총 4일간 갈마에서 머물 수 있었다.

해당 북한 관광 상품을 조직한 업체는 러시아 여행사 '보스토크 인투르'로, 식사는 물론 숙박, 관광 일정 등이 전부 포함된다. 총 8일로 구성되어 있으며, 러시아어가 가능한 가이드와 4성급 호텔 숙박이 포함된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여행사 측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나이나 취향에 상관없이 모든 관광객이 예정된 모든 일정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삼소노바는 "다른 나라와 달리 이곳의 장점은 다른 관광객들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예를 들어 태국에 가면 모스크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곳은 그렇지 않았기에) 그 점이 가장 놀라웠다"고 했다.
한편 일부 러시아 매체는 해당 관광지구를 미사일 시험 발사대를 볼 수 있는 독특한 휴양지로 홍보했으나, 삼소노바는 그런 것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가 있는 동안 그런 것은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있는 동안 미사일을 발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개당 40달러(약 5만원)에 장난감 미사일 모형은 판매되고 있었다고 한다. 같이 간 관광객들은 이 모형에 큰 관심을 보였다. 장난감에 적힌 모델 번호를 통해 '화성-17'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모형임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관광객인 다리아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만약 단 하나의 해변을 선택해야 한다면 러시아인들에게 이미 검증된 익숙한 곳을 방문하는 게 낫다"면서 "그러나 (갈마 관광지구는) 모든 게 매우 '날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나 튀르키예 등에 질려 무언가 색다른 걸 경험하고 싶다면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제 속 관광
위성 사진과 러시아 연방 TV 보도에 따르면 갈마 관광지구에는 물놀이장, 영화관 등의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을 처음 방문한 러시아 관광단은 대부분의 시간을 호텔이나 해변에서 보냈을 뿐, 이러한 시설을 이용하지 못했다.
삼소노바는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었다. 만약 원치 않으면 아침 식사는 생략해도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15분 뒤 집합해 전기차를 타고 해변가로 향했다"면서 "우리는 점심 전까지 자유롭게 해변에서 놀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다시 차를 타고 호텔로 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 뒤 식당으로 가거나 호텔에서 먹을 수 있었다. 그 이후에는 다시 해변으로 돌아가도 되었다. 그러나 날씨가 너무 더워 호텔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삼소노바에 따르면 해변이 거의 비어 있었으며, 북한 관광객은 주말에만 나타났다. 이들이 방문했을 시기는 마침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갈마 관광지구를 방문했을 때였다.
"마지막 날에는 체육 혹은 건강 캠프 소속으로 보이는 10~14세 어린이들이 코치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수영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함께 놀았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인사도 하고, 한 소녀는 우리에게 영어로 말을 걸기도 했습니다."

삼소노바에 따르면 러시아 관광단 옆에는 가이드 외에도 경호원 한 명이 따라다녔다.
"우리는 가이드에게 왜 경호원이 필요한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현지 주민들이 관광객들을 많이 낯설어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워낙 오랫동안 외부에 문을 닫았던 나라이기에 우리가 거리를 걸어 다니면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우리가 현지인들과 일이 생기지 않도록 경호원이 동행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삼소노바는 현지 주민이 매우 겁에 질렸던 일화를 들려줬다. 어느 날 청소직원이 노크를 하고 호텔방에 들어왔는데, 안에 사람이 있을 거라 예상치 못한 탓에 도망쳤다고 한다.
제재와 의혹

북-러 관계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에 따르면 북한의 핵심 동맹국이자 경제적 파트너인 중국 출신 관광객들조차 현재 갈마 관광지구에 접근할 수 없다.
란코프 교수는 "2017~2018년 무렵까지만 해도 북한 지도부는 일정한 조건 하에 세계에 문을 열고자 했다. 외국과의 접촉을 확대하고, 외국인 투자도 유치하며, 공동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제재의 현실 앞에서 무너졌다. 제재는 형식적으로 이전부터 있었지만, 2017~2019년 사이 실질적으로 강화되었다. 그때 북한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와의 거래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분명해졌다"는 설명이다.
란코프 교수는 이로 인해 북한 내부에서는 '왜 외국인을 상대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 측이 고의로 관광객 수를 제한하고, 이들의 일정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외국인들은) 들어와서 평가를 내리고, 위험한 대화를 시도하며, 좋은 옷차림이나 최신 전자기기를 과시합니다. 이를 본 일반 주민들은 '저들은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는 물론 지도자의 아들과 딸도 없는데 어떻게 잘살지?'라는 의문을 품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엔 아예 외국인들을 들이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죠."
관광 상품에 포함된 항목은?

보스토크 인투르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2번째 관광단은 총 20명으로, 8월 18일~25일 여행할 3번째 관광단은 총 1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보스토크 인투르 관계자는 올해 9월 관광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북한 측의 승인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때 9월 중순 관광 예정이라고 홍보한 상품은 현재 웹사이트에서 삭제된 상태다.
해당 여행사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총 8일로 구성된 관광 상품에는 러시아어가 가능한 가이드와 하루 세 끼 식사가 포함된다.
일정으로는 마식령 스키장에서의 "아름다운 경치 감상", "북한 주민들의 일상 체험"을 위한 "평양 시내 산책", 일본의 지배를 받던 한반도를 해방하는 과정에서 전사한 소련군을 기리는 평양 해방탑 방문 및 기념품 상점 방문 등이 마련되어 있다.
해당 관광 상품의 비용은 2인 1실 기준 1인당 약 14만8000루블(약 250만원), 1인 1실을 사용할 경우에는 17만6000루블이다. 여기에 평양행 항공편을 타기 위해서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의 각자 이동해야 하기에 총비용은 약 20만루블에 달한다.
결제는 러시아 루블화와 미국 달러로 나누어 진행되며, 달러 결제분은 관광 시작 며칠 전 보스토크 인투르 사무소에서 지불해야 한다.
해변 휴양지에서 보내는 일정은 전체 중 4일에 불과하다.
삼소노바는 기념품 외에는 추가 지출이 거의 없으며, 모형 미사일 외에 북한 올림픽 선수단 유니폼도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었다고 설명했다.
제약이 많은 휴가

삼소노바는 북한 관광에 대해 제약이 있는 휴가라고 표현했다.
인터넷 사용료는 매우 비쌌고, 이동이나 활동도 통제되었다. 예를 들어 가이드는 관광객들이 공사 현장을 촬영하지 못하도록 했다.
아울러 모든 일정은 사전에 계획된 대로만 진행되었으며, 북한 당국의 허가가 없는 이상 다른 일정으로 대체할 수도 없었다.
러시아인의 북한 관광은 증가 추세이지만, 여전히 다른 유명 여행지에 비하면 미미하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의 국경수비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약 관광 목적으로 북한을 방문한 러시아인은 1500명이었다. 반면 튀르키예와 중국을 방문한 이들은 각각 670만 명, 190만 명을 웃돌았다.
그러나 방문자 수는 점차 늘고 있다. 올해 2분기에는 러시아인 약 3000명이 북한에 다녀갔는데, 이 중 1673명이 관광객이었다. 이는 관광 제한이 도입되기 전인 2011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최근 몇 년간 북한은 매우 엄격한 통제 속에 이루어지는 관광만 몇 차례 허용할 뿐 외국인의 방문을 사실상 막아왔다.
원산 갈마 관광지구는 국제 사회의 제재로 위태로운 북한 경제의 회복뿐만 아니라,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며 더욱 밀착한 북-러 관계 강화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고 평가된다.
북한 동해안의 원산은 미사일 시설 및 대규모 해양 단지가 자리한 도시로, 김정은이 어린 시절을 보낸 별장 등 북한 엘리트 계층의 휴양지가 모여 있는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북한 매체에 따르면 새롭게 개장한 해변 관광지구에는 4km에 달하는 해변을 따라 호텔, 식당, 쇼핑몰, 물놀이장 등이 들어서 있으며, 최대 2만 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그러나 2018년 착공 이후 줄곧 인권단체들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이 거대한 공사를 해내고자 노동자들이 가혹한 환경에서 열악한 보상을 받으며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추가 보도: 황수민, 글로벌 저널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