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네비게이션 검색 본문 바로가기

인간은 원래 일부일처제였을까… 가장 효율적인 번식 전략은?

1일 전
춤추는 신랑 신부 인형
Getty Images

데이트 앱을 통해 선택지가 무한정 쏟아지고, 연애와 관계의 정의가 끊임없이 변해가는 세상. 인간이 본래 일부일처제를 선호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루마니아인 알리나는 폴리아모리(다자연애, 모든 당사자의 완전한 동의와 이해하에 사랑하는 사람의 수를 제한하지 않는 관계)에 대해 탐구하며 이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최근 자신을 다자연애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늘 그렇게 살아왔다고 했다"는 알리나는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왜 일부일처제라는 사회 시스템에 정착하게 된 것일까"라고 덧붙였다.

인간이 진화해 온 과정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영장류와 이들의 번식 전략을 연구하는 것이다.

영국 브리스톨대에서 진화생물학을 연구하는 키트 오피 박사는 "고릴라 사회는 일부다처제이다. 즉, 한 수컷이 여러 암컷과 짝짓기를 한다"고 설명했다.

"즉, 무리 내 새끼들은 모두 한 수컷의 자식들이지만, 여러 암컷이 함께 양육하는 방식이죠."

하지만 이는 그리 효과적인 번식 전략이 아니라는 게 오피 박사의 설명이다. 영아 살해율이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아 살해는 고릴라 사회에서 매우 끔찍한 이면 중 하나"라는 오피 박사는 "수컷 고릴라는 자신의 핏줄이 아닌 새끼를 죽인다. 그래야 그 어미가 더 빨리 번식 가능한 상태로 돌아와 자신과 짝짓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모방하고 싶은 진화 전략은 분명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0년 10월 콩고민주공화국  '롤라 야 보노보' 보호구역에서 촬영된 포옹하는 보노보들의 모습
Getty Images
암컷 보노보는 새끼가 살해당하지 않도록 여러 수컷과 짝짓기를 하여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침팬지, 보노보 등 고릴라보다도 인간과 더 가까운 친척인 다른 영장류 암컷들은 전혀 다른 진화적 전략을 발전시켜 나갔다. 여러 수컷과 짝짓기를 해 누가 아버지인지 알 수 없게 하고, 이에 새끼가 해코지를 당할 위험을 줄인 것이다.

아마 인간 사회 또한 여러 남성과 여성이 함께 짝짓기하는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약 200만 년 전, 변화가 일어났다.

오피 박사에 따르면 "그 이유는 기후 변화"였다.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경우 점점 건조해지며 사바나(초원) 면적이 넓어졌습니다. 초기 인류는 수많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대규모 집단에 속해 있어야 했습니다. 이 복잡한 대규모 집단을 관리하려면 뇌의 용량이 커져야 했을 것이고, 그만큼 모유 수유 기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집단이기에 남성 수가 너무 많아지자 누가 아버지인지 헷갈리게 하는 것은 힘들어졌다.

"게다가 여성은 자식을 양육하고자 수컷 중 한 명의 도움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일부일처제로 변화해 나간 것이죠."

일부일처제는 최고의 전략일까?

오피 박사는 인간이 일부일처제로 변화한 이유가 "그 방식이 더 나아서가 아니라, 가장 실용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뇌가 크고 성장 속도가 느린 인간 아기를 양육하는 일은 어머니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찼고, 부모 모두의 헌신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과정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두 딸로 이루어진 가족의 모습
Getty Images
두뇌가 크고 성장 속도가 느린 인간 아기를 양육하는 데에는 일부일처제가 가장 실용적인 선택지였다

하지만 초기 인류부터 일부일처제로 진화했음을 시사하는 여러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부일처제를 선택한 사람들조차 한 사람에게 끝까지 충실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피 박사는 "평생 단일 배우자와만 함께하며 한눈팔지 않는 종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종은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일부일처제 동물은 긴팔원숭이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커플과 떨어져 살고, 그렇기에 열대우림 내 자그마한 자기 구역에 누가 들어오는지를 감시하기 상대적으로 쉬울 테죠."

"하지만 인간 사회처럼 여러 암컷과 여러 수컷으로 구성된 대규모 집단에서는 파트너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지 아닌지를 감시하기 훨씬 더 어렵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일부일처제는 자연스러운 기본값이라기보다는 결함이 있는 생존 전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유대감의 화학 작용

사랑에 빠지거나 한 사람에게 충실하려고 할 때 우리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미국 에모리 대학교의 신경과학 박사 과정 학생인 사라 블루멘탈은 그 답을 얻고자 인간처럼 장기간 단일 배우자 관계를 맺는 것으로 알려진 설치류인 프레리들쥐를 연구하고 있다.

프레리들쥐들
Getty Images
프레리들쥐는 뇌의 보상 중추에 옥시토신 수용체가 많이 분포해 있다

일부일처제가 아닌 다른 들쥐들과 달리, 프레리들쥐는 뇌의 보상 중추에 옥시토신 수용체가 많이 분포해 있다.

'포옹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옥시토신은 신체적 접촉이나 유대감을 형성하는 순간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화학 물질이다.

블루멘탈은 "프레리들쥐의 옥시토신 신호를 인위적으로 방해하면 짝과 강한 유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도 눈에 띄게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여성 친구 2명과 함께 있는 남성의 모습
Getty Images
새로움을 추구할 때와 특정 대상에 헌신하고 싶을 때의 마음 변화 이면에는 도파민이 있을 수 있다

인간 역시 유사한 옥시토신 체계를 갖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뇌가 유대감 형성의 경험을 보상으로 인식하도록 설계되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과 헌신 사이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를 설명하려면, 또 다른 화학물질인 도파민의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

유대감을 형성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도파민이 뇌를 가득 채우며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고 마음을 열게 만든다. 그러나 유대감이 확립된 뒤에는 도파민의 분비 패턴이 변화하게 된다.

일처다부제

'일부일처제'에 대한 진화론적 근거가 있긴 하나, 인간 사회에서 관계의 형태는 항상 다양했다.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연구하는 캐티 스타크웨더 박사는 아시아의 네팔, 티베트부터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일부 지역까지 전 세계에서 여성 1명이 여러 남편을 두는 일처다부제 사회 50여 곳을 기록했다.

두 남성으로부터 볼에 입맞춤을 받는 여성의 모습
Getty Images
일처다부제는 일부다처제보다 전 세계 통계학적으로 더 드문 사례다

일부다처제보다는 통계적으로 드물지만, 스타크웨더 박사는 '일처다부제' 사회를 믿기 어려운 예외적 사례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여성은 여러 파트너를 두는 것을 통해 경제적 이점을 얻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일부 북미 원주민 집단에서는 첫 번째 남편이 사망하거나 장기간 부재할 경우를 대비해 대안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일부 경우에는 이런 비독점적인 관계가 유전적 이점을 제공하기도 했다.

스타크웨더 박사는 "사람들이 자주 병에 걸리거나 쉽게 사망하는 환경이라면, 유전 구성이 서로 다른 자녀를 여럿 두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전략일 수 있다"며 "그 아이들은 현재의 환경에 조금이라도 더 잘 적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러한 비독점적 관계에도 어려움은 존재한다. 여러 명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면 시간과 감정적 에너지가 많이 들고, 끊임없는 협상이 필요하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여러 파트너를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 스타크웨더 박사는 "경제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쉽지 않다. 나는 이것이 일부일처제가 여전히 통계적으로 가장 흔한 결혼 형태로 남아 있는 주요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자연애의 관점

한편 알리나는 연애를 해보면서 독점적 관계가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이에 현재 다자연애를 하며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조율하고 있다.

알리나는 "질투는 매우 힘들고 강렬한 감정"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경험해 본 바, 상대방이 내게 솔직하지 않다고 느끼면 질투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상대방이 솔직하다는 걸 알면 질투의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서로를 안고 있는 네 사람의 뒷모습
Getty Images
비독점적 관계를 통해 감정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유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알리나의 파트너 또한 "내 생각에 질투는 (다자연애에 있어) 사실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여러 명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시간, 노력이 막대할 수 있다는 건 문제"라며 동의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데 뜻을 모았다.

알리나는 "정해진 규칙이랄 게 없다"면서 "그 덕분에 보통 때라면 하지 않았을 대화를 하게 되고, 그런 점이 우리 관계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본래 일부일처적인 존재일까. 답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이다.

문화와 역사를 통틀어 인간은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여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관계 모델을 발전시켜 왔다. 누군가에게는 비독점적 관계가 정서적 자유와 경제적 유연성이라는 이점을 주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부일처제야말로 사랑을 이어가는 가장 단순하고 관리하기 쉬운 방식일 수 있다.

스타크웨더 박사는 "인간은 유연하게 진화해 왔고, 그것은 우리가 관계를 맺는 방식, 결혼하는 방식에도 적용된다"고 했다.

"우리가 지구상의 거의 모든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유연성과 다양성 덕분입니다."

BBC NEWS 코리아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