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에 취해 갖는 약물 성관계, '나는 좀비가 되어갔다'

한 남성이 불법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성관계를 갖는 세계에 빠져들며 어떻게 자신의 삶이 점차 무너져 갔는지를 털어놓았다.
BBC와 인터뷰한 크리스라는 가명의 남성은 켐섹스(Chemsex, 약물에 취해 하는 성관계)에 빠지게 됐으며, 이는 그가 동성애자로 성장하면서 느꼈던 "수치심과 죄책감"을 잊게 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런던에 거주하는 그는 크리스탈 메스, 메페드론, GHB/GBL 등 약물을 이용해 성적 쾌감을 증폭시키는 약물 성관계에 중독된 후, 상담 전화나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도 "침묵의 벽"에 부딪혔다고 밝혔다.
활동가들은 동성 간 성관계에 대한 낙인 때문에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영국 정부는 케미섹스로 인한 피해를 인지하고 있으며, 관계당국에 이 문제를 관리하기 위한 지침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크리스는 처음에는 파티에서 약물을 권유받았지만, 몇 개월 후엔 스스로 마약을 찾고 약물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단계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약물 성관계가 "처음에는 동성애자로 성장하면서 갖게 되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상당 부분 덜어주는 역할을 했고 꽤 해방감이 컸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은 곧 달라졌다.
그는 "아무도 이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들 약간의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 모두가 문을 걸어 잠그고 모른 체한다. 현실 세계로 드러나지 않는다. 매우 은밀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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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로부터 벗어나기'
크리스는 친구들로부터 자신이 마치 "좀비"처럼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점점 삶이 무너져 갔다. 월요일에 출근하지 못하고, 결국 업무 능력도 현저히 떨어졌다"면서 "수요일이 되어서야 겨우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지지만, 금요일이 되면 다시 같은 사이클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먹어야 하고, 자야 하고, 삶을 이어가야 하지만, 결국 머릿속엔 다음에 언제 다시 약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뿐"이라며 "그건 결국 자신이 만든 끔찍한 현실, 불행한 삶에서 도망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오직 약을 하는 것만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활동가들은 일부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약물 성관계에 대한 낙인이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런던 기반 자선단체 '컨트롤링 켐섹스(Controlling Chemsex)'의 최고경영자 이그나시오 라바옌 데 인자는 케미섹스에 대한 낙인을 없애기 위해 공개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켐섹스는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신뢰할 만한 정보는 충분히 제공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또 "사람들은 '어차피 계속될 일'이라며 손을 놓고 있지만,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고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은 있다"고 말했다.
라바옌 데 인자는 켐섹스가 낙인의 대상이 되는 이유에 대해 "성관계에 대한 이야기, 동성 간 성관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마약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컨트롤링 켐섹스'의 전문 상담사 필립 허드는 12년 전 약물 성관계에 빠졌으며, 극단적인 경험을 한 뒤에야 이를 멈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범죄와 가까워지고, 점점 더 위험한 행동을 하게 된다"며 "그러다 결국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을 뻔했다. 의사들은 내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거라고 했고, 당시 80대 초반이던 부모님이 시골에서 런던까지 와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 순간, '이대로 가다간 죽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런던에 거주하며 '컨트롤링 켐섹스'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인 허드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을 돕고 있다.
그는 "심리학이나 사회학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켐섹스를 끊으려는 사람을 어느 정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실제로 그 경험을 해본 것만큼 강력한 도움은 없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 기관 오피니엄 리서치(Opinium Research)가 영국인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가 켐섹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신을 게이 또는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한 응답자 중 3분의 1 이상이 켐섹스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포츠머스 대학교 강사 베로니카 캐러더스는 영국 남부 지역에서 제공되는 지원 서비스를 조사한 결과, 여전히 "상당히 제한적이며 불균형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역에 따라 지원 수준이 천차만별"이라며 "우리는 이를 '우편번호 복불복'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일부 사람들은 적절한 지원 서비스를 어디에서 받아야 할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캐러더스는 "특히 약물 상담 서비스와 성 건강 클리닉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성 건강 클리닉이 더 선호되는 경향이 있지만, 여전히 직원들이 켐섹스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추지 못해 효과적인 지원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약물 상담 서비스의 경우, 상담사가 켐섹스라는 개념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상담을 받으려는 사람들도 이곳이 자신에게 적절한 곳이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로 인해 사람들이 특정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주저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정부의 치료 지원
영국 보건사회복지부 대변인은 지방 당국에 관련 지침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공공보건 보조금을 약 3,400억 원 증액했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지방 당국은 이 기금을 활용해 약물·알코올 치료 및 재활 프로그램을 강화할 수 있으며, 여기엔 켐섹스에 연루된 사람들을 위한 지원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약물 남용 정책 담당자 및 성 건강 정책 담당자들과 협력해,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약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보다 쉽게 지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약물 중독과 관련한 정보 및 지원 서비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별도로 제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