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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의 경쟁에서 고전할 미국 … 트럼프 반도체 전략의 위험성

3일 전
반도체 부품으로 채워진 미국 지도 그래픽
BBC

미국은 지난 수년간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일을 그르치며" 중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속도를 올려 앞서나갈 수 있게 내버려두었다.

이는 2021년 지나 레이먼도 당시 미국 상무부 장관이 BBC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4년이 지난 지금도 반도체 분야는 여전히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의 주요 격전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미국 내 반도체 산업의 부흥을 꿈꾼다. 반도체 제조 산업은 여러 지역에서 수십 년에 걸쳐 발전시켜 온 매우 복잡하면서도 섬세한 분야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관세 정책이 자국 경제를 자유롭게 할 뿐만 아니라, 국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리라 말하지만, 일부 미국 대기업은 자국에 세운 공장 내 숙련된 근로자 부족 및 생산품의 낮은 품질로 인해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아왔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 다르게 하려는 것일까. 그리고 대만 등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최첨단 반도체 비법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이 이러한 최첨단 반도체를 대규모로 생산해내는 게 과연 가능할까.

반도체 제조의 비법은?

반도체는 세탁기부터 아이폰, 전투기, 전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의 거의 모든 제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다. '칩(chip)'이라고도 불리는 이 작은 실리콘 웨이퍼가 처음 발명된 곳은 미국이지만, 오늘날 최첨단 반도체를 경이로운 규모로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아시아이다.

반도체 생산은 비용도 많이 들고 기술적으로도 복잡한 일이다. 예를 들어 아이폰에 들어가는 여러 반도체는 보통 미국에서 설계된 뒤 대만, 일본 또는 한국에서 제조되곤 한다.

희토류 등 그 원자재는 대부분 중국에서 채굴된다. 이후 베트남으로 보내져 포장된 다음, 중국에서 조립 및 테스트 과정을 거쳐 미국으로 수출된다.

반도체 생산 공장의 아시아인 여성
Getty Images
반도체가 발명된 곳은 미국이지만, 현재는 아시아 국가들이 생산을 주도하고 있다

이처럼 반도체 산업은 수십 년간 발전해 온, 매우 깊이 얽힌 생태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산업의 위상을 칭찬하면서도 관세로 위협하고 있다. 최근에는 반도체 제조업계의 리더인 대만의 'TSMC'에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으면 최대 100%의 세금을 물릴 수 있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워낙 복잡한 생태계이며, 경쟁도 치열한 상황에서 이제 반도체 제조 기업들은 더 높은 비용 및 트럼프 행정부 이후까지 장기적으로 진행될 투자 요구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끊임없는 정책 변경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일부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는 했다.

한편 중국, 대만, 일본, 한국은 민간 반도체 제조 기업들에 상당한 보조금을 지급했고, 이는 성공의 큰 이유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2022년 조 바이든 대통령 행정부 당시 '미국 칩 및 과학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반도체 제조 기업의 리쇼어링(자국으로 되돌아오는 현상)을 촉진하고,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 내 제조업을 장려하기 위한 보조금, 세제 혜택, 보조금 등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대만의 TSMC 공장
Getty Images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TSMC에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으면 최대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인 'TSMC'와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삼성'과 같은 기업들은 이 법의 대표적인 수혜자로, TSMC는 미 애리조나에 공장을 세워 보조금과 대출 명목으로 66억달러를 지원받았으며, 삼성은 텍사스주 테일러에 공장을 세워 약 60억달러를 지원받았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과 더불어 TSMC는 총 650억달러를 투자해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제조공장 3곳을 짓는다는 기존 약속에 더해 미국에 추가로 1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대만을 점령하겠다며 계속해서 위협하는 상황에서 생산 거점 다변화는 TSMC에도 도움이 되는 전략이다.

그러나 비용 급증, 숙련공 채용의 어려움, 건설 지연, 현지 노조의 저항 등 TSMC와 삼성의 미국 내 투자는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시장 정보 업체 '카운터 포인트'의 리서치 담당자인 마크 아인슈타인은 "상자같이 (단순한) 제품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면서 "반도체 제조 공장은 최첨단 무균 환경으로, 건설하는 데만 해도 몇 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한편 TSMC는 미국에 투자를 하긴 하지만, 제조, 특히 최첨단 반도체 제조 공정은 계속해서 대만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대만의 기술을 빼앗으려고 했나?

오늘날 애리조나 소재 TSMC의 공장에서도 최첨단 반도체가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전쟁: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Chip War: The Fight for the World's Most Critical Technology)'의 저자인 크리스 밀러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칩은 대만에서 생산되는 최첨단 기술에 비하면 한 세대 이전의 것"이라고 했다.

밀러는 "규모의 문제는 미국과 대만 중 어느 쪽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지금은 대만의 생산 능력이 더 우수하다"고 했다.

사실 대만이 지금과 같은 생산 능력을 갖추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으며, 중국이 수십억달러를 들여 대만의 산업 기술을 빼앗고자 위협했음에도 여전히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번창하고 있다.

애리조나의 TSMC 공장
Getty Images
TSMC는 미국 내 반도체 제조에 투자했다

TSMC는 미국 등에서 설계한 반도체 제품을 위탁받아 생산하는, 이른바 '파운드리' 선구자이다.

애플, 퀄컴, 인텔과 같은 실리콘 밸리 기업들의 성장 물결을 타고 TSMC는 최고의 엔지니어, 고도로 숙련된 노동력, 지식 공유 등을 통해 미국과 일본의 대기업들과 경쟁하는 위치까지 오르게 된다.

아인슈타인 담당자는 "미국이 반도체를 생산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낼 수 있냐"고 묻는다면 "물론 그렇다. 그러나 나노미터까지 작게 만들 수 있는가" 그건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 한 가지 이유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정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중국과 인도 출신의 숙련된 인재들의 입국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 담당자는 "일론 머스크도 테슬라 엔지니어와 관련해 이민 문제를 겪은 적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머스크 CEO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미국 입국을 허용하는 'H-1B' 비자 프로그램을 지지한다.

"그것은 산업 발전의 장애물로, 이민에 대한 (행정부의) 입장을 완전히 바꾸지 않는 한 정부가 내세울 해결책은 없습니다. 박사 학위 인재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진 않으니까요."

전 세계에 미칠 파급 효과

그런데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분야에 대한 국가 안보 차원의 무역 조사를 명령하는 한편 관세율을 더욱 올렸다.

아인슈타인 담당자는 "이것은 (가동하던) 기계에 렌치를 끼워 넣은 셈이다. 그것도 아주 큰 렌치"라면서 "예를 들어 일본은 반도체를 기반으로 경제 활성화를 꿈꾸고 있으나, 이러한 관세는 애초에 계획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작가 밀러는 반도체 업계가 장기적으로 영향을 입으면서 중국, 유럽, 미국 등 전 세계 주요 경제권에서는 자국 내 제조업을 재조명하게 되리라 전망했다.

일부 기업은 새로운 시장 모색에 나설 수도 있다. 일례로 수출 통제와 관세에 맞서 중국의 거대 IT 기업 '화웨이'는 비록 아직 신흥국에서 이익이 그리 크진 않긴 하나 유럽과 태국,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말레이시아,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를 포함한 신흥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한 상태다.

아인슈타인 담당자는 "중국은 결국 자신들이 최종 승자이길 바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혁신을 거듭하고, R&D에 투자할 것"이라면서 중국에서 만든 AI 챗봇인 '딥시크'를 언급했다.

"만약 중국이 더 발전된 반도체를 만들어낸다면 모두가 그쪽을 선택할 것입니다. 지금이야 중국의 반도체가 비용 효율적인 정도이지만, 앞으로는 정말 최첨단 기술을 개발해 낼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BBC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관세 정책이 미국 경제를 자유롭게 하며, 국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리라 말한다

그 사이에 새로운 제조 강자가 등장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도는 미국보다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한몫할 가능성이 더 큰 나라다. 지리적으로 더 가깝고, 인건비도 저렴하며, 교육 수준도 높기 때문이다.

인도 또한 반도체 제조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공장용지 확보 문제, 물 문제(반도체 생산 시 양질의 물이 대량으로 필요하다)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많다.

협상 칩

반도체 기업들은 관세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시스코와 같은 미국 주요 기업들이 워낙 반도체에 의존하며 필요로 한다는 있다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부문에 대한 관세를 철회하게 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일부 내부에서는 팀 쿡 애플 CEO의 강력한 로비가 스마트폰, 노트북, 전자제품에 대한 관세 면제를 끌어낸 것으로 본다.

지난 14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애플 제품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매우 유연한 사람"이라며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나는 팀 쿡 (애플 CEO)와 대화하며, 최근에는 그를 도왔다"고 답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Getty Images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도체 대중 판매 금지령이 철회되길 바랐다

아인슈타인 담당자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가 거래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들도 반도체 산업은 그냥 큰 공장을 지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틱톡의 모기업인 '바이트댄스'에 했던 일을 그대로 하려고 하는 것 보인다"는 아인슈타인 담당자는 "오라클 같은 미국 기업에 지분을 넘기지 않으면 미국에서 사업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식"이라고 덧붙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TSMC는 어디 가지 않을 테니, 인텔과 거래하도록 압박해서 일부 몫을 챙기려는 거죠."

하지만 아시아 반도체 생태계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살펴보면 중요한 교훈 하나를 얻을 수 있다. 바로 단일 국가가 혼자서 반도체 산업을 운영하기란 불가능하며, 최첨단 반도체를 효율적으로, 그것도 대규모로 생산하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호주의와 고립을 통해 자국 반도체 산업을 부흥시키려 하지만, 아시아에서 반도체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비법은 바로 그 정 반대, 바로 세계화된 경제 속에서의 협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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