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관세, 불안한 휴전, 혼란 … 트럼프-시진핑 회담에 이르기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부산 김해 공군기지에서 회담을 진행했다. 많은 것이 걸려 있던 이번 만남을 계기로 양국은 무역 협상 타결에 한발 더 다가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전용기인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기자들에게 "매우 성공적인" 회담이었으며, 양국은 "곧" 협정을 체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보복 관세부터 첨단 제조업의 기반인 희토류와 반도체 접근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관세를 낮출 예정이며, 미국의 희토류 접근 문제도 해결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중국이 주요 첨단 반도체 제조업체인 '엔비디아'와 직접 대화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미국은 "일종의 심판"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한편 중국 측 공식 발표는 다소 모호했다. 양국이 "중요한 무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합의에 도달했다는 표현 외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 "여러 중요한 사안에서 결론에 도달했다"며, 관련 내용이 곧 공개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중국 소유의 동영상 공유 애플리케이션인 '틱톡' 미국 사업부 매각과 관련해서도 아직 아무런 언급이 없다. 앞서 전문가들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최종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한 사안이었다.
두 정상이 실제로 마주 앉은 것은 6년 만이다.
다만 이번 회담에 이르기까지는 보복 관세의 공방과 불안정한 휴전, 전 세계 제조업과 기업들에 드리운 불확실성의 10개월이 이어져 왔다.
호주 시드니 공과대학의 팀 하코트 경제학 교수는 "이번 회담은 코로나19 이후 시대에 세계화를 재설정하는 자리"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보복 관세 그리고 휴전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4월 동맹국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관세를 부과한 이른바 미국 '해방의 날' 훨씬 이전부터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시작했다.
중국은 오랫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표적이었다. 그는 중국과의 무역을 불공정하다고 비난하며 첫 임기 때도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2번째 임기 초인 올해 2월,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대중 관세에 더해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10%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중국 또한 미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며 맞대응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국 관세율을 20%로 인상하며 또 한 번 반격했다.
그리고 마침내 '해방의 날'이 됐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추가 관세 34%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주고받기는 계속됐고, 미국의 대중국 관세와 중국의 대미 관세는 각각 145%, 125%까지 치솟았다.
이 충격적인 숫자에 제조 및 수입 업체들은 허둥지둥하며 불확실성에 시달렸다. 중국 내 창고에는 재고가 쌓여고, 미국 기업들은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중국을 대체할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글로벌 관세 공세는 '트랜십먼트(환적, 우회수출)'에도 초점을 맞췄다. 중국산 제품이 베트남 등의 제3국을 거쳐 단순 환적을 통해 미국으로 수입되는 것을 막겠다는 조치였다.
그럼에도 중국은 물러서지 않았다. 거듭 대화에 열려 있음을 내면서도 동시에 고통을 감소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 타격을 주는 데도 성공했다. 일례로 대두 등 미국산 농산물에 관세를 부과했는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기반인 미국 농민들을 겨냥한 조치였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애플, 월마트 등 미국 기업들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 했으나, 이후 연이어 나온 예외 조치들로 인해 그 효과는 약화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중국의 협상 자신감을 더욱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지난 5월, 양국은 불안정한 휴전에 합의했고, 최종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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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전쟁
한편 관세 협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중 관계의 또 다른 걸림돌이 다시 등장했다. 스마트폰부터 인공지능(AI)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필수적인 첨단 반도체를 둘러싼 갈등이다.
이러한 첨단 반도체는 자국 경제를 기초 제품 제조 위주의 "세계 공장"에서 첨단 기술의 중심지로 탈바꿈하려는 중국 국가 계획의 핵심 요소다.
전문가 대부분이 비록 인재 자원이 막대하긴 하나, 중국의 현재 반도체 기술력은 여전히 미국에 미치지 못한다고 동의한다.
이에 미국은 중국이 최첨단 AI 반도체 칩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견제해왔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이전부터 이어져왔으나, 이번 행정부는 더욱 통제를 강화하며 상대적으로 구형 반도체만 중국에 수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리고 이 같은 전략의 중심에는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엔비디아'가 있다. 엔비디아가 설계하는 반도체 칩은 업계에서 황금 기준으로 평가받는다.
엔비디아에 중국은 수십억달러의 수익을 안겨주는 거대 시장으로, 최근 엔비디아는 중국에 다시 수출할 수 있는 대가로 중국 시장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에 지급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에게 미국산 반도체를 구매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오며 미국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알리바바, 화웨이 등 자국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을 결집하고 있다.
아울러 엔비디아를 상대로 한 반독점 조사에도 착수했다.
스테파니 캄 싱가포르 난양공대 S. 라자라트남 국제관계대학원 조교수는 이러한 조치들이 중국 정부가 오래전부터 추구해 온 '기술 자립' 전략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중국은 AI를 비롯한 첨단 기술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고 있으며, 자국 기업들이 과감하게 혁신하고 독자 기술을 개발하도록 적극 장려하고 있다.
특정 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이러한 '국가 주도' 모델이, 미중 협상 과정에서 중국이 비교적 더 큰 인내력을 보이는 배경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분석가들은 중국이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본다.
지속 여부가 불확실한 단기 협상에 서둘러 임하기보다는, 서방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전쟁 - 희토류를 위하여
그러나 중국이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해서, 미국과의 협상을 원치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하코트 교수는 중국 내부의 실업 증가, 소비 위축,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을 언급하며 중국 지도부의 권한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 민주적 선거의 제약을 받지는 않지만, 중산층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정치적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는 압박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역시 중국의 이러한 내부적 어려움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중국을 압박하는 요인 또한 명확하며, 중국은 장기적이고 심각한 무역 전쟁이 지속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시진핑 주석은 조금 더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 테이블에 오르기를 바랐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중국은 이달 희토류 수출 통제를 강화하며 공세에 나섰다.
희토류는 전자기기, 친환경 에너지 기술, 전투기 등 군사용 장비에까지 쓰이는 핵심 광물이며, 중국은 그 가공과 정제 분야에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제한 조치는 무역 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호주 에디스 코완 대학교의 니샤 맥도너 박사는 미국의 기술 수출 제한이 중국의 발전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면, 중국의 희토류 통제는 산업 전체를 멈춰 세울 수도 있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이 같은 제한 조치에 미국 정부는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틱톡 미국 사업부 매각에 합의했다고 밝힌 직후 나온 조치였던 만큼, 파장이 더욱 컸다. 미국의 한 고위 무역 당국자는 이를 미·중 간 휴전의 "배신"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번 사태는 미국이 중국의 자원에 얼마나 깊이 의존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에 미국은 최근 호주, 말레이시아, 일본 등과 연이어 희토류 관련 협정을 체결했다. 세부 내용은 다소 다르지만, 모두 중국 외 공급처를 확보하려는 미국의 희토류 접근성 강화를 공통 목표로 하고 있다.
하코트 교수는 이를 미국이 중국을 우회해 희토류를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으로 해석했다.
이들 협정은 미국 측이 중국과의 긴장 완화를 모색하며, 30일로 예정된 양국 정상회담을 조율하던 시점에 체결됐다.
양국 간 입장 차는 여전히 크고 경쟁의 뿌리도 깊지만, 캄 조교수는 중국이 희토류 수출 제한을 완화하는 대신 미국이 관세를 인하하는 식의 "비교적 이루기 쉬운 거래"는 가능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비록 이번 합의가 불안정할지라도, 향후 몇 달간 예기치 않은 결정이 내려지는 위험을 줄이는 효과는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결국 양국이 일시적으로 합의를 이룬다 하더라도, 미·중 경쟁의 구조적 대립 자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