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살해' 해외선 중형인데…한국은 왜 '가중처벌' 안되나

최근 한국에서 자녀를 살해한 부모에 대한 처벌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부모를 살해하는 '존속살해'와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비속살해'의 형량 차이가 크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번 논란은 지난 7월 20일 인천 송도에서 60대 남성이 자신이 직접 만든 총기로 30대 아들을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재점화됐다.
이 사건뿐 아니라 최근 가족 살해 범죄는 꾸준히 이어지는 추세다. 특히 자녀 살해 사건은 잊힐 만하면 반복된다.

존속살해만 가중처벌
대표적으로 지난 2024년 1월, 40대 여성이 보이스피싱 주식 투자 사기로 1억 원 넘는 피해를 보자 이를 비관해 자녀 살해를 결심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당시 12세 아들이 숨졌고, 간신히 살아남은 9세 딸은 뇌 병변 장애 진단을 받았다.
또 다른 사건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50대 여성은 자신의 10세 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두 사건 모두 1심 법원은 피고인에게 각각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범행 동기와 계획성, 범죄의 잔혹성 등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지만, 통계적으로 자녀가 부모를 살해한 경우가 더 무거운 처벌을 받는 것으로 집계됐다.
실제 최근 3년간 대법원 판결문 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1심 판결 82건을 분석한 결과, 자녀를 살해한 경우(비속살해)는 평균 징역 7.7년인 반면, 부모를 살해한 경우(존속살해)는 평균 15.7년으로 두 배 이상 높았다.
같은 기간 비속살해로 기소된 피고인 32명 중 4명(12.5%)은 실형 없이 집행유예를 받았다. 특히 비속살해 피해자의 약 80%는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없는 미성년자였다.
해외에선 미성년자 살해 '엄벌'

해외 주요국은 미성년자 자녀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엄격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
영국은 살인죄에 원칙적으로 종신형을 선고하고, 피해자가 아동이거나 계획적이고 잔혹한 경우 양형법(Sentencing Act 2020)에 따라 최소 복역 기간이 30년 이상으로 규정된다.
실제로 2007년 영국에서 두 딸(13세, 16세)을 살해한 레카 쿠마리 베이커는 최소 33년간 가석방 가능성이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 여성은 전 남편에 대한 복수심에 두 딸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지며 영국 사회에 충격을 줬다.
프랑스도 아동 대상 범죄에 매우 엄격하다. 프랑스 형법은 피해자가 만 15세 미만이면 종신형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현지에서는 어린 자녀를 살해한 부모에게 최소 2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하는 법원 판결이 늘고 있다.
미국은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아동 살해는 가중처벌 대상으로 여겨진다. 텍사스주 형법에 따르면 10세 미만 아동을 살해하면 중범죄로 규정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 플로리다주 역시 피해자가 만 12세 미만이면 사형 또는 종신형 선고가 가능하다.

법 개정은 언제쯤?
법조계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비속살해'가 상대적으로 약하게 처벌되는 것으로 비춰지는 현실에 대해 "법 체계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분석한다.
현행 형법 제250조 2항은 '부모를 살해한 경우 사형,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으로 명시해 일반 살인죄(5년 이상 징역)보다 무겁게 처벌하고 있다.
반면 자녀를 살해한 경우(영아살해죄는 별도 규정)는 별도의 가중처벌 조항이 없어 일반 살인죄가 그대로 적용된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전통적으로 효를 중시하는 가부장적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이나 가족 내부 문제로 보는 인식이 형법에 무의식적으로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입법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대, 21대, 22대 국회에서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경우 가중처벌하는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법안들은 매번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폐기되거나 계류 상태다.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정치 현안에 밀려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고 전했다.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해야'
전문가들은 한국도 법적 공백을 메워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우선 형법에 '비속살해 가중처벌' 조항을 조속히 신설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또 다른 대안으로는 존속·비속 개념을 폐지하고, 모든 살인죄의 형량을 피해자의 연령과 취약성 중심으로 판단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승권 변호사(법무법인 대건)는 BBC에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피해자의 취약성에 따라 처벌이 강력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한국도 이제는 자녀 역시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고 가중처벌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지금처럼 법적 공백이 지속되는 한, 유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같은 논란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