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네비게이션 검색 본문 바로가기

첨단 기술 제조업으로 일어선 아시아, 트럼프 관세의 희생양 되나

6시간 전
두 여성이 벚꽃이 만개한 창원 경화역 인근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Getty Images
전자제품 제조를 위한 공급만은 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역전쟁을 시작하며 미국 내 일자리와 제조업을 되찾고, 무역적자를 줄이며, 미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러 나라들이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자, 그의 전략은 점점 더 징벌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미국 기업들은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된 관세를 피하기 위해 생산 거점을 베트남, 태국, 인도 등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새로운 관세에선 이들 국가도 예외가 아니다. 이에 따라 대만과 한국의 주식 시장도 하락세를 보였다. 두 나라는 아시아 전자 산업 공급망의 핵심 축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불투명하지만, 애플과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들은 아시아 각국에서 부품을 조달하고 조립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이폰, 반도체, 배터리 등 현대 기술을 구성하는 수많은 부품들이 이번 조치의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일본 자동차, 한국 전자제품, 대만 반도체 등 수출 중심으로 성장해온 아시아 경제 주체들에겐 악재다. 미국의 수요 덕분에 이들 국가는 무역흑자를 유지하며 부를 축적해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아시아 제조업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았다고 비판해 왔다.

올해 5월 트럼프는 애플 CEO 팀 쿡에게 "그동안 당신이 중국에 공장을 세우는 걸 우리는 참아줬다. 우리는 애플이 인도에 공장을 짓는 데엔 관심 없다. 인도의 문제는 인도 스스로 해결하게 하라"고 말했다.

대만 지룽항에 선박과 컨테이너들이 들어서 있다
Getty Images
대만은 전 세계 반도체의 절반 이상을 수출한다

애플은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을 중국, 베트남, 인도에서 제조한 아이폰 판매로 벌어들인다.

이 기술 대기업은 지난 31일 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표 몇 시간 전에 지난 2분기 실적을 공개했으며, '깜짝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 발표 이후 전망은 한층 불확실해졌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실적 발표 후 진행된 콘퍼런스콜에서 지난 분기 관세로 인한 비용이 이미 약 1조 1100억 원(8억 달러)에 달했으며, 다음 분기에는 최대 1조 5000억원(11억 달러)이 추가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술 기업들은 보통 수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지만,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관세 정책은 기업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마비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역시 미국 내 판매 제품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중국산 수입품이 미국에서 어떤 관세율을 적용받을지는 명확하지 않다. 중국은 아직 미국과의 협상에 합의하지 못했으며, 시한은 8월 12일까지다.

양측이 갈등 완화에 합의하기 전에는 보복성 관세가 맞불 형식으로 부과돼 일부 품목의 경우 관세율이 무려 145%까지 치솟은 바 있다.

두 남성이 아이폰16으로 셀카를 찍고 있다
Getty Images
애플은 현재 미국 시장 공급을 위한 아이폰의 대부분을 인도에서 만든다

제 문제는 더 이상 중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31일, 팀 쿡 CEO는 현재 미국에서 판매되는 아이폰 대부분이 인도에서 생산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는 인도가 시한 내 미국과의 무역 합의에 실패하자, 인도산 수입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관세를 피하려는 기업들은 미국행 제품의 경로를 베트남이나 태국으로 바꾸는 전략을 택했다. 이는 너무 흔한 전략이 되어 '차이나 플러스 원(China+1)'이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처럼 경유지를 바꾼 제품들도 새로운 관세 대상이 됐다.

실제로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상에서 이런 '경유 수출' 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다뤄왔다. 트럼프 대통령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바로 수출된 제품에는 20%의 관세가 매겨지지만, 베트남을 거친 경유 수출품에는 40%의 관세가 부과된다.

반도체처럼 고도화된 제조업의 경우 상황은 더욱 어렵다. 세계 반도체의 절반 이상, 그리고 첨단 반도체 대부분은 대만에서 생산된다. 이들 역시 현재 20%의 관세 대상이다.

반도체는 대만 경제의 핵심이자, 미국이 중국에 기술적으로 앞서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산업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미국 기업인 엔비디아가 대만 TSMC에서 만든 첨단 반도체를 자사의 AI 제품에 탑재하기 위해 막대한 관세를 부담하게 되는 셈이다.

A man and a woman at a Shein factory, sitting side-by-side and working on sewing machines. They are cutting and sewing red fabric.
Xiqing Wang/BBC
Workers at a Shein factory in China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쪽은 아시아의 전자상거래 대기업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들에 의존해온 미국 기업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번 주 트럼프 대통령은 예상치 못한 조치로 '디 미니미스(de minimis)' 규정을 폐지했다. 이 규정은 800달러 이하 소포에 대해 관세를 면제해주는 조항이다.

그는 지난 5월 중국과 홍콩발 소포에 대해 이 규정을 먼저 폐지했으며, 이는 쉬인, 테무 같은 소셜커머스 플랫폼에 큰 타격을 줬다. 이들 기업은 서방 시장에서의 온라인 판매로 급성장해왔다.

그리고 이번 조치로 인해 미국의 이베이(eBay), 엣시(Etsy) 같은 플랫폼도 면세 혜택을 잃게 됐다. 중고품, 빈티지, 수공예 제품 가격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더 비싸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관세 정책이 미국인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세계 경제가 깊게 얽혀 있는 현실에서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 또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앞으로 펼쳐질 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번 조치의 진짜 승자가 누구인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BBC NEWS 코리아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