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 동성애가 있을까?' 개념조차 없이 부정당하는 북한 성소수자, 인권 침해로 봐야 할까
북한 당국의 인권 탄압 참상을 적나라하게 밝힌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가 공개된 지 10년이 됐다.
보고서는 북한 내 적절한 식량에 대한 권리, 표현의 자유, 이동의 자유가 침해당한 사례 등을 비롯해 학대, 고문, 강제 노동, 구금, 정치범 수용소, 공개처형 등이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북한은 최근 들어 평양문화어보호법, 청년교양보장법, 반동문화사상배격법 등을 도입하면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더욱더 옥죄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북한에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성소수자들이다.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다. 당연히 동성애, 성소수자 그리고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이들이 존재한다. 단지 개인보다 집단이 우선시되는 체제에서 이유도 모른 채 스스로를 억압하며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바깥 세상에 알려진 바 거의 없는 북한 성소수자들의 삶과 인권에 대한 이야기, 지금부터 살펴본다.
첫 탈북 동성애자
한국에서 장편소설 작가로 활동하는 장영진 씨. 1990년대 후반 한국에 정착한 그는 한 매체 인터뷰를 통해 강제 커밍아웃을 한 인물이다. 여러 내외신 보도를 통해 그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만나본 그는 순수함 그 자체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 없는 삶은 실패한 삶이에요. 사랑이 없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요.”
특히 그의 남다른 ‘자기애’가 돋보였다. “나는 178cm 밑으로는 안 만나요. 남자로 안 보여. 나는 상대방 손가락 길이도 본다니까. 손가락이 가늘고 길어야 해요.” 애인을 고르는 그의 기준은 꽤나 까다로웠는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실제 그는 그들 세계에서 소위 ‘인싸’였고 한국은 물론 미국과 영국, 태국 등 세계 곳곳에서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남성'들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다. 스무 살 연하 한국인 남성으로부터는 7년 전부터 최근까지 구애를 받았다고.
그와 대화를 할수록 그가 정말 온전히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탈북민이라는 꼬리표도, 60대라는 나이도 그에게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는 일찍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았더라면 탈북하지 않고 어머니, 형, 동생과 함께 고향에서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 온 뒤 우연히 한 잡지를 통해 ‘아, 남자가 남자를 좋아할 수도 있구나’를 알게 된 순간 그의 세상은 달라졌다. 과거 불행 속에 몸부림치던 그는 이제 없다.
'이유도 모른채 불행한 삶'
장영진 씨는 괴로웠던 결혼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탈북을 결심했다. 그저 너무 답답하고 막막하고 이유도 모른 채 불행했다. 등 떠밀려 결혼도 했지만 왜 그리 아내 곁에 가기 싫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장인어른을 따라 병원에도 가봤지만 원인도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아내가 울면서 그러더군요. ‘나는 공부도 잘했고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어쩌다 당신 같은 나그네(남편)를 만나서 이렇게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그때 결심했죠. 아, 이 여자를 놔줘야겠구나. 그래서 이혼하려고 인민재판소에도 갔는데 욕만 먹었어요. 아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혼은 절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어릴 때부터 ‘곱다, 처녀처럼 생겼다, 남자애가 이렇게 곱상해서 어쩌냐’ 이런 얘기를 듣고 자랐다. 소꿉친구 선철이를 남몰래 좋아했는데 선철이는 뽑혀서 평양 연기예술대학에 갈 정도로 훤칠하니 잘 생겼다고 했다. 왜 그리 선철이가 좋았는지 역시나 그때는 몰랐다. 그는 여전히 선철이가 그립다고 했다.
특히 선철이가 장가가던 날을 잊을 수 없다는 그는 선철이의 신혼집 앞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하염없이 울었다고 했다. 왜 그토록 화가 나고 속상한지 알 길이 없었다. 한번은 각자 결혼한 후 선철이가 집에 놀러 와 하룻밤 머물게 됐는데 선철이가 있는 방에 가고 싶어서, 가슴이 콩닥거려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무심하게 잠만 자는 선철이가 너무나 야속했을 뿐이다.
군대에서는 곱상한 외모 덕에 선임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추운 겨울, 어떻게든 옆에 와서 껴안고 자려고 경쟁이 붙었고 어떨 때는 뽀뽀하며 얼굴을 부비고, 또 어떨 때는 바지 안에 두툼한 손이 들어오기도 했다. 자상하고 늠름했던 소대장에게는 달려가 품에 안긴 적도 많았다고. 그는 북한 군대에서의 이러한 것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10년 동안 휴가 한번 없는 군대에서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혁명적 동지애’가 있기에 가능하다고 그는 재차 강조했다.
처음에는 너무 옛날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2019년 탈북해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30대 초반의 장마당 세대(북한 MZ세대)에게 들은 최근의 북한 군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혁명적 동지애'
증언 1. 2010년대 평양 군대
평양에서 군 복무한 이성혁 씨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성인 남자들도 친하면 손을 잡고 다닌다. 동성애에 대한 상식이나 정보가 전혀 없기에 친하면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남자끼리 손잡고 껴안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부분이 핵심인데 이러한 점이 여전히 군대 내 ‘혁명적 동지애’로 연결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저희 부대 같은 경우는 120명이 같이 살고 120명이 다 옷을 벗고 나란히 누워서 다 같이 그냥 비벼대고 자고 그랬거든요. 군대에 어린 친구들 들어오면 귀엽잖아요. 그러면 부둥켜 안고 어깨동무하고 몸을 비비고 그래요. 그냥 여자가 없다 보니까 조금 이쁘장하게 생긴 남자애가 들어오면 여자라고 프레임을 씌워주고 욕구를 푸는 거죠. 근데 그게 그 사람의 성 정체성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여자가 없는 곳에서 10년 동안 버티다 보니까 그런 거지, 그 사람이 그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군대는 어쩔 수 없이 내 몸을 모두가 다 공유하고 살고 있고 그리고 어려운 순간에는 피도 주고 살도 줘야 되는 사이라서 진짜 친하면 그런 거부 반응도 없어요.”
“그러니까 북한을 볼 때 한국식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이해가 안 돼요. 북한은 북한만의 시각으로 봐야만 이해가 빠르거든요. 북한에는 동성애란 느낌이 전혀 없어요. 상식에도 없어요. 그냥 쟤가 병이 있고 ‘고자’라서 그렇다고 하지, 성소수자? 동성애? 한국 드라마 아무리 많이 봐도 그런 쪽은 전혀 몰라요. 그러니까 내가 왜 이러지? 좀 이상한데? 이러다가 자기 스스로 딱 차단해요. 그런 사람들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인식하는 북한 사람들은 진짜 거의 없을 거예요. 0%라고 할 순 없겠지만 거의 없다고 봐요.”
그는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북한 사회에서는 ‘상식 밖의 일’ 또는 ‘윤리적으로 금지된 행위’, ‘동물들이나 하는 짓’으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북한 사람들은 ‘얼마나 인기가 없어서 남자가 없으면 자기네끼리 그랬겠냐’, 남자들은 ‘얼마나 인기가 없어서 여자가 없으면 저렇게 자기네끼리 막말로 개XX을 했겠냐’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해요."
"병원에 정신과는 있는데 정신과 의사들 자체가 그런 것을 아예 배제한다고 보면 돼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만약 발각된다면 바로 감옥에 갈 텐데 다른 죄목으로 처벌받을 거예요. 북한 당국 자체에서도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니까요. 그리고 이게 사회적 이슈가 됐다면 벌써 방침이 내려왔거나 전달 사항이 떨어졌겠죠. 그 문제를 강력하게 단속하라고 했을 텐데 그런 게 전혀 없어요. 그러니까 북한 내에서는 그런 걸 전혀 느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북한에서 뉴스가 나왔어요. 프랑스에서 공식적으로 여자와 여자가 결혼하고 남자와 남자가 결혼하는 것을 허용했다고요. 그러면서 마지막에 덧붙인 말이 ‘썩고 병든 자본주의 사회의 결말을 봐라, 저게 인간들이 할 짓이냐’ 이렇게 선전했어요. 그때 다들 ‘역시 자본주의는 살 곳이 못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죠.”
실제 프랑스의 동성 결혼은 전 세계에서 13번째로 합법화되었으며 2013년 5월 18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남자행세를 하고 다녔다'
증언 2. 1980년대 북중 접경지역 마을
50대 탈북민 박순자 씨의 증언은 1980년대 북한에 이미 성소수자들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박씨는 어릴 적 소꿉친구 김씨와 친하게 지냈다. 14살에 이미 담배를 피우는 등 ‘끼’가 다분했던 김씨는 박씨의 친오빠를 짝사랑했는데 그 오빠가 군대 갈 때 통곡까지 했다. 그러던 중 김씨가 20살에 우연히 한 재일교포 여성에게 푹 빠져 집에 있던 값비싼 녹음기를 선물했고 이후 발각되어 아빠와 오빠들 앞에서 무릎 꿇고 싹싹 빌었다고 한다. 나중에 박씨에게는 ‘후회한다’고 말했다고.
김씨는 이후 24살에 8살 연상의 또 다른 재일교포 출신 '돌싱' 여성을 만났는데 옆집 여자가 그 둘이 방에서 나체로 뒹구는 모습을 목격하게 됐다. 당시 북한 집들은 소련식 씨앗집들로, 문 위에 12cm 정도 유리창 나 있었는데 옆집 여자가 지나가다 이상한 소리가 나니까 그 위로 방안을 확인한 것. 놀란 여자는 인민반장에게 달려갔다.
“인민반장이 얘기를 듣더니 상상도 못 하는 소리니까 거짓말하지 말라고, 아무리 나빠도 그런 말을 지어내지 말라고 하니까 이 아줌마가 아예 인민반장을 그 집에 데려온 거야. 인민반장이 여자였어요. 보니까 진짜 여자 둘이 딱 그러고 있으니 기겁을 하고 신고한 거죠. 그래서 둘 다 안전부에 잡혀 들어갔어요.”
“25살에 어느 때인가 우리 집에 놀러 왔는데 또 뭐라고 하냐면 자기 이렇게 가슴 수술했대요. 왜 수술했냐 하니까 종양이 생겨서 했다고. 그래서 우리 언니가 이렇게 옷을 들쳐서 보더니 이 X간나 젖이 있는가, 왜 남자 행세를 하고 다니냐고 하면서 그땐 웃고 지나갔거든요.”
“45살에 다시 만났을 땐 목소리까지 걸걸하게 남자 같아서 내가 '니 목소리도 이상하게 굵어졌다, 이 XX것아 담배 피워서 이렇게 됐냐'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 자기는 분명 남자로 태어났는데 자기 엄마가 자기 성 정체성을 몰라봤다고. 태어나자마자 음부에 칼로 어떻게 해서 성기가 나오게 했어야 하는데 자기 부모들이 그걸 못해서 자기가 이렇게 됐다고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고요.”
'동성애 인식조차 없어'…인권 침해일까?
바깥세상에 거의 알려진 바 없는 북한의 성소수자들은 이렇듯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며 이유도 모른 채 억압된 삶을 살고 있다. 과연 구금이나 고문, 학대, 공개처형만이 인권 유린일까? 북한 성소수자들도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개인의 자아, 자의식, 정체성 등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 체제라고 평가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범위 자체가 너무 좁은데다 애초에 자기 욕구에 대한 표현 의지가 말살되기 때문에 주민들 스스로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억누른 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차별을 무차별적으로 자행하는 북한식 체제 분위기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전주람 서울시립대 교수는 BBC에 “북한에서 동성애는 반사회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며 “자본주의에 물든, 합법적이지 않은, 윤리적으로 잘못된 사람들이 하는 짓으로 여겨지는 등 거의 죄인 취급을 당하는 상황이다 보니 외부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동성애 관련 행위들이 분명 있지만 그런 것들을 사회적으로 정체성의 문제라든지, 우리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지 등 인식의 수준 자체가 논의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면서 “탈북민들에게 관련 질문을 하면 '돌 맞아 죽는다'는 답변도 물론 있었지만 그 자체로 불편해하거나 단번에 거절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 사회 안에서 정해진 옳고 그름이 상당히 명확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북한 성소수자들이 처한 현 상황을 인권 유린으로 볼 수 있을까?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은 “동성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나 탄압은 당연히 국제인권법에서 금지된 인권 침해에 해당된다”고 답했다. 북한도 국제인권규범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나라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국제법에 위반되는 행위라는 것. 북한은 ‘정당한 사유 없이 차별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규정이 담긴 ‘자유권 규약’ 가입국이다. 아울러 1991년 유엔에 가입함으로써 북한도 세계인권선언 준수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신 분석관은 “북한이 워낙 폐쇄적인 곳이다 보니 동성애 이슈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면서 “2023 북한인권보고서에 딱 한 줄, 비밀 처형 사례가 올라왔고 이전에 청진에서 재일교포 출신 레즈비언 커플이 공개 총살됐다는 보도 정도만 있었다”고 했다. 특히 “북한 내 성소수자 탄압의 경우 당국뿐 아니라 일반인들에 의한 인권 침해도 많기 때문에 다수의 탈북민들이 한국에 온 이후에도 해당 이슈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거나 공개하기를 꺼리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인식 변화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면서 왜 이게 인권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지, 왜 탄압을 받아서는 안 되는지 등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담론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일단 북한 내 정보가 많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정보 접근과 수집 및 정리 등이 필요하고 이후 국제사회가 북한 당국을 상대로 관련 문제 제기를 하면서 답변을 요구하는 그런 절차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는 11월 6일(현지시간) 유엔의 4차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가 열린다. 이는 유엔 인권이사회(UNHRC)가 4년 6개월에 한 번씩 193개 유엔 회원국을 대상으로 전반적인 인권상황을 상호 점검하고 개선책을 권고하는 제도다. 북한을 포함한 모든 회원국들은 각 인권 질의에 답변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일러스트: 김혜진
그래픽 디자인: 안드로 사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