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구상하는 '새로운 중동'은 어떤 모습일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새로운 중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왔다. 역내 힘의 균형을 바꾸고 다른 정치 지형을 그리는 것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목표는 아니지만,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공격 이후 빠르게 돌아가는 상황과 이어지는 대립을 고려할 때 목표 실현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논쟁적인 이스라엘 지도
지금까지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들이 국제 포럼에 참석할 때 지참한 이스라엘 지도 중 그 어떤 것에도 팔레스타인 국가나 영토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스라엘 총리는 최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두 개의 지도를 제시했는데, 첫 번째 지도에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거나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협상 중인 국가들이 녹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집트와 수단,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요르단이 여기에 포함됐다.
두 번째 지도에는 네타냐후가 "저주받은" 지역이라고 부르는 곳이 검은색으로 표시돼 있었다. 여기에는 이란과 그 동맹국인 시리아, 이라크, 예멘, 그리고 레바논이 포함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최근 연설에서 "이스라엘의 증오스러운 야망"에 대해 언급하며 "그들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우리 조국 땅을 탐낼 것이며, 그들의 뒤에 있는 지도를 토대로 그들이 가자지구로 만족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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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중동 센터 선임 연구원인 예지드 사이그는 이러한 야망이 네타냐후가 당면한 의제나 그가 이끄는 정부의 진정한 목표를 제대로 나타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이그는 "현재 네타냐후가 추구하는 새로운 중동은 이스라엘이 나머지 팔레스타인 영토를 식민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특히 서안지구에서 정착 프로젝트를 확장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으며, 아랍과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착촌 수를 늘리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해왔다.
반면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데이비드 쉥커 선임 연구원은 "이스라엘 우파 정부에는 2국가 해법을 믿지 않는 장관들이 많고, 지금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는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가장 거리가 먼 얘기로 들리지만, 팔레스타인 영토가 포함되지 않은 이스라엘 지도를 미국이 승인할 것 같지는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쉥커 연구원은 과거 미 국무부 근동 담당 차관보를 역임했다.
쉥커는 "새로운 중동에 대한 이스라엘의 관점은 이란의 위협이 없는 지역을 뜻한다"라고 말했다.
'이란의 위협'이 없는 중동
안보 전문가이자 은퇴한 이스라엘 정보요원인 미리 아이젠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은 새로운 중동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이란의 물라(이슬람 율법학자) 정권이 지역 질서를 정의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네타냐후의 발언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끝내고,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국제적 망신을 당한 후 자신의 역사적 입지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베이루트 남부 교외 중심부를 겨냥한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과 뒤이은 헤즈볼라 사무총장 하산 나스랄라의 암살은 이번 전쟁의 지정학적 전환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란은 자국 영토에서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살해된 데 대한 대응으로 서방이 오랫동안 우려해 온 다양한 무기를 사용해 이스라엘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이스라엘은 이란의 공격에 대해 원하는 시기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군사적 해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미국은 자국의 전략적 우위를 보장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상당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으며, 역내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군사적 존재감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은 이스라엘이 이란 핵 프로젝트와 2국가 해법과 관련해 미 정부가 연설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한계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아이젠은 "이스라엘의 군사적 행동은 이란이 이스라엘과 다른 국가들을 위협하는 이란의 대리인들에게 무기와 이데올로기를 수출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며, 이란의 군사 능력을 약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 연구소의 데이비드 쉥커 선임 연구원은 이스라엘이 역내 이란의 '대리인'을 무력화시키는 데 진전을 이뤘을지 모르지만, 아랍 국가의 지원 없이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당국 및 아랍의 노력과 국제 외교 없이도 재건할 수 있으며, 헤즈볼라도 레바논 공동체의 노력 없이도 재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젠은 이스라엘이 "이란의 위협"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동맹국들과 안보와 경제, 심지어 기술 파트너십까지 강화하려 한다고 믿는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은 역내 정상화를 주도하면서 경제·군사적 유인을 제공하고 이스라엘이 아랍에 대한 역내 위협이 아니라 함께 이란에 맞서는 전략적 파트너라는 관점을 강조해왔다.
모로코와 아랍에미리트,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하면서 지난 4년 동안 이들 국가와 이스라엘 간 관계 정상화 속도가 빨라졌지만, 2023년 10월 7일 공격과 이후 이스라엘-가자지구 전쟁 이후 주춤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정상화도 모색해 왔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가 다수인 이란의 역내 개입 및 영향력 확대에 반대하고 이란의 중동 패권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팔레스타인 국가가 수립될 때까지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않겠다고 파이낸셜 타임스 기사를 통해 공식 선언했다.
2023년 10월 7일 이전에 있었던 지정학·경제적 변화 상황은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한 이후 팔레스타인 분할에 항의하며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등 여러 아랍 국가의 태도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쉥커는 "이들 국가가 팔레스타인에 공감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이들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의사 결정권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과 역내 정상화를 연결짓기보단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경제 파트너십
2023년 10월 7일 이전 관계 정상화의 일환으로 발표된 거래와 합의에는 국방과 사이버 보안, 핀테크, 에너지 분야에서의 투자가 포함됐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일어난 전쟁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새로운 아랍 국가 파트너 간의 무역 협력이 둔화했을 수 있지만, 이스라엘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회계연도 상반기 동안 이스라엘과 아랍 5개국 간 무역은 아랍에미리트와 이집트, 바레인, 모로코의 주도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 일간지 마리브는 아랍에미리트와 이스라엘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을 거쳐 이집트까지 이어지는 무역로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산 가스는 이집트 일부 전력망의 주요 공급원이기도 하다.
쉥커는 "이스라엘은 새로운 지역 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외교와 경제 파트너십, 그리고 강력한 국방 및 군사 행동을 결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이그는 "중동 내 변화는 국제 정세나 미국·러시아·중국 간의 국제적 갈등, 유럽 내 정치 상황 변화와 분리해서 볼 수 없다"며 지역적, 세계적 변화가 빨라짐에 따라 최근 불거지고 있는 전 세계적인 갈등 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