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두 국가 해법'은 무엇이고, 왜 지금까지 실현되지 않았나?

수십 년간 이어진 아랍-이스라엘 갈등 해결을 모색하고자 사우디아라비아와 프랑스는 최근 UN에서 '두 국가 해법'을 재추진하는 고위급 회의를 공동 주최했다.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위한 기반 마련이 그 목적이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후 시작된 이번 가자 지구 전쟁으로 인해 두 국가 해법의 실현 가능성은 매우 요원해보였다.
그러나 가자 지구 내 재앙적 상황이 점점 더 악화하면서 아랍과 유럽 국가들 모두 이 해법을 재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영국에 이어 캐나다 또한 최근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할 계획을 밝혔다.

이스라엘은 물론 이스라엘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미국은 2일간 진행된 이번 UN 회의에 불참하며 불만을 드러냈다. 미국은 이는 전쟁을 끝내려는 자신들의 노력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이번 회의가 "점령을 끝내고, 우리가 공유하는 실현 가능한 두 국가 해법을 위한 열망을 돌이킬 수 없게 실현하는 방향으로의 진전을 이끄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 국가 해법'이란?
'두 국가 해법'이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각각 국가로서 확실하고 인정된 국경을 두고 공존하자는 주장이다.
팔레스타인 측은 1967년 전쟁(제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점령한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가자 지구를 포함한 지역에 자신들만의 독립 국가를 세우고자 한다.
그러나 현재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의 자주독립 및 주권 국가화에 반대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입장
베냐민 네타냐후 현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 독립에 강경하게 반대해온 인물로, 두 국가 해법에도 줄곧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10월 7일 사건이 발생하기 2주 전, 네타냐후 총리는 UN 총회에 참석해 이스라엘과 이웃 아랍 국가들 간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밝아오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25년 동안 "소위 전문가들이" 주도해 온 "그들의 접근 방식", 즉, 요르단강과 지중해 사이 땅을 이스라엘과 미래 팔레스타인이 나눠 갖는 두 국가 해법으로는 "단 하나의 평화 조약도" 끌어내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던) 2020년, 제가 주장해 온 접근법에 따랐더니 … 단기간에 놀라운 돌파구가 마련되었습니다. 4달 만에 이스라엘은 아랍 4개국과 평화조약 4건을 맺었습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 미국의 중재로 성사된 협정들로, '아브라함 협정'이라 불린다.

네타냐후 총리는 아브라함 협정을 계기로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이스라엘을 파괴한다는 환상을 버리고 진정한 평화의 길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신 중동'이라 명명한 지도를 제시했는데, 이는 사실상 두 국가 해법에 종식을 시사했다.
그렇다면 두 국가 해법은 어떻게 평화 방안으로 등장했으며, 이에 대한 국제 사회의 태도는 어떻게 바뀌어 왔을까.
- 이스라엘은 왜 지금 서안 지구에서 최대 규모의 군사작전을 시작했나?
- 징집에 분노하는 이스라엘 초정통파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 가자 지구 전쟁 '그 이후의 날'을 위한 계획은 어떻게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평화를 향한 희망은 어떻게 무너졌나
두 국가 해법론은 1947년 UN 팔레스타인 분할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위임통치 지역인 팔레스타인을 2개의 독립된 국가로 분할한다는 구상이었다.
1993년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내 '파타' 세력과 이스라엘이 노르웨이의 중재로 성사된 비공식 협상을 통해 서로를 인정하면서 두 국가 해법의 틀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른바 '오슬로 프로세스'는 결국 타당한 종점에 이르지 못했고, 이전보다 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남겼다.
'땅과 평화의 교환 협정'을 통해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일부 지역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자치권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및 유대인 정착 활동은 계속되었으며, 이른바 '영구적인 지위 문제'는 나중으로 미뤄졌다. 여기엔 1947년 UN 분할 결의와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에 관한 문제도 포함된다.
이스라엘이 1967년에 병합한 동예루살렘 문제도 주요 난제 중 하나였다. 양측 모두에게 성지인, 그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수년간의 외교적 쇼맨십 끝에 마침내 2000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주최한 캠프 데이비드 비공개 정상회담에서 다루어졌다.
그러나 에후드 바라크 당시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대통령은 끝내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양측은 실패의 원인에 대해 서로를 비난했다. 우선 이스라엘과 미국 측은 가장 관대한 조건을 제시했음에도 아라파트 대통령이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팔레스타인 측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는 등의 자신들의 요구는 전혀 충족하지 못하는 형식적인 협상에 불과했다고 반박했다.
그 이전인 1987년 가자 지구에서 창설된 '하마스('이슬람 저항 운동'을 뜻한다)'는 라이벌 세력인 파타가 평화를 위해 양보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1994년부터 자살 폭탄 테러를 통해 협상을 방해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종교적 신념이 강한 정착민들 또한 이스라엘 정부의 느슨한 태도를 이용해 신이 자신들에게 약속한 땅이라고 믿는 지역에서 정착지를 넓혀갔다.

오슬로 이후에는?
2000년,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대규모 봉기인 '제2차 인티파다'가 발발하자 이스라엘 정치 중심축은 크게 우파 쪽으로 기울었다.
오슬로 프로세스의 주역이었던 이스라엘 노동당은 쇠퇴했고, 대신 정착촌 건설 등을 지지하는 여러 우파 세력이 의회 주도권을 잡았다.
저항적인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군사적 압박에 맞섰고, 바라크 총리의 후임인 아리엘 샤론 총리 내각은 이스라엘과 서안 지구 내 일부 정착촌을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분리하는 장벽을 건설했다. 이에 아라파트 PA 대통령은 2004년 사망 직전까지도 라말라에 머물러야만 했다.
샤론 총리는 팔레스타인 주민 150만 명이 거주하던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정착민 수천 명을 철수시키고 병력을 외곽으로 이동시켰다. 서안 지구 내 고립되었던 정착촌 4곳도 철수했다.

이 '철수' 계획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의도는 이스라엘 영토 내 다수의 유대인 인구를 보호하고자 팔레스타인 주민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당시 샤론 총리 측 수석 보좌관은 이러한 조치는 정치적 협상을 끝내버리는 데 "필요한 양의 포름알데히드"를 제공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이스라엘 내 집권 리쿠드당을 분열시켰고, 정착촌 건설 지지자들을 소외시켰다. 하지만 샤론 총리는 주저하지 않고, 2006년 총선을 치르기 위해 새로운 정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샤론 총리가 투표 몇 주 전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대해서도 유사한 계획이 있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게 되었다.
아라파트의 후계자인 마흐무드 압바스 PA 대통령은 이 계획은 오슬로 원칙에 대한 배신이라며 강하게 비판했지만, 가자 지구의 하마스는 저항의 성과라며 환호했다.
그러나 이집트의 협력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대한 봉쇄를 강화했고, 무장세력의 습격과 로켓포 공격이 이어졌다. 이에 이스라엘이 폭격과 지상 침공을 반복하면서 폭력 사태는 꾸준히 격화했다.
그러는 동안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서는 하마스가 점차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하마스는 2006년 치러진 PA 입법 선거에서 다수당으로 올라서게 된다. 유권자들이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부정부패 없는 투명한 통치에도 실패한 파타에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하마스는 무력을 동원해 가자 지구에서 PA를 몰아냈다. 그 결과 가자 지구는 무장 저항의 거점으로, 서안 지구는 평화 협정을 지키려는 파타의 통치권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러나 하마스는 장기적인 폭력 사태 중단, 1967년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할 수 있다고 시사하는 등, 향후 정치적 참여의 여지도 내비쳤다.
그러나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신들의 강령만큼은 고수했다.
그 사이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에서 규모와 거주 인구 면에서 정착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이 흐름은 2025년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마스는 가자 지구 내 감시가 느슨한 틈을 이용해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같은 동맹 세력의 지원을 받아 군사력을 증강해나갔는데, 이들을 이른바 '저항의 축'이라 부른다.

새로운 요소
한편 10월 7일 공격과 이번 가자 지구 전쟁으로 새로운 요소들이 등장했다.
네타냐후 현 총리는 10월 7일 이후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대한 반대 입장이 더욱 공고해졌다면서, 이러한 시도는 "(이스라엘의) 존재를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를 포함한 "요르단강 서쪽 전 지역에 대해 완전한 안보 통제"를 유지하겠다고 공언했다.
2024년 7월 이스라엘 의회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거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우파 성향의 네타냐후 지지자들은 가자 지구 일부 등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국가로 세우고자 하는 땅을 이스라엘에 병합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지지자들은 가자 주민들을 완전히 몰아내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현재 이스라엘 내에서는 하마스를 반드시 궤멸시켜야 한다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려는 시도는 가자 민간인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고위 군사 지도부를 살해하고, 헤즈볼라와 이란의 힘까지 약화시킨 이후, 평화를 향해 나아가라는 국제 사회의 이스라엘에 대한 압박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아랍 및 유럽 국가들이 공동으로 후원한 UN 회의와 팔레스타인의 공식적인 국가 인정을 목표로 한다는 프랑스, 영국 등의 발표는 두 국가 해법 쪽으로 방향을 틀도록 이스라엘을 압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두 국가 해법의 주요 지지국이었던 미국은 최근 그 입장에서 점차 멀어지는 모습이다.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나, 그의 행정부는 이번 UN에 반대해왔다.
로이터통신이 입수한 미국 외교전문에는 "미국은 확정적이지 않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일방적으로 인정하는 모든 조치에 반대한다. 이는 분쟁 해결을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전쟁 중인 이스라엘을 압박하여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적을 돕게 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올해 7월 29일, 장기적인 해법을 추구하도록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는 하마스를 보상하는 행위로 보일 수 있다고 답했다.
미국이 지지하지 않는 이상, 두 국가 해법 추진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보도: BBC 아랍어 서비스 - 리나 샤이크우니, 마틴 애서, 라미스 알탈레비, 폴 쿠시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