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의 '반칙'이 오히려 권장되는 운동 대회?

수십 년간 경기력 향상 약물은 스포츠계를 짙게 드리운 그림자였다.
세계 챔피언 중에는 이후 금지 약물 사용 이력이 밝혀지며 메달과 명예를 잃은 이들도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러한 약물 복용을 묵인해주는 수준을 넘어 오히려 장려하는 대회가 있다면 어떨까.
'인핸스드 게임즈'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내년 5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인핸스드 게임즈'가 최초로 다종목 대회 형식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약물 검사도 없으니 제한 없는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셈이다.
이 대회를 구상한 호주 출신 사업가 아론 드수자는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 기업가 피터 틸 등이 참여한 벤처 캐피털 펀드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는 2023년 처음 발표되었을 당시, 최대 100만 달러(약 14억원)의 상금을 걸고 세계 신기록을 세울 기회로 소개되었다.
조직위는 그리스 출신 수영선수 크리스티안 골로메에브가 2009년 이후 유지되고 있는 50m 자유형 기록을 경신했다고 주장했으나, '세계수영연맹'의 공식 기록으로는 인정되지 않았다.
한편 인핸스드 게임즈가 실제로 개최될 수 있을지 의심하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이를 그저 의도적인 도발 혹은 홍보용 퍼포먼스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미 몇몇 수영 선수들은 출전 의사를 밝혔다.
그 중에는 벤 프라우드도 있다. 그는 이 논란의 대회에 출전하는 첫 번째 영국 선수다.
프라우드는 BBC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참가하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3년 동안 우승해야 받을 상금을 이 대회 한 번으로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예상대로 이 대회에 많은 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세계육상연맹'의 로드 코 회장은 이러한 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면서, 참가하는 선수들에게는 장기적인 출전 정지 처분이 내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대회는 결국 선수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공정한 스포츠 정신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위험하고 무책임한 프로젝트"라며 규탄했다.
아울러 인핸스드 게임즈 공식 웹사이트에서 '테스토스테론 대체 요법' 주사제 등 여러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주사제의 잠재적 부작용으로는 기분 변화, 우울증, 공격성 증가, 전립선 비대 등이 있다.
프라우드 선수 또한 운동 능력 향상 약물 사용에 "큰 위험이 따른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런 약물에는 엄청난 사회적 낙인이 뒤따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가 무언가를 복용해야 할 의무는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모든 것은 제 선택입니다."
'영국수영협회'는 SNS 성명을 통해 "프라우드 선수의 인핸스드 게임즈 출전 결정 소식에 매우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우리 협회와 파트너들은 다 함께 깨끗한 스포츠의 가치 및 원칙을 확고히 지지하며, 프라우드 선수의 참가 결정을 강력히 비판합니다."
'영국스포츠협회'는 자국 수영협회와 협력하여 "긴급히 프라우드 선수의 공공 지원금 수령 자격 여부를 검토 중"이라면서 반도핑 규정 위반은 영국 스포츠 기금 지원 정책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인핸스드 게임즈 측은 내년에 출전하는 선수 전원은 "경기 전 광범위한 의료 검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참가한 선수들은 "최상위 수준의 출전료 및 상금에 더불어 신기록 수립 시 최대 일곱 자릿수에 달하는 추가 보너스" 등 제대로 된 재정적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핸스드 게임즈 웹사이트에는 "우리는 선수들이 각 분야 최고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과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프라우드는 BBC '라디오 5 라이브'와의 인터뷰에서 "은퇴를 수년간 고민해왔다"고 토로했다.
"사실 올림픽에 참가하는 우리 선수들은 은퇴할 만큼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