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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 실사화를 하는 이유는?

3일 전
눈속에서 칼을 들고 있는 성진우('나 혼자만 레벨업'의 주인공)의 모습
Courtesy of Netflix
'나 혼자만 레벨업'은 원래 한국의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되던 현대 판타지 웹소설이다

최근 넷플릭스가 '나 혼자만 레벨업'의 실사화 시리즈 제작 소식을 발표하면서 기존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인류의 생존이 이른바 '헌터'라고 불리는 특별한 능력자들에게 달린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나 혼자만 레벨업'은 2016년 한국에서 처음 연재된 동명의 판타지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이후 각색된 애니메이션 또한 큰 인기를 끌었다.

작중 헌터들은 신비한 포털인 '게이트'를 통해 나타나는 마수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헌터의 능력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 주인공 성진우는 하급 헌터로, 번번이 죽을 고비를 넘겨야 하는 '인류 최약병기'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겪은 이후 자신이 게임과 유사한 미스터리한 시스템을 통해 능력을 '레벨 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한편 '나 혼자만 레벨업'은 2024년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A-1 픽쳐스'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더욱 인기를 끌었다.

아시아 외 지역 시청자에게 매우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플랫폼인 '크런치롤'을 소유한 '소니'에 따르면 '나 혼자만 레벨업'은 '귀멸의 칼날', '원피스'와 같은 기존 인기작을 제치고 해당 플랫폼 역사상 최다 시청 시리즈 기록을 세웠다.

주먹을 휘두르는 성진우의 모습
Courtesy of Netflix
'나 혼자만 레벨업'의 주인공 성진우는 강력한 헌터로 거듭난다

잘못된 실사화

넷플릭스는 '나 혼자만 레벨업'의 엄청난 인기를 발판으로 실사화 시리즈 또한 큰 수익을 거두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원작, 특히 애니메이션 팬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스페인의 애니메이션 팬인 안데르 게레로는 실사화는 "성공 아니면 실패"라면서, '나 혼자만 레벨업'의 CG 작업이 원작의 느낌을 충분히 살리지 못할 것 같아 우려된다고 했다.

"이 애니메이션은 특히 전투 장면이 멋진데, 실사화를 통해 재현하긴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다.

한편 스웨덴 출신 팬인 안드레 데니슨은 이보다도 더 강경한 입장이었다.

데니슨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좋은 실사화 작품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실사화 제작의 필요성도 느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사화에서는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없다. 줄거리의 핵심 요소가 빠진 반쪽짜리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실사화 작업은 열렬한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원작을 모르는 신규 시청자까지 끌어들여야 하기에 제작사 입장에서는 상당한 창의적 도전이다.

유튜브 채널 '마더스 베이스먼트'를 통해 거의 140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리뷰 및 분석 영상을 제작하는 제프 듀는 캐스팅과 제작 디자인 외에도 작품의 분위기를 정확히 살리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애니메이션 특유의 과장된 연출과 미적 요소가 실사에서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비록 원작의 가장 상징적인 순간들이 실사에서 잘 구현되지 않을 수 있지만, 어떤 각색을 하든 여전히 팬들이 그러한 순간들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영화 포스터
Getty Images
할리우드의 각색 영화인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은 원작 팬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았다

한편 할리우드가 처음 애니메이션 실사화에 뛰어든 것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나,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유명 애니메이션 '드래곤볼'을 실사화한 '드래곤볼 에볼루션(2009년 작)'의 경우 40년 넘게 큰 사랑을 받아온 원작 팬들에게 조롱을 받았으며, 각본가는 수년 후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했다.

2017년 개봉한 실사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은 일본의 SF 만화 '공각기동대'와 1995년 제작된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나, 주인공 역에 백인 배우인 스칼렛 요한슨이 캐스팅되며 화이트워싱(백인이 아닌 역할을 백인이 맡는 현상) 논란이 일었고, 약 6000만달러(약 830억원)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실패 사례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는 여전히 여러 굵직한 실사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듄', '쥬라기 월드' 등을 제작한 미국의 유명 영화 제작사 '레전더리'는 1979년 일본 SF 애니메이션에서 시작된 거대로봇 '건담'을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 출신 배우 시드니 스위니가 해당 영화의 주연 자리를 놓고 최종 협상 중이다.

또한 글로벌 콘텐츠 기업 '라이언스게이트'도 소년 닌자가 마을의 수호자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 '나루토'의 영화화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 소속 일본문화 전문가인 에메랄드 킹 박사는 "지금 완벽한 실사화 영화를 만들겠다는, 그 공식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는 열망이 강하게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상은 시장 규모와도 관련이 있다. 미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리서치 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관련 상품과 음악 포함) 규모는 343억달러에 달하며, 오는 2030년까지 603억달러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넷플릭스는 정확한 시청자 수를 공개하지 않으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애니메이션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올해 7월 발표 자료에 따르면 3억 명에 달하는 넷플릭스 구독자 중 절반 이상이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시청한다. 게다가 2024년 한해 기준 애니메이션 시청 횟수는 10억회를 돌파했는데, 이는 지난 5년간 3배 급증한 수치다.

마케팅 업체 '덴츠'의 캐시 복스올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책임자는 제작사들은 애니메이션을 "새로운 시청자에게 접근할" 기회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주류 문화가 되었나?

영국에 사는 파리사 하기핫(34)은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애니메이션은 '이상한 애들'이나 보는 것으로 여겨졌다"며 말문을 열었다.

하기핫은 태국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며 비교적 어린 나이에 '도라에몽, '세일러문' 등의 애니메이션을 접하게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즐겨 본다.

"그러나 이제는 (애니메이션이) 좀 더 일반화되었고, 멋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예전에 저를 놀리던 사람들조차도 이젠 애니메이션을 보죠!"

유튜버 듀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에 "지각 변동"이 일어난 데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집 안에 갇혀 있는 동안 사람들은 남는 시간이 많아졌고, 딱히 할 게 없어 TV 프로그램을 몰아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피로감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덴츠사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1명은 늘 똑같은 할리우드식 스타일에 지쳐서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답했다. 미국에서는 10명 중 3명이 할리우드 작품과 다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시청한다고 답했다.

복스올 책임자는 일부 시청자에게 애니메이션은 "신선한 대안"이라면서, "시청자들은 애니메이션에서 감정적인 복잡성, 장르의 다양성, 문화적 특수성 등을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흰 옷을 입고 있는 배우 변우석
Courtesy of Netflix
넷플릭스에서 제작하는 '나 혼자만 레벨업' 실사화 드라마의 주인공 역에는 배우 변우석이 캐스팅되었다

그렇다면 왜 애니메이션을 꼭 실사화하려고 할까.

시장 분석업체 '패럿 애널리틱스'의 알렉스 카메론은 다양한 플랫폼에서 다양한 애니메이션 작품을 선보이는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실사화를 통해 콘텐츠 차별화를 꿈꾸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사판을 본 시청자들이 원작 애니메이션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해당 플랫폼이 시청자를 유지하고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넷플릭스는 과거의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은 듯하다. 혹평을 받았던 미국판 실사화 영화 '데스노트'를 내놓은 지 6년 만인 2023년, 다국적 출연진을 내세우며 선보인 넷플릭스 시리즈 '원피스' 실사화 작품은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실사화 과정에서 어떻게 진정성을 담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킹 박사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작을 존중하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결국 작품을 너무 이국화(exoticise)하게 풀어내게 된다"는 것이다.

"출연진과 제작진이 자신들이 만드는 작품의 본질을 이해하는 게 핵심"이라는 킹 박사는 "원피스의 경우 본질적으로는 해적의 이야기다. 그렇기에 원작의 정신을 살리면서도 자유롭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나 혼자만 레벨업' 실사화는 '원피스'의 성공을 재현할 수 있을까.

일부 팬들은 한국 배우진과 제작진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짐바브웨 출신 팬인 아치 모요는 "이는 줄거리의 핵심을 유지하기 위한 좋은 선택"이라면서 "할리우드식 캐스팅을 하다 보면 미묘한 문화적, 스토리적 뉘앙스가 사라지곤 한다. 그런데 이런 게 이야기의 뼈대일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유튜버 듀는 "전체적으로 '나 혼자만 레벨업'은 다소 어두운 슈퍼히어로 영화와 비슷한 분위기"라면서 "만약 멋진 전투 장면을 재현해내고, 주인공 성진우가 각 에피소드마다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면 팬들도 크게 불만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요는 "실사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나 혼자만 레벨업' 세계를 접하게 된다는 점이 가장 기대된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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