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내 친구' 외치던 트럼프…민주당 압승에 대북정책 달라질까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해 온 북미 대화와 한미동맹에도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까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거듭 과시하며 북미 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밝혀왔다.
하지만 북한이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데다 민주당까지 의회 권력을 확보하면서 대북정책 추진에도 제약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3일(현지시간)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상원에서 최소 54석을 확보했고 하원에서도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공화당의 전통적인 강세 지역에서도 잇따라 승리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새 의회는 내년 1월 3일 출범할 예정이다.
수년째 구애...북한은 반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첫 정상회담을 가진 뒤 이듬해 하노이와 판문점에서도 만났다. 올해도 김정은을 자신의 친구라고 부르며 북미 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거듭 드러냈다.
그는 지난 9월 29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김정은은 내 친구"라며 "그는 나를 좋아하고 나도 그를 좋아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 스팀슨센터의 한국 프로그램 책임자인 J. 제임스 김 연구원은 4일 발표한 분석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에서 자신의 정책을 추진하는 데 제약을 받게 되면서 외교정책으로 관심을 돌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를 다시 추진할 가능성을 거론했다. 민주당이 장악할 의회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한미동맹 현안에 대한 감독도 강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 정책에 대한 의회의 견제가 강화되는 만큼 상대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큰 외교·안보 분야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국제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피스메이커'로서의 성과를 남기려 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 2일 발표된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에서 32%에 그쳤다. 중간선거 참패로 정치적 입지가 더욱 좁아지면서 지지율 반등을 위한 외교적 성과를 추구할 경우 김정은과의 만남에 더욱 공을 들일 수 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지난달 31일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60억 달러 이상의 가상자산을 탈취한 배후로 북한 해킹조직을 지목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기자들에게 "북한의 소행으로 확인되면 이 문제를 북한과 논의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장은 지난 3일과 4일 잇따라 담화를 발표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여정은 미국의 해킹 배후 지목을 정치적 도발이라고 비난하면서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화가 평화를 위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이지만 반드시 북한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또 한미연합훈련과 북한 비핵화 요구, 대북 제재 등도 미국의 적대적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난했다.
이는 미국이 한미연합훈련 축소와 대북 제재 완화 등의 조치를 제시할 경우 북한도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북한의 잇따른 반발에는 미국의 해킹 자금 추적과 차단에 대한 불만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BBC에 북한의 반발에는 미국이 해킹 자금의 추적과 차단에 나서지 말라는 암묵적인 요구도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북미회담 쉽지않은 이유
일각에서는 오는 18~19일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북한이 올해 안에 북미 정상회담에 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군사·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중국과의 관계도 개선하면서 미국과의 협상이 당장 절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김정은으로서는 뚜렷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회담에 서둘러 나설 이유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대화 기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중간선거 패배로 조기 레임덕에 빠질 경우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베네수엘라에서 군사작전을 벌여 니콜라스 마두로 당시 대통령을 체포했고, 이란을 상대로도 대규모 군사행동을 감행했다.
김정은 역시 미국의 이러한 군사행동을 지켜본 만큼, 자신과의 친분을 강조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든 강경책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점은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김정은에 내밀 카드는?
민주당의 의회 장악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당장 바꾸지는 않겠지만, 북한과의 협상 과정에서 의회의 견제는 한층 강화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연합훈련 축소 결정에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지난 8월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를 강조하면서 한미연합훈련이 비용이 많이 들고 북한에 적대적인 신호를 보낸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은 당초 8월 17일부터 27일까지 실시할 예정이던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을 21일에 조기 종료했다. 훈련 기간이 11일에서 5일로 줄어들었고 일부 야외훈련도 축소됐다.
미국 국방부는 필수적인 군사 대비태세와 훈련 목표에는 영향이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하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그레고리 믹스 의원은 지난 9월 민주당 의원 21명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연합훈련 축소 결정을 재고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한국과의 사전 협의 없이 훈련을 축소한 것이 동맹의 신뢰와 군사 대비태세를 약화할 수 있다며 연합훈련을 다른 양국 간 정책 현안과 연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주한미군 감축을 둘러싸고도 백악관과 의회는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지난해 12월 제정된 2026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는 주한미군을 2만8500명 미만으로 감축할 경우 관련 예산 사용을 제한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지난 7월 하원을 통과한 2027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는 이러한 제한을 더욱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지만, 백악관은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군사정책 결정 권한을 침해한다며 반대했다.
주한미군 유지와 한미동맹 강화에는 공화당 의원들도 지지를 보내왔다. 현재 군사위원장인 마이크 로저스 의원 역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강조하며 주한미군의 성급한 감축을 경계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회담을 다시 추진할 경우 한미연합훈련 축소나 대북 제재 완화 등을 둘러싸고 의회와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중간선거 참패로 트럼프 대통령이 수년째 공을 들여온 북미 대화 구상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