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중간선거 참패로 미국 내 권한 위축... 대외적으로는 다를 것
도널드 트럼프는 늘 과장된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미국 유권자 대다수가 안겨준 이번 참패는 그야말로 정치적 인과응보라 할 만하다.
그러나 트럼프가 순순히 정치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를 장악하면서 트럼프가 미국 내에서 정책을 좌우하거나 정치적 술수를 부리고,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들게 됐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상황이 다를 가능성이 크다.
미국 대통령이자 군 통수권자인 트럼프는 여전히 미국의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는 폭넓은 권한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과 변덕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대통령직에 오른 뒤 그는 정책을 뒤집는 일을 정치적 무기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모습도 있다. 그중 하나는 자신이 패배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경멸한다는 점, 그리고 결코 자신이 패배자로 비치는 일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당한 참패를 만회하기 위해 해외에서 무언가 행동에 나서고 싶다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선거 결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적 위상이 흔들리지 않았으며, 여전히 강력한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결정적이고 승리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이 후보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는 명백히 다른 주장이다.
이란 전쟁
중간선거를 앞둔 몇 주 동안 미군 병력 배치가 확대되고 트럼프 대통령이 잇따라 강경 발언을 내놓으면서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을 재개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관측이 커졌다.
선거를 하루 앞둔 시점에는 미군이 걸프 해역의 이란 섬을 제한적으로 공습하기도 했다.
뇌졸중으로 입원하기 전, 민주당 소속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은 이란과의 전쟁 재개 가능성과 관련한 비공개 군사 브리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채 머피 의원은 해당 계획을 "정신 나간 일"이라고 비판하며, 전쟁이 재개될 경우 "파괴적인 확전"으로 이어질 것이라 경고했다.
미국이 이란의 민간 기반시설을 폭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전쟁범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이란이 걸프 지역의 미국 동맹국 내 유사 시설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보복에 나설 수도 있다.
이란의 공격 대상 목록에는 이스라엘만큼이나 미국과 가까운 아랍에미리트(UAE)가 가장 먼저 포함될 수 있다.
테헤란 당국은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여파가 미국 국내 정치의 쟁점으로 부상한 데 대해 만족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란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대한 공격으로 휘발유와 경유부터 농업용 비료에 이르기까지 각종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이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은 소셜미디어에 경고 메시지를 게시하기도 했다.
그는 "양심이냐, 생활비냐. 미국인들은 전쟁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우리도 이 메시지에 동의한다"며 "미국 정부가 국제적 후원자들과 협박 세력을 위해 자국민의 뜻을 배신한다면, 우리의 '반대'가 악몽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주 선거 이후 차기 정부 구성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테헤란의 이슬람 정권을 무너뜨리고 싶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이스라엘과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이란 전쟁 재개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기존 연립정부를 구성했던 정당들만으로는 새 정부를 구성할 만큼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대규모 전쟁이 재개돼 장기화하고 이스라엘 국민들이 직접적인 공격을 받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네타냐후 총리에게는 새로운 정치적 선택지가 생길 수 있다. 상당한 정치적 수완을 갖춘 그는 이를 활용해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주도권을 장악하려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또 다른 주요 분쟁은 제1차 세계대전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러시아산 경유를 구매하기 위해 대러 제재를 완화했다. 미국 소비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제재 완화 조치를 연장하고 그 범위를 확대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탄도미사일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이 계속해서 목숨을 잃고 있다는 사실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유럽 동맹국들이 비용을 부담하겠다며 요청한 미국산 요격미사일 지원이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수준으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러시아 미사일의 명중률과 피해도 커지고 있다.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번 선거 결과가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평화 중재 노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러시아와의 합의를 위해 영토를 양보하라고 지속적으로 압박해 왔다.
이는 사실상 우크라이나의 항복이나 다름없는 합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자신이 해결하고 종식시킨 전쟁 목록에 또 하나의 성과로 추가하려 할 것이다. 물론 그 목록 자체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선거 패배로 타격을 입은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그동안 거부해 온 영토 양보를 받아들이도록 압박 수위를 한층 높일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워싱턴DC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기념물을 계속 세울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 외의 행보에 대해서는 예측이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할 필요가 있다. 국내외에서 그가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전망하는 일은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여유롭게 흔들의자에 앉아 남은 임기를 조용히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내내 트럼프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즐겼고, 이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려는 의지를 보여왔다. 그런 태도는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가 미국을 더 이상 뒤흔들 수 없게 되더라도, 세계를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 할 가능성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