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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전함 전투는 실제 역사일까? 글래디에이터2에 영감을 준 기괴한 실화들

2024.12.01
영화 글래디에이터2의 한 장면
Aidan Monaghan

폴 메스칼과 덴젤 워싱턴이 출연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 속편은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담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BBC는 로마 역사 전문가에게 영화에 나오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물었다.

"어쩌면 영화 '글래디에이터2' 작업 과정에서 알렉산더 마리오티가 한 일이 영화계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농담하는 이들이 있다. 그의 임무는 영화 시나리오에 나오는 내용을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자문하는 일. 이번 영화에서 그는 시나리오의 내용이 역사적 기록에서 벗어날 때마다 감독인 리들리 스콧 경에게 조언을 해야 했다.

이 기사에는 글래디에이터2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콧은 자신의 영화가 실존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부분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2023년에도 TV 역사학자 댄 스노우가 스콧의 영화 '나폴레옹'에서 몇 가지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부분을 지적하자, 그는 스노우를 지칭해 "따분하게 살지 마라"고 답했다. 하지만 역사학자이자 검투사와 전투, 무기에 관한 저명한 강연자로도 활동 중인 마리오티는 스콧의 작품 활동에 일정 선 이상으로 관여하지 않는 이유를 갖고 있었다.

그는 BBC 인터뷰에서 "나는 현장에 처음 갔을 때부터 제작진에게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여기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며 "우리의 목적이 엔터테인먼트를 만드는 것임을 항상 인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을 하는 전문가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 7월 글래디에이터 2의 첫 번째 예고편이 공개되자, 역사학자들은 “로마인들에겐 신문이 없었다”, “로마인들은 카페에서 만나지 않았다”, “건축물이 잘못됐다” 등과 같은 다양한 지적을 쏟아냈다.

글래디에이터2는 루실라(코니 닐슨)와 막시무스(러셀 크로우)의 아들인 루시우스(폴 메스칼)가 어렸을 때 로마를 떠나야만 했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루시우스의 아버지가 죽은 지 20년 후, 로마 군인들이 누미디아를 침공해 루시우스의 아내를 죽이고 그를 노예로 잡아간다. 끌려간 루시우스는 마크리누스(덴젤 워싱턴)에게 팔려가 검투사가 되고, 콜로세움 안에서 동물과 전함, 다른 검투사들과 맞서 생존을 위한 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크리누스는 젊은 황제 카라칼라(프레드 헤칭어)와 게타(조셉 퀸)를 전복하고 로마의 지배자가 되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

마리오티는 영화가 역사적 정확성을 엄밀히 지키려 했다면, 콜로세움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콜로세움의 원래 이름은 이 건물이 지어질 당시 이 지역을 통치했던 왕조의 이름을 딴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이었다.

사람들이 이 건물을 콜로세움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수 세기 후인 서기 1000년쯤부터였다. 마리오티가 이러한 오류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글래디에이터2 같은 영화가 관객과 관광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마리오티는 "역사 학계는 영화 산업에 대한 우월감이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20년 동안 글래디에이터가 정말 당황스러울 정도로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는 콜로세움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죠. 그런데 개봉 이듬해부터 콜로세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글래디에이터2에는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일부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루시우스는 체포된 직후 개코원숭이 무리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콜로세움에 도착한 루시우스는 동료 검투사들과 함께 돌진하는 코뿔소에 맞서게 된다. 개코원숭이와 코뿔소가 콜로세움으로 끌려가 로마인들에게 전시됐다는 것은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다.

다만 검투사의 전투 상대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동물들은 검투사 대신 사자와 표범, 코끼리와 싸웠을 것이다. 서기 80년 콜로세움 개장 당시 코뿔소가 황소, 곰, 버팔로, 사자, 들소와 싸웠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로마 공화국의 몰락'이라는 저서를 쓴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샌프란시스코 로스쿨 교수인 폴 벨로닉은 "로마인들은 제국 전역에서 특이한 동물들을 데려와 서로 싸우게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록에는 로마 군인이 기수처럼 코뿔소를 타고 다녔다는 내용은 남아 있지 않다.

벨로닉은 타이투스 황제가 콜로세움 개장을 기념하기 위해 100일 동안 경기를 열었을 때 단 며칠새 약 1만 마리의 동물이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동물들은 온갖 창의적인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창을 던지기도 하고 그물을 던지기도 했죠. 궁수들이 특히 인기가 많았습니다. 마치 명사수를 보는 것 같았죠. 작은 사슴들이 뛰어다니고 궁수가 특정 지점에 서 있다가 사슴을 쓰러뜨리면,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때때로 참석자들은 특정 동물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로마의 역사가 디오는 코끼리 한 무리가 죽자 군중이 매우 슬퍼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코끼리가 “부상을 입고 싸움을 멈춘 후 천천히 기어가는 모습에 사람들은 동정심을 느꼈다”고 썼다.

정확성보다는 오락성

글래디에이터2의 가장 큰 액션 장면은 역사적 사실에서 가장 심하게 벗어난 장면이다. 스콧은 루시우스와 다른 검투사 몇 명이 모의 해전에 참가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영화의 촬영 세트를 최대한 과장한 듯 보인다.

실제로 로마에서는 황제가 전임자를 능가하고 싶으면 당시에는 ‘나우마키아’로 알려진 모의 해전을 개최했다고 한다. 원형 경기장에 물을 채우고 배를 띄운 다음, 전사들이 역사적 사건을 재현했다는 것이다.

미시간 대학에서 그리스 로마사를 가르치는 데이비드 포터는 “(나우마키아는) 보통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해전을 재구성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함에 탄 이들은 대부분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들이었을 것입니다.”

글래디에이터2에서는 배가 전속력으로 움직이고 상어가 들어갈 만큼 물이 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로마의 원형 극장은 물을 그렇게 많이 채우지 않았다.

여기에 활용되는 배 역시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바닥이 평평했기 때문에 서로 충돌할 만큼 속도를 낼 수도 없었다. 게다가 마지막 실제 나우마키아는 영화 속에 나오는 사건보다 100년 이상 앞선 서기 89년 콜로세움에서 일어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장에 물이 많지 않다는 것은 사람들이 물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상어 또한 없었다는 뜻이다.

일부 역사가들은 로마가 사냥한 동물 중에 악어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지만, 이러한 역사가들도 모의 해전에 악어가 동원됐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말한다.

로마가 모의 해전을 벌였다고 볼 만한 역사적 기록은 남아 있지만, 그 해전이 어디서 어떻게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벨로닉은 콜로세움보다 훨씬 낮고 티베르 강에 가까운 ‘서커스 막시무스’에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물을 채우기가 더 쉬웠을 것입니다. 게다가 경기장 자체도 그릇 모양이죠. 반면 콜로세움에는 지하 터널이 많아요. 그 터널을 어떻게 막았을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콜로세움 전체가 아니라 중앙 부분에만 물을 채웠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마리오티는 콜로세움이 인공 호수 위에 지어졌기 때문에 물을 채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마인은 강에서 물을 끌어올리고 다시 물을 뺄 수 있는 놀라운 배수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글래디에이터 속편의 검투사 시합 묘사 대부분도 역사적 사실과 차이가 있다. 포터는 검투사 영화나 다른 로마 서사시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검투사의 시합은 잔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선 검투사가 모두 노예나 전쟁 포로는 아니었다.

포터는 “검투사의 40%는 돈을 벌기 위해 검투사가 된 자유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벨로닉은 이러한 시합이 죽음을 건 싸움이라기보다는, WWE나 UFC와 비슷했을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경우, 첫 번째 출혈이 발생하거나 누군가 항복하는 순간에 끝이 납니다. 10번 중 9번은 아무도 죽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온 적도 있습니다." 심지어 심판이 개입하여 사람들을 떼어놓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검투사 시합을 잔인하지 않게 진행했다고 하더라고, 시민들이 이를 놓고 도박을 하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포터는 로마인들은 무엇이든 도박 소재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누군가 부상을 당하면 저명한 의사들이 나와서 치료를 해주곤 했다.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였던 갈렌도 검투사를 치료하는 의사로 경력을 시작했다고 한다. 검투사 시합의 궁극적인 목표는 서로 다른 스타일의 전투가 서로 맞붙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포터는 “그물과 삼지창을 든 사람과 방패와 검을 든 사람이 맞붙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벼운 갑옷을 입은 사람과 중갑옷을 입은 사람이 맞붙는 거죠.”

콜로세움 경기에 대한 접근 방식과 마찬가지로, 글래디에이터2에 등장하는 몇몇 캐릭터는 실존 인물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허구다. 서기 211년, 카라칼라와 게타는 로마의 공동 통치자가 되었다. 게타는 카라칼라에게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게타는 어머니의 품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후 카라칼라는 포터가 “사악하고 불쾌한 사람”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인기 없는 황제가 됐다. 카라칼라는 서기 216년 파르티아 제국과 전쟁을 하기 위해 도시를 떠났고, 서기 217년 자신의 부하에게 살해당했다.

마크리누스는 피를 부르는 싸움을 위해 병사를 모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카라칼라가 죽은 지 3일 후인 217년 4월 11일 로마의 황제가 되었다.

포터는 “그는 로마 원로원의 의원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 중에 황제가 된 최초의 인물”이라고 말했다. 마크리누스 자신은 1년여 뒤인 218년 6월에 처형을 당했다.

카라칼라의 숙모가 반란을 일으켜 열네 살짜리 손자 엘라가발루스를 새 황제로 즉위시켰다. 포터는 “(로마의) 황제는 가장 위험한 직업”이라며, 이후 100년 동안 황제가 된 사람은 모두 재위 기간이 짧았다고 말했다.

글래디에이터3의 시나리오 작업은 이미 진행중이다. 관객들은 다시 한 번 스콧이 실화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면서도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가미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마리오티는 이러한 작업이 예로부터 예술가들이 해온 일과 비슷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다. “리들리가 하는 일은 셰익스피어나 미켈란젤로가 했던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리들리가 첫 번째 영화를 만드는 데 영감을 준 장 레옹 제롬의 그림 ‘폴리체 베르소’도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활용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에 끌리는 것은 이 때문이죠. 본질적으로 역사는 우리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오티는 글래디에이터2와 같은 영화가 관객을 선조들과 이어준다고 믿는다. 특히 콜로세움 장면 등이 그렇다. 오늘날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이유로 로마인들은 콜로세움 행사에 참석했다.

"그곳은 과거 로마인들의 영화관이었습니다. 그들이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콜로세움이었죠. 그곳에서 사람들은 몇 시간 동안이나마 용감한 사냥꾼이나 검투사가 되고,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글래디에이터2를 시청할 때 일어나는 일도 바로 이것입니다. 콜로세움이 지어진 목적과 똑같은 목적을 영화가 이루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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