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폴리 아 되'의 막대한 제작비가 재앙을 불러온 이유
2019년 개봉한 영화 ‘조커’의 속편으로 제작된 영화 ‘조커: 폴리 아 되’가 최근 부진한 박스오피스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더욱더 심각한 문제는 원작의 3배 이상으로 추정되는 천문학적인 제작비다.
이번 영화도 당시에는 꽤 그럴듯한 아이디어로 여겨지며 제작된 속편 중 하나다.
2019년,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는 배트맨의 영원한 적인 조커의 이야기를 우중충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심리극으로 전개하며 슈퍼히어로 영화의 규칙을 새로 썼다.
‘조커’는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기에, 주인공 조커(아서 플렉) 역할을 맡아 아카데미상도 받은 배우 호아킨 피닉스와 필립스 감독이 또 한 번 손을 잡고 속편 제작에 돌입하는 건 매우 당연해 보였다.
게다가 ‘할리 퀸’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리 퀸젤 역을 레이디 가가가 맡아 뮤지컬 영화로 제작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그리 나쁜 아이디어 같아 보이지 않았다. 또 한 번 필립스 감독이 DC 코믹스 캐릭터를 예상치 못한 장르로 끌어들이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조커: 폴리 아 되’는 미국 개봉 첫 주 주말 3780만달러(약 509억원)을 벌어들였는데, 이는 원작 ‘조커’ 영화가 같은 기간 벌어들인 수익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가격이다.
‘데드라인’사의 앤서니 달레산드로 박스오피스 에디터는 “만화책을 원작으로 한 주요 프랜차이즈 영화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을 기록한 속편 오프닝 중 하나”라면서 지난해 마블의 실패작인 ‘더 마블스’보다 현재까지 더 성적이 좋지 못하다는 혹독한 비교를 덧붙였다.
그러나 개봉을 앞두고 지난달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조커 폴리 아 되’가 처음 공개됐을 때 이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이러한 저조한 성적표에 그리 놀라지 않을 것이다.
필립스 감독을 필두로 한 영화 제작팀이 영화 ‘조커’의 팬들을 실망시키는 걸 넘어 심지어 조롱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커: 폴리 아 되’는 아서 플렉이 고담시의 권력자들을 피비린내 나는 칼날로 베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그는 망상에 빠진 사람들만이 동경할 수 있는 한심한 껍데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필립스 감독은 이러한 주장을 세상에서 가장 제멋대로이고 편협한 방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대부분 속편 영화는 전편의 이야기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거나, 약간 변형해 전개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번 조커 속편은 무려 2시간이 넘는 시간을 원작 이야기 회상에 할애하고 있다.
아캄 수용소의 치료사 혹은 면담인, 고담시 법정에 선 변호사와 증인이 원작 영화에서 아서 플렉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반복해서 끊임없이 나온다.
이러한 논쟁이 잡지 기사나 속편 만화에서 다뤄졌거나, 혹은 술집에서 다른 팬들과 나누는 대화 주제라면 흥미로웠을 수도 있지만, 2억달러(약 2697억원)짜리 블록버스터의 소재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 자그마치 2억달러다.
여러 매체에 따르면 ‘조커: 폴리 아 되’의 제작비는 1억9000만~2억 달러 사이로, ‘조커’의 제작비가 6500만 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해진 규모다.
그리고 이 엄청난 제작비야말로 이번 영화의 개봉 첫 주 주말 성적이 그토록 재앙적인 진정한 이유다. 만약 제작비가 원작과 비슷했다면, 아니 2배 정도의 규모였다면 이번 박스오피스 성적이 이토록 보잘것없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3배나 많이 썼다면? ‘조커: 폴리 아 되’는 그야말로 어리석은 판단력 부족이었던 셈이다.
치솟는 할리우드 영화 제작비
사실 이 금액도 최근 할리우드 영화의 제작비 추세에 비하면 미친 규모는 아니다.
지난해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3억4000만달러),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3억달러), ‘미션 임파서블 7’(2억9000만달러), ‘플래시’(2억2200만달러) 등 천문학적인 제작비 규모를 기록한 대형 영화를 소개한 바 있다.
게다가 마케팅 비용까지 썼을 테니, 손익분기점을 맞추려면 이 영화들은 모두 엄청난 흥행 기록을 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소개한 영화 중 그 어느 것도 상당한 수익을 내지 못했으며, 지난해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과 ‘더 플래시’의 경우 오히려 상당한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해당 기사에서는 이러한 손실에 대해 시각 효과, 특히 영화사가 정해놓은 개봉 일정에 맞춰 빠른 속도로 완성해야 했던 시각 효과에 들어간 엄청난 비용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이 영화들 모두 진정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보였다. 화려한 스타 출연진,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진행된 촬영, 정교한 스턴트 및 시각 효과가 어우러지며 그야말로 “화면에서 돈이 느껴진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화려함이 연출됐다.
그러나 필립스 감독의 이번 ‘조커: 폴리 아 되’, 즉 이 우중충한 소규모 법정 드라마에서는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사실 할리우드에서 이렇게 충격적으로 스크린에서 돈이 느껴지지 않는 영화를 찾기도 쉽지 않다.
우선 ‘조커: 폴리 아 되’에는 대규모 액션 세트장도 없다. 입이 떡 벌어지는 효과도 없다. 피닉스와 가가가 무료 출연한 건 아니지만, 이들이 초대형 영화 스타인 것도 아니다. 노래와 댄스 넘버가 있기는 하지만, 옛 뮤지컬이나 TV 스페셜에서도 봐온 형식이기에 특별히 화려하지는 않다.
이 영화의 각본을 읽는 것보다 이 막대한 제작비를 대체 어디에 썼는지에 대한 자세한 분석 보고서가 더 흥미로울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기묘하지만, 이 영화가 할리우드의 비용으로 구현한 포스트모던적 농담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영화 ‘조커’에서 아서 플렉은 고담시의 권력자, 부자들을 공격하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거들먹거림을 비판한 바 있다. 그리고 막대한 제작비를 들였지만 저조한 성과를 낸 이번 영화는 이 동일한 목표를 이뤄냈다.
‘조커:폴리 아 되’는 영화사의 막대한 현금을 태워버렸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히스 레저 분)가 100달러 지폐에 불을 지르는 장면이 연상되는 부분이다.
필립스 감독이 그 수백만 달러를 가치 있는 일에 사용했다면 더 숭고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올해 3월, 코드 제퍼슨 감독·각본가가 ‘아메리칸 픽션’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하며 남긴 발언이 생각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조커: 폴리 아 되’를 향한 선견지명 있는 비판처럼 느껴진다.
제퍼슨은 “영화라는 게 위험을 회피하려는 업계임을 알지만, 2억달러짜리 영화 또한 위험하긴 마찬가지”라면서 “항상 잘 되는 것은 아니며, 어쨌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2억달러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대신 2000만달러 짜리 영화 10편이나 400만달러 짜리 영화 50편을 만들어 보라”고 권했다.
그때는 영화사 경영진의 귀에 제퍼슨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