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역사 굴곡 겪었던 세대부터 MZ까지 이들이 보는 2024년 계엄령
3일 밤 급작스러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한국 시민들은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늦은 밤 뉴스를 보다 놀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과거 계엄령을 겪었던 세대에게는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4일 오전, 서울역에서 만난 80세 박상남 씨는 "유혈이든 무혈이든 민주주의 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우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난밤 뉴스를 접하고 새벽 4시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고 했다.
베트남 참전용사이기도 한 박 씨는 대한민국 역사상 모든 계엄령을 보고 자란 세대다.
"그 땐 총칼 앞에서는 맥을 못 맞췄죠. 사람이 무지하게 죽고 희생이 얼마나 컸는데… 그때 기억을 자꾸 떠올리게 됩니다."
다른 참전용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박 씨는 이번 계엄령에 대해서 "어제 같은 경우는 상당히 놀랐다"면서도 "우린 한국 전쟁도 겪었고 월남전에서도 경험들이 많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덤덤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 몇몇이 짜고 (여당) 당 대표도 모르고 이렇게 했기 때문에 전적으로 잘못된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절차를 안 지킨 거예요. 민주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서울에서 택시 기사를 하고 있는 남성 안채순(70) 씨는 30대 시절,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직전의 마지막 비상 계엄령 선포(1979년)와 이후 이어졌던 5.18 광주 사태(1980년)를 떠올렸다.
광주 출신인 그는 당시 데모와 시위로 가득했던 때를 언급하며 "어떻게 민주주의를 이렇게 만들어놨는데 하루아침에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계엄령을 선포해서 이렇게 국민으로 혼란을 내면 되겠어요?"라고 반문했다.
안 씨는 광주 사태 당시 너무나도 조용했던 서울을 언급하며 계엄령의 결과로 언론이 통제됐던 때를 언급했다.
"언론을 장악하고 방송을 다 막아버렸어요. 그때 고향 가족들에서는 전쟁터라고 전화가 오고 그랬었어요. 그런데 서울에선 유언비어라고 그러니 다 안 믿었잖아요?"
안 씨는 "아무리 (야당에서) 탄핵을 한다 그래도 그걸 수습해 보려고 해야지 자기 마음대로 계엄령 선포를 해서…. 그래도 그냥 3시간 만에 끝났으니 다행이지 인명 피해가 나왔으면 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을 것"이라고 했다.
"무서워요, 무서워"
이름을 밝히기 어렵다는 한 58세 여성의 경우 "너무 어릴 때라서 과거 계엄령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은 없지만, 어제는 진짜 상상도 못 한 그런 충격을 받았다"면서 "새벽 3시까지 이불 뒤집어쓰고 TV 뉴스만 봐서 지금 눈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가짜 뉴스인 줄 알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계엄령에 '가짜 뉴스'인 줄 알았다는 반응도 있었다.
부산행 기차를 기다리고 59세 전 모 씨도 처음엔 잘못된 소식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청년시절 민주화 시대를 지낸 386 세대다.
"황당했죠, 가짜뉴스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죠. 북한에서 전투기 날라오고 그래야 계엄 성공하는 것 아닙니까? 평온하게 있는데 계엄 선포하니까 이상하죠."
전 씨는 "제 상식선에선 국가 계엄령은 국가 비상사태, 전시에 준하는 상황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사태가 없었다"며 "이해가 안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거 계엄령을 직접 겪지 않았던 세대들도 혼란스럽다는 반응이었다.
42세 여성 이한의(가명) 씨는 "오래전에 있었던 우리나라에 있었던 그런 일들이 떠오르면서 이게 지금 일어났었다는 것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소식을 접하면서) 앞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것인지 앞으로 어떤 면에서 제약을 받게 되는 건 아닌지 생각했고, 민주국가에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런 일을 겪는 게 좀 의아했습니다."
이 씨는 주변 또래 친구들의 반응에 대해선 "워낙 정치적으로 어지러운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게 맞는 것 같고 많은 친구가 좀 혼란스러워한다"고 했다.
'전역 전날 소식 듣고 한숨도 못잤다'
MZ 세대들에게도 이번 계엄령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날 군대에서 전역한 22세 김민우 씨는 지난밤 불안감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그는 전역 후 집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 씨는 "어제 행정반에서 대화하는 소리로 이 소식을 알게 됐는데, (장병 사이에서) 분위기가 정말 흉흉했다"며 당시 군대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처음 '계엄령'이라는 단어만 들었을 때는 큰일이 난 것이라 북한이 공격을 한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며 "전역을 혹시 오늘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제 심장이 막 뛰니까 불안해지고 그래서 자고 싶은데도 눈이 감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생 민정서(19) 씨는 소식을 접할 당시 밖에 있다가 급하게 귀가했다.
그때 그는 '11시에 불시 검문이 있을 것'이라는 찌라시를 받았다고 했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온라인에서는 장갑차 합성 사진과 야간 통행금지 속보 등의 가짜 뉴스와 합성사진이 퍼지면서 들썩였었다.
민 씨는 "불시 검문 체포 있을 거란 소식을 듣고 우선 집에 온 후 4시 정도에 왔다"며 "무섭기도 했는데 뉴스 보고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모이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긴장이 풀린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지나갈지, 어떤 영향을 끼칠지 지켜봐야겠지만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전했다.
민 씨의 친구 이승현 씨 역시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런 일을 살면서 경험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해서 '이게 맞나 싶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일이 심각해지고 책임지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면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3일 밤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라며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나, 6시간 만에 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이번 계엄령 선포는 지난 1987년 민주화 이후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