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하마스 공격' 1년...이후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나
바셰바는 남편의 생사도 모르고, 10대 소년 압둘라는 부모를 잃었으며, 크리스티나와 압둘라흐만은 이제 그저 다시 걸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BBC는 2023년 10월 7일 공격 이후 이스라엘, 가자 지구, 레바논, 서안 지구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들어봤다.
‘하마스’ 대원들이 이스라엘을 습격해 약 1200명을 살해하고 251명을 인질로 잡아간 지 딱 1년이 됐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서 대규모 공습 및 지상전을 전개하고 있다. 하마스 측 보건부에 따르면 이에 따라 지금까지 4만1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남편의 생사를 모른다는 게 가장 힘듭니다’
지난해 10월 6일, 오하드 야할로미와 10살 난 딸 야엘은 근처 들판에 동물을 찾아 나섰다. 야엘보다 2살 많은 오빠 에이탄은 친구들과 축구하고 있었다.
오하드의 아내 바셰바 야할로미는 집에서 아직 2살도 안 된 막내딸을 돌보고 있었다.
이스라엘 남부 키부츠(집단농장) ‘니르 오즈’의 전형적인 가정의 모습이었다. 이곳은 가자 지구와의 경계선에서 약 1.6km 정도 떨어진 마을로, 주민 수는 400명을 넘지 않는다.
바셰바(45)는 “우리 그곳에서의 삶을 사랑했고, 우리는 순진했다. 우리에겐 천국과도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야할로미 가족은 로켓포와 사이렌 소리에 잠에서 깼다. 가자 지구의 무장 단체들이 벌인 공격이 임박했다는 익숙한 경고였다.
그러나 사이렌이 울리고 고작 몇 분 뒤, 단순한 로켓포 공격이 아님이 밝혀졌다. 집 밖에서 고함소리와 함께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가장 위대하시다’는 아랍어)’라는 외침과 총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공포에 휩싸인 야할로미 가족은 세이프룸(집 안에 지어 놓은 안전실)에 모여 몇 시간 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괴한들이 집을 둘러싸고 계속 침입하고자 시도하는 상황에서 오하드는 가족들이 괴한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는 세이프룸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셰바는 “남편은 몇분마다 우리에게 사랑한다고 했다”면서 친구에게는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회상했다.
AK-47 소총과 수류탄 조끼로 무장한 괴한들은 결국 집 안으로 들어와 오하드를 총으로 쏜 뒤 세이프룸으로 들어왔다.
바셰바에 따르면 “그들은 우리에게 소총을 겨누더니 영어로 ‘가자 지구로 가자’고 했다”고 한다.
“전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셰바와 딸들은 한 오토바이에, 아들 에이탄은 마찬가지로 붙잡혀 온 어느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다른 오토바이에 태워져 가자 지구로 끌려갔다.
바셰바와 딸들은 오토바이가 움직이지 못할 때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으나, 에이탄과 오하드는 그대로 끌려갔다.
이후 에이탄은 52일간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의 포로로 지냈다. 바셰바는 하마스가 아들이 10월 7일 상황을 담은 영상을 강제로 시청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아들은 그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아이들과 여성들을 매우 잔인하게 죽이는지 봐야만 했다”는 설명이다.
그해 11월, 에이탄은 이번 분쟁 중 유일하게 타결된 인질 석방 협상으로 풀려났다.
팔레스타인의 무장 단체들은 올해 1월, 오하드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화면 속 오하드는 다쳤지만 살아 있었다.
그러나 이후 하마스 측 주장에 따르면 오하드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이스라엘 군부는 바셰바에게 이러한 주장의 진위를 확인해줄 수도, 오하드의 상황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알려줄 수도 없다고 했다.
야할로미 가족이 살던 ‘니르 오즈’는 10월 7일 공격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 중 하나다. 주민 수십 명이 숨지거나 납치돼 끌려갔다. 이곳은 여전히 버려진 상태로, 불에 탄 가옥만이 남아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보여준다.
바셰바는 자녀들이 거의 1년간 계속 악몽을 꾸고 자신과 같은 침대에서만 잠이 든다고 했다. 아이들은 계속 언제 아빠가 돌아오는지 묻는다. 인질로 끌려갔던 에이탄은 계속 머리가 빠지고 있다.
“남편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그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듭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 나갈 수 없습니다.”
‘차라리 제가 그날 순교했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때 압둘라는 13살 생일을 곧 앞두고 있었다. 가자 지구 북부 알-타왐 지역에 사는 이 소년의 삶은 이날 전까지만 해도 학교, 친구들과의 축구, 해변으로의 여행, 부모형제와의 즐거운 시간 등이 전부였다.
그러다 그의 생일 전날 주민들에게 남쪽으로 대피하라는 내용의 전단이 하늘에 흩뿌려졌다.
압둘라의 가족은 재빨리 생필품을 챙겨 이스라엘 군이 안전한 대피로로 지정한 살라 알-딘 도로를 따라 향했다. 그러나 도로를 따라 서둘러 속도를 높이던 도중 이스라엘이 쏜 미사일이 가족이 탄 차를 덮쳤다고 한다.
압둘라는 “이에 나와 형 아흐마드는 차 밖으로 튕겨 나갔다”고 회상했다.
당시 아흐마드는 16살이었다. 아흐마드는 한쪽 다리는 절단하고, 다른 다리는 금속판으로 고정해야만 하는 부상을 입었다.
압둘라의 상황도 심각했다. 파편이 소년의 팔, 머리, 등, 입을 할퀴고 지나갔다. 압둘라가 옷을 들어 올리자, 복부에 난 두 긴 흉터가 눈에 띄었다.
그의 친척들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압둘라의 어머니, 아버지, 삼촌은 이후 불에 탄 채 조각 난 모습으로 발견됐다고 했다.
압둘라를 포함해 여러 목격자들은 BBC에 해당 미사일이 드론에서 발사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같은 주장을 부인하며 그날 민간인들을 공격했다는 주장을 “날조”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군 대변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철저한 조사 결과, 이스라엘방위군(IDF)이 해당 지역에서 미사일을 날렸다는 증거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압둘라는 자신이 계속 부모님의 상태를 물어도 병원 의료진이 계속 답을 피했다고 했다. 결국 할머니가 다가와 부모님의 소식을 알렸고, 소년은 이미 마음속으로 짐작하고 있던 일을 받아들이게 됐다.
압둘라는 “(부모님이 사망했다고) 계속 느끼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내가 그날 순교했다면 지금 내게 일어난 일보단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압둘라는 깊게 파인 상처가 선명한 왼쪽 팔을 내려다보며 “마치 팔이 절단된 것 같다. 병원에서 이를 고치려고 했지만 모두 소용없었다”고 했다.
압둘라는 지금도 이어지는 고통에 시달린다.
현재 압둘라는 가자 지구의 칸 유니스에서 할머니, 누나 민나(18), 여동생 할라(11)와 함께 살고 있다. 남매의 부모님이 숨진 날, 민나와 할라는 차량에 자리가 부족해 가자 지구 북부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형 아흐마드는 지속적인 치료를 위해 카타르에 머물고 있다.
압둘라는 “어머니, 아버지, 삼촌을 잃은 지금, 웃음과 즐거웠던 시간은 다 사라졌다”면서 “그분들은 우리 온 가족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였다”고 덧붙였다.
“그분들 없는 삶은 사는 게 아닙니다.”
압둘라는 “우리는 학교에도 가고, 놀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면서 “가자 지구는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이제 모든 게 사라졌다”고 했다.
친구들도 일부는 연락이 끊겼으며, 전쟁 중 사망한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당신들이 내게 한 짓입니다. 내 부모님을 앗아갔습니다. 내 교육을 앗아갔습니다. 내게서 모든 걸 앗아갔습니다.”
‘한쪽 다리만 잃어 이상하지만 그래도 안심이 됐습니다’
“예전에는 나를 사진기자로 소개했었다”는 크리스티나 아시는 “지금은 전쟁범죄 생존자라고 말한다”며 말을 꺼냈다.
레바논 출신으로, 세계적인 언론사 ‘AFP’의 사진기자인 크리스티나는 남부 국경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취재하겠다며 망설이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10월 7일 공격 이후 레바논의 무장 단체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하기 시작하면서 국경 지역에서는 교전이 벌어졌고, 이는 현재 대규모 분쟁으로 확대된 상태다.
지난해 10월 13일, 크리스티나를 비롯한 언론인들은 이스라엘과의 국경에서 약 1km 떨어진 레바논 남부의 한 지역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28세였던 크리스티나는 언론인임을 나타내는 조끼와 헬멧을 차고 있었으며, 이들이 탄 차량의 보닛에도 노란색 테이프로 ‘TV’라고 붙여놨었기에 자신과 일행들이 안전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총성이 들렸다. 그리고 크리스티나가 기억하는 장면은 불에 타고 있는 차 옆에서 탈출하려 애쓰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무거운 방탄조끼와 카메라에 눌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크리스티나는 “다리에 피가 심하게 나고 있었다. 일어설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크리스티나는 꼬박 12일 만에 병원에서 정신을 차렸다.
“두 다리가 아니라 한쪽 다리만 잃었다는 게 이상하게도 안심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공격으로 로이터 통신 소속 기자 이삼 압달라(37)는 목숨을 잃었으며, 다른 언론인 6명도 부상당했다.
크리스티나는 “간호사가 내게 압달라의 사망 소식에 대해 알려줬을 때 정신없이 온라인에서 그의 기사를 찾았다.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레바논 유엔 임시주둔군(UNIFIL)의 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언론인이라는 신원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는” 이들을 향해 120mm 포탄 2발을 발사했다고 한다. 이는 국제법 위반이다. 인권 단체들은 해당 사건을 전쟁범죄로 조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IDF 측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국 군인들은 당시 이스라엘 영토로의 “테러리스트 침입”을 의심했으며, 탱크와 포탄을 사용해 이를 막으려고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사건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사건 1년이 지난 지금, 크리스티나는 여전히 새로운 현실에서 살아가고자 애쓰고 있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분노와 좌절감을 느낀다는 그는 “모든 것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국제 사회도, 내가 한때 언론인인 나를 지켜주리라 믿었던 법도 이젠 믿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크리스티나는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으며, 아직도 걸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올해 7월에는 부상당하거나 사망한 전 세계 언론인들을 기리고자 AFP의 동료들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섰다.
1년 전 일어난 사건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티나는 여전히 현장으로 돌아가길 꿈꾼다.
크리스티나는 “제가 다시 일어서고, 걷고, 카메라를 들 수 있을 때, 제 일과 제가 사랑하는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날, 그때 비로소 난 진정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소리를 질러도 친구는 반응이 없었습니다’
저녁 무렵이었다. 하루 종일 옥수수를 팔았던 압둘라흐만 알 아쉬카르는 친구인 레이스 샤와네와 함께 담배를 피우며 길을 걷고 있었다.
현재 18세가 된 압둘라흐만은 9월 1일 저녁 “갑자기 폭탄이 터졌다”고 회상했다.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서안 지구 소재 실랏 알-하리티야에 살던 10대 청소년인 압둘라흐만과 레이스의 머리 위로 이스라엘의 미사일이 날아든 것이다.
압둘라흐만은 로켓포 소리를 들었지만, 대응할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겨우 한발짝 정도 걸을 수 있었다”는 그는 “레이스를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고 했다.
당시 16세였던 레이스는 이날 목숨을 잃었고, 압둘라흐만은 무릎 아래로 두 다리를 절단해야할 만큼의 큰 부상을 입었다.
꼬박 10일 뒤 일어난 압둘라흐만은 병원에서 무려 3차례의 심정지를 겪었다는 말을 들었다.
압두라흐만은 여전히 병원에 있다. 부상 범위도 광범위하다. 한쪽 손에는 금속판이 박혀 있고, 손가락 2개는 심하게 다쳤으며, 여러 차례 복부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육체적 고통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서안 지구에서는 지난해 10월 7일 이후 폭력 사태가 급증하고 있다. 서안 지구와 이스라엘을 향한 치명적인 공격을 막는다며 이스라엘이 실시한 공습으로 인해 이곳에서는 팔레스타인인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공습 전 압둘라흐만의 일상은 단순했다. 아침 기도 후 친구들과 아침밥을 먹고, 아버지를 도와 심부름을 하고, 옥수수를 팔았다.
그러나 이제 압둘라흐만은 화장실을 가는 간단한 일상 생활에도 형제의 도움이 필요하다. 밥을 먹는 건 어머니에게 의지한다.
BBC는 IDF에게 의견을 요청했다. 공습 당시 IDF는 “항공기가 출격해 “테러리스트 단체가 제닌 지역에서 작전 중인 메나쉬 여단을 향해 폭발물을 던지는 모습을 목격한 직후 이들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했다”고 한다.
당시 무장을 하고 있었거나, 무기를 들고 있었냐는 질문에 압둘라흐만은 “어떻게 무장을 하고 있나? 난 막 집에서 나온 참이었다. 멀쩡하게 길을 걸어가고 있었고, 흰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그저 외출 중이었다”고 답했다.
원래 압둘라흐만은 운전면허를 취득해 자신만의 차를 갖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바라는 게 있다면 그저 다시 걷고 싶다”고 말했다.
보도: BBC 아랍어 서비스의 마이클 슈발, 하야 알 바다르네, 마날 칼릴, 에만 에리캇, 알라 다라그메
제작: 디마 알 바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