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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호우의 원인? 점점 더 파괴적으로 변하는 '하늘에서 흐르는 강'

2024.08.01
올해 2월 5일 미국 LA에서 발생한 홍수
Getty Images
과학자들은 대기천으로 인해 수억 명이 홍수의 위험에 노출된다고 말한다

최근 중국, 캐나다를 비롯해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하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기의 온도가 급격히 높아지며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물을 머금게 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4월, 이라크, 이란, 쿠웨이트, 요르단은 천둥과 우박을 동반한 폭풍 및 이례적인 강우량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기상학자들은 당시 이 지역의 대기가 머금고 있는 물의 양이 지난 2005년 비슷한 홍수가 발생했던 때보다 훨씬 더 많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리고 두 달 뒤, 남아메리카의 칠레에선 3일 만에 500mm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는데, 안데스산맥의 일부 눈이 녹아내릴 정도였다. 칠레에선 해당 홍수로 인해 여러 도로와 다리는 물론, 수도 시설도 피해를 봤다.

이로부터 1년 전에는 호주 일부 지역에서 정치인들이 ‘비 폭탄’이라 부를 정도로 엄청난 집중 호우가 발생해 2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대피해야 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홍수에 대해 ‘대기에 흐르는 강(대기천)’이 점점 더 강렬해지고, 길어지고, 때로는 종종 더 파괴적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대기천으로 인해 전 세계 수억 명이 홍수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한다.

‘하늘에서 흐르는 강’, ‘대기의 강’이라고도 부르는 대기천은 일반적으로 열대 상공에서 비롯된 수증기가 가늘고 길게 고위도 지방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이다. 중위도 지역을 가로질러 고위도 지방으로 수송되는 수증기 가운데 90% 이상이 대기천을 통해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기의 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나타낸 그래프
BBC
‘대기의 강’이란?

대기천은 평균적으로 길이 약 2000km, 폭 500km, 깊이 약 3km 정도의 크기이지만, 오늘날 점점 더 길어지고 넓어지면서 길이 5000km짜리 대기천도 발견되곤 한다.

하지만 구름과 달리 육안으론 관측할 수 없다.

NASA의 ‘제트 추진 연구소’에서 대기를 연구하는 브라이언 칸은 “적외선과 마이크로파 주파수로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전 세계 수증기와 대기천 관측 시 위성 관측이 매우 유용하다”는 설명이다.

대규모 대기천은 북미에서 가장 긴 강인 미시시피강의 15배에 달하는 유속으로 수분을 이동시킨다.

평균적으로 대기천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인 아마존강에 비해 2배나 더 많은 물을 머금고 있다.

홍수로 물에 잠긴 길을 건너는 사람들
Getty Images
이라크 등 지난해 여러 중동 국가가 이례적인 집중 호우로 피해를 입었다

대기천은 언제나 존재했던 자연 현상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더 많은 수분이 증발해 수증기량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대기천이 더욱 응축돼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양의 물을 육지에 쏟아붓게 되고, 결국 치명적인 홍수와 산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연구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전 세계 대기 중 수증기량은 최대 20%까지 증가했으며, 상승하는 기온을 따라 계속 증가하고 있다.

독일 포츠담 대학교 ‘지구과학 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남아메리카의 열대 지방, 북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에서 특히 대기천이 더 오래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지상에 피해를 주는 집중 호우가 더 많이 발생할 수도 있다.

아랍에미리트 칼리파대학교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중동 전역에서 바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했다. “고해상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분석한 결과, 아프리카 북동부에서 이란 서부 쪽으로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강한 비를 뿌리는 대기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설명이다.

2023년 8월 23일 치레에서 구조대가 카누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Getty Images
2023년 8월 발생한 대규모 홍수로 인해 칠레의 수도 시설 등 인프라는 큰 피해를 입었다

산사태 및 갑작스러운 홍수 발생 가능성 증가

포츠담 대학교 연구에 참여한 사라 M. 발레조-베르날에 따르면 이 외 다른 지역에서도 대기천이 더 자주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동아시아의 경우 1940년대 이후 특히 대기천 발생 빈도가 크게 증가했으며, 마다가스카르, 호주, 일본에선 더욱 심해졌다”는 설명이다.

2021년 ‘지구물리학 연구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장마 초기(3~4월) 중국 동부, 한국, 일본 서부에서 발생하는 폭우의 최대 80%가 대기천과 관련 있다고 한다.

한편 인도의 기상학자들 또한 인도양의 온난화로 인해 ‘하늘을 나는 강’이 만들어지면서 6월에서 9월 사이 인도 강수량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인도 열대 기상 연구소’의 대기 과학자인 록시 매튜 콜 박사는 “그 결과 따뜻한 바다가 머금은 모든 수분이 몇 시간에서 며칠 만에 대기천으로 응축해 비를 뿌리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인도 전역에서 산사태 및 갑작스러운 홍수 발생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큰 비에 서둘러 뛰어가는 인도 여성들의 모습
Getty Images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도의 날씨도 대기천의 영향이 미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홍수와 산사태가 대기천으로 인한 것은 아니다. 사이클론, 폭풍우 등 다른 요인도 존재한다.

한편 대기천은 점점 더 새로운 곳까지 도달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그 이유 중 하나로 기후 변화로 인한 바람의 패턴 변화와 제트 기류(지구를 둘러싸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좁고 강한 공기의 흐름)를 꼽았다.

칠레 발파라이소 대학의 기상학자인 데니즈 보즈쿠르트는 “제트 기류와 바람의 파형 증가로 인해 (수증기가) 점점 더 구불구불한 흐름으로 흐르게 되고, 점점 더 일반적인 경로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대기천이 흐르는 경로가 뒤얽히면서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허리케인과 마찬가지로 대기천은 치명적인 홍수와 산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에 따라 그 규모와 강도에 맞게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지만 모든 대기천이 반드시 피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며, 특히 응축도가 낮을 경우엔 더욱더 그렇다. 심지어 장기간 가뭄으로 고통받는 지역은 대기천의 상륙으로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대기천 관찰 및 예측 활동은 주로 미국 서부 해안만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고 말한다.

발파라이소 대학의 보즈쿠르트는 “(다른) 지역의 기상 예보에선 대기천에 대한 개념 인식이 부족하고, 이를 잘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특히 복잡한 지형에서의 대기천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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