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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채용할 마음 있을까? '유령 일자리' 넘쳐나는 구인 공고

2024.05.23
사무실의 빈자리
Getty Images

기업들이 실제로는 충원하지 않을 일자리에 대한 채용 공고를 올리고 있다.

노동 시장이 점점 더 경직되면서 일자리 찾기는 더욱더 쉽지 않다. 코로나19 이후 수많은 근로자가 퇴사한 ‘대 퇴사’ 시대 이후만 해도 수많은 일자리가 비게 되면서 근로자들은 공석인 자리를 선택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정리 해고 및 예산 삭감으로 인해 근로자들은 불리해졌고, 이러한 공석은 점점 더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구인 게시판을 보면 채용 중인 일자리는 여전히 존재, 혹은 적어도 존재하는 듯 보인다. ‘링크드인’, ‘인디드’와 같은 구인 게시판엔 계속해서 사람을 구한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으며, 지원자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그러나 우수한 자격을 갖춘 지원자들이 계속 유입되고 있음에도 이러한 디지털 플랫폼에서도 사람들이 주로 원하는 구인 공고문엔 어느덧 익숙해진 문구가 붙어있다.

“30일 이상 전에 게시된 글입니다.”

물론 게시된 지 오래됐을지라도 보통 구직자들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해당 직무를 채울 사람을 찾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실은 조금 더 복잡하다.

이러한 채용 공고 중엔 이미 채용이 완료됐어도 그저 삭제되지 않은 글도 있지만, 애초부터 채용할 계획이 없었던 공고도 있다.

이러한 ‘유령 일자리’는 점점 더 흔해지고 있으며, 구직자들에게 점점 더 큰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인재와 기업 노출

사실 유령 일자리는 오랫동안 고용 시장의 일부로 존재해 왔다. 일례로 취업 박람회에 참가한 기업들은 단순히 홍보 수단으로 부스를 설치하거나, 명확한 직무 없이 이력서를 대량으로 수집해가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사실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구직 및 채용 과정이 개선돼야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더욱더 악화하고 있다.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나 지원자가 계속 유입돼도 수많은 채용 공고가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미국의 인적자원 정보 회사 ‘레벨리오 랩스’는 지난해 실제 채용 공고 당 실제 채용 비율이 0.5 이하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원자들이 직원으로 선발되지 못한 경우가 전체 채용 공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컴퓨터 앞에서 고민 중인 여성의 모습
Getty Images

미국 뉴욕 소재 기업 대출 전문 업체 ‘클래리파이 캐피탈’이 채용 담당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채용 공고 10개 중 약 7개가 30일이 지나도록 공석으로 남아있었으며, 반년 넘게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은 공고도 10%나 됐다.

응답자의 절반은 “항상 새로운 인재에게 문을 열어 두고자” 무기한으로 채용 공고를 올려둔다고 설명했으며, 3분의 1 이상은 즉시 충원하기 위해서가 아닌, 기존 직원의 이직에 대비해 지원자 풀을 구축하고자, 채용 공고를 계속 유지한다고 밝혔다.

채용 공고는 그저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여 인재를 흡수하는 역할 그 이상이다.

이러한 채용 공고는 회사 안팎에서 기업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도 이용된다.

채용 담당자의 40% 이상이 기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자 적극적으로 충원하지 않아도 되는 직무에 대한 채용 공고를 올려둔다고 답했다.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자 채용 공고를 올린다는 이들도 40% 이상이었으며, 34%는 과로로 인해 추가 충원을 원하는 기존 직원들을 달래고자 올린다고 답했다.

지원자들의 이력서 작성을 돕는 미국 소재 기업 ‘레쥬메 지니어스’의 제프리 스콧 선임 콘텐츠 매니저는 “유령 일자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면서 “우린가 링크드인에서 발견한 미국 내 잠재적인 유령 일자리만 해도 170만 개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상황은 어떨까. 런던 소재 ‘스탠드아웃 CV’는 지난해 올라온 채용 공고의 3분의 1 이상이 유령 일자리라고 밝혔다. 게시된 지 30일 이상 게시된 공고를 뜻한다.

'엄청난 시간 낭비'

한편 전문가들은 유령 일자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모두 다 그런 건 아니라고 경고했다.

미국에서 커리어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아네트 가스텍은 “기업이 지금 당장 채용할 생각이 없는 공고를 올리는 게 흔한 관행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대신 채용에 쏟을 자원이 부족하거나, 지원자 수가 너무 많으면 채용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지 않을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채용 담당자들이 모든 지원자에게 일일이 연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령 일자리이든, 단순히 유령 일자리처럼 보이거나 느껴지는 것이든 결과는 결국 마찬가지다. 구직자들은 낙담한 채로 지치게 된다.

스콧 매니저는 “유령 일자리는 구직자에겐 엄청난 시간 낭비”라면서 “진지하게 임하는 지원자들은 해당 기업에 대해 조사하고,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이에 맞춰 고치고, 지금까지의 경력 사항을 나열하고, 신중하게 질문에 답한다. 그렇기에 단 한 곳에 지원하는 데만 해도 몇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채용 공고가 유령 일자리든 아니든 간에 여전히 채용 시장에선 지원자들은 여전히 가능한 한 이력서를 많이 내고 있다.

한편 유령 일자리가 너무 많아 전략을 바꿨다는 구직자도 있다.

미국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사만타는 벌써 3개월째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처음엔 범위를 넓혀 지원했으나, 대부분 연락이 없었기에 신중하게 골라서 지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프로필에 맞고 전체적으로 지원자가 별로 몰리지 않을 틈새 직무를 더 많이 공략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만타는 무엇이 올바른 방법인지 확신하진 못한다고 했다.

“총알을 뿌려 하나라도 맞길 바라야 하는지, 혹은 가만히 앉아 일주일에 1~2발씩 조준해 쏘는 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설명이다.

이렇듯 유령 일자리는 단기적으론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고, 인재풀을 구축할 기회가 되긴 하지만, 이러한 장점이 언제까지나 이어지는 건 아니다.

이러한 공고에 지원했다 연락받지 못한 잠재적인 직원이 해당 기업으로부터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면 향후 해당 기업의 공고엔 지원하기 꺼릴 수도 있다.

유령 일자리를 게시하는 기업은 언젠가 오히려 이 유령 채용에 당하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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