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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우릴 찾지 않습니다' … 아프간의 정신질환 시설에 발이 묶인 여성들

2025.08.22
아프간 여성의 옆모습
BBC
BBC는 환자 과밀로 고군분투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한 정신건강 시설을 찾았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서쪽 언덕 위,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철문 너머에는 현지 주민들이 좀처럼 입에 올리기를 꺼리고, 찾는 이조차 드문 시설이 있다.

바로 '아프가니스탄적신월사(ARCS)'가 운영하는 정신건강 시설의 여성 병동이다. 이곳은 아프간 내 정신질환을 앓는 여성 환자를 위한 몇 안 되는 시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주민들은 이곳을 '칼라(Qala)', 즉 '요새'라 부른다.

BBC는 현재 104명의 여성이 머물고 있는 이 시설을 단독으로 취재할 기회를 얻었다. 이곳 직원들은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가정폭력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마리암(가명) 같은 여성들도 있다.

2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마리암은 가족의 학대와 방임을 견디다 못해 거리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이후 9년째 해당 시설에서 머물고 있다고 했다.

마리암은 "내 남자 형제들은 내가 이웃집에 방문하기만 해도 구타했다"고 회상했다.

가족들은 어린 여성은 보호자 없이 혼자 외출해서는 안 된다는 문화적 믿음을 내세우며 혼자서는 단순한 외출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남자 제들은 마리암을 집에서 내쫓아 어린 나이에 거리에서 생활하도록 내몬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만난 한 여성이 마리암의 정신 건강을 걱정해 이곳 시설로 데려왔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사연에도 불구하고 마리암은 늘 환하게 미소 짓는다. 종종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그는 건물 주변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용된 몇 안 되는 환자 중 한 명으로, 자원해 청소를 도맡아 하기도 한다.

마리암은 언제든 퇴소할 준비가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밖으로 나가길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시설 출입문의 철장
BBC
'칼라'는 카불 최대의 정신건강 시설로, 현재 여성 환자 104명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나는 부모님 집으로 돌아갈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는 마리암은 "이곳 카불에 정착해 결혼하고 살고 싶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결국 다시 내쫓길 것"이라고 했다.

이렇듯 학대하던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기에 사실상 이 시설에 갇힌 셈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의 엄격한 규율과 뿌리 깊은 가부장적 전통으로 인해 여성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여성들은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남성 보호자가 있어야 생활할 수 있다. 여행을 가거나, 일을 하거나, 심지어 공공 서비스에 이용할 때조차 마찬가지이다. 경제적 기회 또한 대부분 차단돼 있다.

세대를 이어온 성차별, 제한된 교육, 부족한 고용 기회로 인해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남성 생계부양자에게 의존하게 되고, 이는 여성들의 생존이 남성 친족들에게 달린 현실을 더욱 고착화시키고 있다.

한편 이곳에서는 침대에 앉아 있는 하비바(28)도 만날 수 있었다.

그를 이곳에 보낸 이는 다름 아닌 남편이다. 남편은 다른 여성과 재혼하면서 아내를 집에서 내쫓고 싶어 했다.

마리암과 마찬가지로 하비바 역시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하지만, 돌아갈 곳이 없다. 남편은 그를 원하지 않고, 혼자가 된 친정어머니 역시 딸을 부양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하비바의 세 아들은 지금 친척 집에서 지내고 있다. 초반에는 가끔 찾아오기도 하였으나, 올해 들어서는 만나지 못했다. 하비바는 휴대전화조차 쓸 수 없어 아들들에게 연락할 수 없다.

하비바는 "다시 아이들과 살고 싶다"고 토로했다.

분홍색 히잡을 쓴 여성의 옆모습
BBC
마리암은 이 시설에서 9년째 살고 있다

이곳 여성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기구하다. BBC는 탈레반 정부 관리들의 엄격한 감시하에 직원 및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심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살리마 할리브는 "어떤 여성들은 35년, 혹은 40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고 있다"며 말을 꺼냈다.

"어떤 이들은 가족에게 완전히 버림받았습니다. 찾아오는 이가 전혀 없습니다. 결국 계속 이곳에서 지내다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겠죠."

오랜 분쟁은 수많은 아프가니스탄인들, 특히 여성들의 정신 건강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정신질환은 아프가니스탄 사회에서 여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영역으로, 환자들은 사회적 낙인에 시달린다.

최근 UN은 아프간 내 여성 인권 실태 악화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탈레반 정부의 함둘라 피트라트 대변인은 BBC에 자신들은 여성들에 대한 폭력을 허용하지 않으며 "여성의 권리를 보장해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지난해 UN 자료를 통해 탈레반의 여성 권리 억압 정책으로 인해 여성들의 정신 건강 위기가 더욱 악화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사에 참여한 여성의 68%가 자신의 정신 건강 상태가 '나쁘다', 혹은 '매우 나쁘다'고 답한 것이다.

한편 지난 4년간 환자가 급증하여 이제는 대기자 명단이 생길 정도이기에 시설 안팎에서는 서비스 제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찬가지로 ARCS가 운영하는 카불 내 근처 다른 병원에서 정신과의사로 일하는 압둘 왈리 우트만자이는 "아프간 사회에는 정신질환, 특히 우울증이 매우 흔하다"고 지적했다.

우트만자이는 하루에 최대 50명의 외래환자를 진료하는데, 대부분이 여성이라고 한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극심한 압박에 시달립니다. 생계를 부양해 줄 남성이 없는 이들이 많습니다. 제 환자의 80%가 가족 문제가 있는 젊은 여성들입니다."

탈레반 정부는 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지만, 남성 보호자 없이는 여성들의 이동 자체가 제한되기에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철문 위 철조망
BBC
이 정신 건강 시설은 외부와 격리된 지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철문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모든 이유로 인해 마리암과 하비바 같은 여성들은 이곳 시설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이들이 이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 다른 환자들을 위한 공간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 가족은 16살 난 딸 자이나브를 이곳에 입원시키고자 지난 1년간 노력했으나, 번번이 빈 병동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 현재 자이나브는 이곳의 최연소 환자가 되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자이나브는 집에 갇혀 지내야만 했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족쇄도 채웠다고 한다.

자이나브는 무슨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자기 생각을 언어화하는 데 어려워했다.

아버지인 페다 모하마드는 괴로움이 역력한 표정으로 최근 딸이 경찰에 의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했다.

자이나브는 며칠간 실종된 상태였는데, 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특히 위험한 상황이다. 여성은 남성 보호자 없이 먼 거리를 이동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모하마드는 "족쇄를 풀어주면 담을 타고 도망간다"고 토로했다.

자이나브는 때때로 눈물을 터뜨리며 건강 상태가 나빠지는데, 특히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볼 때 그렇다.

모하마드에 따르면 가족들이 자이나브가 8살 때부터 건강 상태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그러나 2022년 4월, 자이나브가 다니던 학교에 여러 차례 폭탄이 떨어진 이후 더욱 악화했다고 한다.

모하마드는 "폭발로 인해 자이나브는 벽으로 내던져졌다"면서 "우리는 부상자들을 옮기고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도왔다. 정말 끔찍했다"고 회상했다.

만약 이곳 시설에 계속 빈자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자이나브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모하마드는 딸이 계속해서 가출하려 한 것이 자신에게 수치라면서 딸이 시설에 머무는 것이 자이나브와 가족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라 주장했다.

과연 자이나브는 마리암과 하비바처럼 칼라의 버려진 여성 중 하나가 될까. 이는 두고 볼 일이다.

* 환자와 가족의 이름 모두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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