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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찢어집니다'...비극적인 미 항공 사고에 충격 빠진 피겨 스케이팅계

2025.02.01
스펜서 레인을 추모하고 있는 보스턴 스케이팅 클럽
Getty Images
스펜서 레인을 추모하고 있는 보스턴 스케이팅 클럽

보스턴 스케이팅 클럽에서는 한국계 꿈나무인 지나 한(13)과 16세의 스펜서 레인(16)의 성공을 당연히 점쳐왔었다.

이 클럽은 수많은 엘리트 스케이터들을 배출해 왔지만, 그중에서도 두 선수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그들은 피겨 스케이팅의 미래로 주목받고 있었습니다."

보스턴 스케이팅 클럽의 더그 제기브 대표는 두 선수가 매일 훈련했던 링크 옆에서 BBC에 이렇게 말했다.

"이처럼 촉망받던 인재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유망주를 넘어 이제 막 정상에 오르려던 시점이었고, 클럽뿐만 아니라 미국을 대표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재능은 지난 1월 미국 캔자스주 위치타에서 열린 미국 피겨 스케이팅 챔피언십 이후 진행된 하이퍼포먼스 캠프(국가대표 유망주를 대상으로 하는 훈련 프로그램)에 초대될 정도로 뛰어났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연기와 강렬한 표현력을 선보이는 이들의 영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지난 1월 31일(현지시간) 저녁, 캠프 일정을 마친 두 선수는 워싱턴 DC를 경유해 보스턴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메리칸 항공 소속의 지역 항공기에 탑승했다가 참변을 당했다.

해당 여객기는 공중에서 헬리콥터와 충돌한 후 포토맥 강으로 추락했고 탑승자 60명 전원이 사망했다.

이 사고로 인해 지나 한과 스펜서 레인뿐만 아니라, 두 선수의 어머니인 크리스틴 레인과 진 한, 그리고 클럽의 명망 높은 코치진 예브게니아 슈슈코바와 바딤 나우모프도 세상을 떠나게 됐다.

결국, 이번 사고의 희생자 중 6명은 보스턴 스케이팅 클럽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던 인물들이었다.

피겨 스케이팅에서 세계적인 반열에 오르려면 엄청난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선수들은 매일 빡빡한 훈련을 마치고 온라인으로 학업을 병행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코치들과 선수들 간의 유대감도 깊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고 소식이 전해진 후, 클럽하우스는 슬픔을 나누는 장소가 됐다.

보스턴 스케이팅 클럽 소속 알리사 에피모바와 미샤 미트로파노프 역시 며칠 전 위치타에서 열린 대회에 참여했고 미국 페어 부문 챔피언에 올랐다.

이들은 사고 하루 전, 먼저 보스턴으로 귀국했다.

에피모바는 "그들은 정말 밝은 존재였다"며 "보기만 해도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회상했다.

"아침마다 링크에 들어서면 항상 그들이 스케이트 끈을 묶고 있었어요. 밝은 얼굴로 '안녕' 하고 인사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미트로파노프도 스펜서를 떠올리며 말을 보탰다.

"스펜서는 정말 불꽃 같은 아이였어요.다른 선수들보다 늦게 스케이팅을 시작했지만, 타고난 재능 덕분에 빠르게 성장했죠."

훈련이 끝난 후, 두 선수는 항상 스케이트를 벗고 클럽 건물 2층으로 올라가 학업을 이어가곤 했다.

이제 클럽 입구에는 그들이 얼음 위에서 연기하던 모습이 담긴 사진들과 추모의 꽃들이 놓여 있다.

사진 속에서 지나 한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으며, 스펜서는 깊이 집중한 표정을 짓고 있다.

미트로파노프는 말을 잇지 못하며 조용히 말했다.

"이런 일은 예상조차 못하죠. 하지만 막상 닥치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알리사 예피모바와 미샤 미트로파노프가 존 서드워스 BBC 북미 특파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BBC
알리사 예피모바와 미샤 미트로파노프가 존 서드워스 BBC 북미 특파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코치진이었던 예브게니아 슈슈코바와 바딤 나우모프는 러시아 출신이다. 1994년 세계 피겨 페어 챔피언을 차지했던 전설적인 선수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올해 23세가 된 아들 막심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막심 또한 보스턴에서 훈련 중이며, 이번 위치타 대회 남자 싱글 부문에서 4위를 차지한 유망주였다.

보스턴 스케이팅 클럽은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영광과 비극을 함께 경험해 왔다.

특히, 이번 사고는 클럽이 과거 겪었던 또 다른 비극적인 항공 사고를 떠올리게 했다.

1961년, 미국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팀 선수 18명 중 10명이 프라하 세계선수권 대회로 향하던 도중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제기브 대표는 이번 사고 소식을 접한 순간, 1961년의 사고가 바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였다"고 했다.

"어떻게 같은 비극이 두 번이나 반복될 수 있을까요?"

보스턴 스케이팅 클럽의 더그 제기브 대표
Getty Images
더그 제기브 대표의 사고 다음 날 모습. 그는 이번 사고 소식을 접한 순간, 1961년의 사고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오는 3월, 보스턴 스케이팅 클럽은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를 주최한다.

이 대회는 클럽뿐만 아니라 피겨 스케이팅계 전체에 큰 책임이 따르는 행사다.

더그 제기브 대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단순히 클럽을 운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갑작스러운 슬픔을 마주해야 하니까요."

이번 대회는 사고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참사로 피겨 스케이팅계에서만 14명이 세상을 떠났다.

제기브는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감정적인 회복의 과정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피겨 스케이팅을 향한 긍정적인 목표가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덧붙였다.

"우리는 하루하루 나아갈 것입니다. 클럽의 선수들과 가족들을 최선을 다해 돕고 고민할 것입니다.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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