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자연 다큐멘터리 '아시아': 야생동물을 어떻게 촬영했을까?
BBC의 대표 자연 다큐멘터리 '아시아'를 촬영하기 위해 제작진은 광활한 해양에서 "세계의 지붕"까지 4년간 모험으로 가득 찬 여정을 걸었다.
얼어붙은 산에서 메마른 사막과 울창한 열대 우림, 광활한 대초원에 이르기까지 대륙 아시아는 지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륙이자 놀라운 환경이 펼쳐져 있는 곳이다.
BBC가 아시아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작년에서야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대륙의 그 방대함과 다양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시아에 있는 광활한 대자연과 혼잡한 대도시, 극도로 다양한 환경을 에피소드 몇 편으로 담기란 매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BBC 자연사 팀에서 만든 주요 시리즈 '아시아'는 제작에 4년이 소요된 다큐멘터리다.
이 프로그램의 프로듀서인 매튜 라이트는 "아시아에는 극도로 외진 곳이 많았고, 거의 알려지지 않았거나 출입이 금지된 곳도 많았다"며 "아시아 대륙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은 아프리카 및 아메리카 대륙에 비해 연구도 덜 되어 있어서, 사전 작업을 시작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단서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라이트는 "그래서 우리 팀은 과학 논문과 서적, 웹사이트, 소셜 미디어를 샅샅이 뒤지며 이야기를 찾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동료들과 환경 보호론자, 여행 가이드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방송 계획이 마련된 후, 우리는 2년간 작업에 돌입했고 촬영일만 2500일이 넘었습니다."
제작진은 태평양에서 화려한 깃대돔을 사냥하는 암초 상어와 파키스탄의 장엄한 풍경 속을 달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염소 등 다양한 야생동물을 포착했다. 울창한 인도의 차 농장에서 코끼리를 추적했고, 아시아 거대 도시 중 하나인 방콕 중심부에 사는 왕도마뱀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이 장대한 시리즈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제작진이 촬영한 비하인드 사진들을 소개한다.
제작진은 태평양에서 화려한 빛깔의 깃대돔을 쫓는 암초 상어를 촬영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상어는 움직임이 빠르고 상어가 사냥에 들어갔을 때는 근접 촬영을 하는 것이 너무 위험했다.
게다가 깃대돔도 시속 16km로 빠르게 헤엄을 칠 수 있는 어류였다. 연구원 세스 다우드는 필요할 때 물속에 넣어두었다가 보트로 깃대돔을 따라잡기 위해 속도를 높여야 할 때는 물 밖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는 접이식 장대를 제작진이 만들었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이렇게 만든 장대와 드론, 보트 가까이에서 수영하는 촬영 인력을 동원해 상어 떼가 수백 마리의 물고기 떼를 거의 싹 쓸어버리는 장면을 약 한 시간 동안 카메라에 담았다.
제작진은 중국 서부 칭하이성에서 해발 4.5km 고원 지대 초원에 사는 신비로운 여우를 촬영했다. 고도 적응과 그들이 과거 한 번 촬영한 적이 있는 암컷 여우의 영상을 확보하는 데는 3일이 걸렸다.
연구원 조슈아 첸은 촬영된 여우가 촬영 과정에서 제작진을 위협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잔디밭에 앉아 있을 때 여우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잠자는 자세를 취한 적이 있었다"며 "여우는 우리를 등지고 잠을 잤는데 우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여우는 새끼를 낳고 목초지에서 작은 설치류인 피카를 사냥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여우는 느릿느릿 움직이는 야크의 몸을 엄폐물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사냥 기술을 갖고 있었고, 제작진은 여우가 여러 차례 사냥에 성공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아시아 대륙의 또 다른 고지대에서는 제작진이 야생동물이 아닌 기상 이변을 포착하기 위해 여러 차례 현장을 방문해야 했다.
'카리프'는 오만의 도파르 산맥에서 일어나는 계절성 강우 현상이다. 이 지역에서는 바다에서 불어온 습한 공기가 산봉우리에 갇혀 안개로 변한다. 이 안개는 주변 경사면에 비를 내리는데, 이 비로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난다. 제작진이 이 원초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데는 드론이 매우 유용했다.
인도 지역 히말라야산맥 높은 곳에 있는 키버 마을 일대에선 고산 지대 포식자의 운명이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이곳에서 환경보호론자들은 지난 15년에 걸쳐 특정한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이 지역의 고유종인 푸른양의 개체수를 늘리면, 멸종 위기에 처한 눈표범이 마을 주민의 가축을 공격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프로젝트였다. 이 계획 덕분에 가파른 경사면에서도 사냥할 수 있게 진화한 고양잇과 맹수가 생존할 수 있었고, 한때 이 맹수를 두려워했던 지역 주민들도 이를 기뻐했다.
시리즈의 세 번째 에피소드인 '얼어붙은 북쪽'(The Frozen North)에서 제작진은 인적이 거의 없는 아시아 북부의 얼어붙은 땅으로 갔다. 그곳은 연중 대부분 혹독한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곳이었지만, 그곳에도 야생동물은 살고 있었다.
제작진이 찾아간 곳 중 하나는 극동 시베리아였다. 우랄산맥 동쪽에서 러시아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지역에는 시베리아 호랑이와 동시베리아 불곰 등 세계에서 가장 몸집이 큰 육상 포식자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거대한 화산을 중심으로 풍경이 펼쳐지는 캄차카반도의 외딴곳에서 제작진은 겨울잠을 준비하는 곰을 촬영했다. 이곳의 곰은 오래전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분화구에 형성된 호수에 모여든 연어로 살을 찌우면서, 기나긴 겨울잠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 광활한 얼음과 눈 속에 있는 모든 야생 동물이 모두 커다란 몸집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는 겨울에도 자리를 지키는 몸집이 작은 새들도 있었다. 제작진이 찾아낸 오목눈이는 사슴이 나무껍질을 먹은 후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당분이 풍부한 수액을 먹었다. 어쩌면 수액이 눈 덮인 황야에서 먹이를 구하기 힘든 새들에게 생명수가 되고 있는 듯했다.
네 번째 에피소드 '얽히고설킨 세계'(Tangled Worlds)는 아시아의 숲과 정글에서 발견되는 생명을 다뤘다. 이 사진은 네팔의 정글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코뿔소를 촬영하던 제작진 중 일부가 쓰러진 나무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다.
인도코뿔소라고도 불리는 외뿔코뿔소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코뿔소 종이다. 한때는 인도 아대륙(대륙에서 작은 부분이 상대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것을 말함) 전역에 분포했었지만, 지금은 네팔과 인도의 숲 정도에서만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인구 증가로 인한 서식지 감소와 밀렵으로 이 코뿔소의 개체 수는 급감했다. 하지만 다행히 최근의 보호 조치로 개체 수가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카메라맨 윌 포스터-그런디는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사바 숲에서 숲코끼리를 근접 촬영했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있는 다른 코끼리 종보다 훨씬 작은 이 코끼리는 열대우림으로 뒤덮인 섬 전체에서 볼 수 있지만, 개체 수는 1500마리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덥고 습한 밀림 환경은 영상을 촬영하는 이들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아시아 제작진에게는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바로 역겨운 냄새였다. 타이탄 아룸이 대표적인 예다. 이 꽃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정글에서 발견되는 가지가 없는 꽃식물 중 지구상에서 가장 크다. 크기가 큰 이 꽃은 짧은 시간 동안만 피고 진다. 그래서 곤충에게 최대한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강한 냄새를 발산한다. 하지만 그 향기는 고기 썩는 냄새에 비유될 정도로 역하다.
타이탄 아룸은 수분 매개자를 유인하기 위해 고기 썩은 냄새를 풍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꽃의 붉은 색과 질감 또한 고기와 비슷하다. 그리고 꽃이 피면, 꽃 가운데에 있는 다육질 줄기인 꽃차례가 사람의 몸처럼 뜨거워진다.
제작진은 인도 보팔에서 번성하는 도시인들과 호랑이의 공존을 촬영했다. 보팔은 인도에서 호랑이 수용률이 가장 높은 도시로, 호랑이 보호 성공 사례로 꼽힌다. 호랑이는 낮에는 동굴이나 숲이 우거진 지역에서 휴식을 취하고, 주로 밤에 밖으로 나온다.
제작진은 보팔 호랑이를 촬영하기 위해 매일 저녁 호랑이가 물을 마시는 물웅덩이를 포함해 도시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호기심 많은 새끼 호랑이와 랑구르 원숭이가 카메라를 자꾸 쓰러뜨려서 카메라와 조명을 다시 설치하는 일도 많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촬영된 이 사진은 목마른 호랑이가 웅덩이에서 물을 마시는 장면을 물고기의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 '붐비는 대륙'(Crowded Continent)을 통해 제작진은 아시아의 야생 동물들이 아시아의 거대한 인구에 어떻게 적응해왔는지 살펴봤다. 이를 위해 카메라맨 올리버 뮬러는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서 장수풍뎅이가 나무줄기에서 결투를 벌이는 촬영했다.
근접 촬영으로 찍힌 이 사진은 짝짓기 권리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수컷들 간의 투쟁, 즉 패자는 나무 줄기에서 쫓겨나 다른 곳에서 짝을 찾아야 하는 모습을 장수풍뎅이의 눈으로 보여준다.
태국의 수도 방콕처럼 아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에서도 이국적인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파충류 중 하나로 생김새도 무서운 왕도마뱀은 거대한 방콕의 수로와 호수에 적응해 살고 있었다.
방콕에서 왕도마뱀을 촬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세스 다우드는 "이 촬영은 앉아서 동물을 기다리는 대신 사냥과 채집에 더 가까운 방식으로 해야 했다"고 말했다. "무전기 통신을 활용해 도마뱀을 발견하면 팀원 전체가 언제든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게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촬영 장비는 카트 세 대를 동원해 최대한 빨리 옮겼습니다."
목격자들이 도마뱀이 출현한 위치를 무전으로 알려주었지만, 촬영팀은 잦은 폭풍우와 낙뢰 때문에 촬영이 위험해지는 상황도 이겨내야 했다. 하지만 인고의 시간은 거대한 메기를 사냥하는 왕도마뱀을 포함해, 6시간이 넘는 왕도마뱀 영상이라는 보상으로 이어졌다.
전체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화제가 된 장면은 아마도 스리랑카 섬에서 촬영된 코끼리의 적극적이면서 뻔뻔스러운 행동이었을 것이다.
하자라는 이름의 40살짜리 거대한 수컷을 포함해 영상에 등장하는 코끼리들은 도로를 달리는 버스가 적은 노력으로도 간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연구원 다우드는 공격적인 어린 코끼리들과 달리 차분한 라자는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접근하는 것이 더 많은 보상을 얻는다는 것을 터득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라자는 버스가 가는 길을 막고 아주 정중한 태도로 열린 문이나 창문 사이로 몸통을 들이밀고 승객들에게 멜론이나 코코넛 같은 간식을 요구했다. 그리고 충분히 간식을 먹고 나면, 라자는 버스가 갈 수 있게 길을 터주었다.
하지만 라자의 고상한 약탈은 아시아의 야생동물 대부분이 겪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를 보여준다. 인류의 인구 증가가 야생동물 서식지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야생동물의 서식지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스리랑카 코끼리만 해도 전체의 30%만이 보호 지역이나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