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습니다'...희생자 유해를 기다리는 유족들의 분노
지난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불시착 사고로 슬픔에 잠긴 유족 수백 명은 임시 텐트에 의존한 채 무안국제공항에서 지내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사랑하는 가족의 시신을 보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분노를 쏟아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조사관들에게 유족들에 대한 신속한 조사 결과 안내를 요청했다. 아울러 참사가 발생한 항공기와 동일 기종을 보유한 국내 항공사에 대한 특별 안전 점검을 지시했다.
분노의 고성이 오가는 무안 공항에서는 나원오 전남경찰청 수사부장이 브리핑을 통해 시신 훼손 정도가 너무 심해 희생자 179명의 신원 확인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한 중년 남성은 감정이 격해진 듯한 모습으로 "시신을 다시 온전한 모습으로 만들 수 있냐"고 물었다.
시신을 현 상태로 그냥 인도해달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으나, 나 수사부장은 가능한 한 많은 유해를 원형에 가깝도록 최선을 다해 수습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참담한 소식에 일부 유족은 눈물을 흘렸으나, 일부는 진이 빠진 모습으로 침묵하며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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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고기는 태국 방콕에서 출발해 무안국제공항으로 향하던 보잉 '737-800' 기종으로, 29일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활주로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앉은 뒤 벽에 부딪혔다.
이 사고로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사망했는데, 한국 내에서 발생한 최악의 민항기 사고다.
사망한 이들 중에는 승무원 4명도 포함되어 있으며, 나머지 승무원 2명은 잔해에서 생존한 채 구조됐다.
사고 다음 날인 지난 30일 제주항공의 또 다른 여객기가 이륙 직후 랜딩 기어(착륙 장치) 문제로 인해 서울로 회항하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최 권한대행은 국내 항공사를 대상으로 한 특별 안전 점검을 지시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30일 오전 6시 35분 김포국제공항에서 출발한 제주항공 여객기는 랜딩기어에서 이상이 발견돼 이륙한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회항했다.
랜딩 기어란 항공기가 지상 주행, 이륙, 착륙 등을 할 수 있도록 기체를 지탱하는 바퀴 등의 장치를 가리킨다.
이번에 회항한 항공기 또한 사고기와 동일한 보잉 B737-800 기종으로, 제주항공이 보유한 항공기 41대 중 39대가 해당 기종이다.
한편 무안 공항에서 BBC가 만난 유가족 중에는 두 손자와 사위를 잃은 신규호(64) 씨도 있다.
신 씨는 시신 확인 절차가 너무 오래 걸리는 것에 분노해 경찰 브리핑 시 사용하는 확성 장치를 부숴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했다.
우선 사위의 시신은 신원이 확인되었으나, 각각 고교 2학년, 1학년인 두 손자의 경우 "시신이 너무 흩어져 있어 알아볼 수 없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신 씨의 딸과 손녀는 "감정을 가누지 못해" 공항에 설치된 임시 텐트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편 맹기수(78)씨의 경우 조카와 조카의 두 아들을 잃었다. 조카가 대학 입시를 끝낸 두 아들과 축하하고자 태국으로 떠난 여행길이었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이 모두 사망하며 비극으로 끝이 났다.
맹 씨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이 다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가슴이 정말 찢어집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총 179명인 승객의 연령대는 3~78세이며, 40~60대가 많았다. 사망자 중 태국인 2명을 제외하고는 전원 한국인으로 추정된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사망자 중 5명은 10세 미만의 어린이였으며, 최연소 승객은 3세 남아였다.
해당 사고기에는 태국에서 크리스마스 연휴를 즐기고 귀국하던 탑승객들이 다수였다.
연합뉴스 취재진이 만난 한 60대 남성은 형수와 그의 딸 부부, 부부의 어린 미성년 자녀까지 3대에 걸친 일가족 5명이 해당 사고기에 타고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태국인 탑승자 중 한 명으로 확인된 동구마니 종룩의 친척인 찰렘신 폰핏차야는 BBC 태국어 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사고 소식에 "충격적"이라면서 "소름이 돋았다.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지난 5년간 한국인 남편과 농사일을 하며 한국에서 살았던 동구마니는 아픈 아버지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각각 7살, 15살 난 자녀를 만나기 위해 평소 1년에 2번씩 연휴 기간 태국을 찾았다고 한다.
이번에도 남편과 함께 태국을 방문해 약 2주간 머물며 가족들을 만났고, 12월 초 먼저 귀국한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폰핏차야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동구마니 아버지가 딸의 사망 소식에 "망연자실했다"고 전했다.
폰핏차야는 동구마니의 두 형제자매도 해외에 거주하며 일하고 있었다면서 "견딜 수 없어 했다. 동구마니가 막내딸이었다"고 덧붙였다.
전제영(71) 씨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딸 전미숙 씨가 축제를 즐기러 친구들과 방콕에 놀러 갔다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고 했다. 딸의 신원은 지문을 통해 확인했다.
전 씨는 "이제 겨우 40대 중반이었던 딸이 이렇게 죽었다"면서 딸이 내년 달력과 함께 음식을 들고 찾아왔던 12월 21일 본 게 마지막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날은 전 씨 부녀가 함께한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남편과 10대 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딸의 사망 소식에 전 씨는 "믿기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한 여성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막 상황이 좋아지면서 태국으로 떠난 언니가 사고기에 타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동안 늘 고생만 하다가 이제 형편이 나아져서 놀러 갔다"는 것이다.
한편 추락 사고에서 살아남은 승무원 2명은 제일 온전하게 남아 있던 비행기 꼬리 부분에서 발견되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중 30대 남성인 이 씨는 사고 이후 무안공항에서 남쪽으로 약 25㎞ 떨어진 목포의 한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으나, 이후 이대서울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주웅 이대서울병원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이 생존자가 전원된 후 의료진에게 "깨어나 보니 구조돼 있더라"는 말을 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여러 골절상을 입었으며, 전신 마비 등의 증상이 우려돼 집중 치료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또 다른 생존자인 여성 승무원 구 씨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머리와 발목을 다쳤으나, 안정적인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커멓고 짙은 연기가 보였고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한편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다수의 목격자들이 추락 전 비행기에 문제가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무안 국제공항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임영학 씨는 처음엔 유조선 사고인 줄 알았다며 말을 꺼냈다.
임 씨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밖에 나가보니 시커멓고 짙은 연기가 보였다. 그 후 폭발음이 들었는데 저기 부딪히는(추락) 소리는 아니었다. 그 후 계속 한 7번 정도 폭발음이 있었다"고 전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번 사건은) 바로 이곳에서 일어났습니다. 너무 충격적입니다."
공항 근처에 머물고 있던 유재용(41) 씨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추락 직전 오른쪽 날개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봤다고 전했다.
김용철(70) 씨는 사고기가 처음에 착륙에 실패하더니, 다시 한번 시도하고자 선회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 씨는 "큰 폭발음"을 들은 직후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현장에 출동한 한 소방관은 로이터 통신에 "이 정도 규모의" 사건은 처음 본다고 전했다.
현장에 나간 BBC 기자들은 29일 저녁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공항 터미널을 가득 채웠으며, 시신 신원 확인 과정이 너무 더디다며 분노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현재 수백 명은 여전히 무안 공항에 남아 사랑하는 이의 신원 확인이 완료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일부는 시신의 신원 확인을 돕고자 당국에 DNA 타액 샘플을 제공했으며, 정부는 유가족을 위한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장례 절차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새해 4일까지 7일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유족 다수는 과연 사고의 원인은 무엇인지, 피할 수 있는 사고였는지 등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다고 했다.
전 씨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공항 근처 바다는 수심이 깊지 않다"고 했다.
"(이 주변에는) 이 시멘트 활주로보다 더 부드러운 들판이 있습니다. 조종사는 왜 그곳에 착륙하지 못했을까요?"
전 씨는 딸 미숙 씨가 자신이 거의 집에 다 왔다고 생각했기에 굳이 전화를 걸거나 마지막 메시지를 남길 이유를 못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딸은 거의 집에 거의 다 온 상태였습니다. 딸은 자신이 거의 집에 다 왔다고 생각했어요."
추가 보도: 타냐폰 부아통(BBC 태국어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