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미 투자, 첫 사업은 텍사스 발전소…2000억 달러 어디에 쓰일까?
한국 정부가 미국과 합의한 2000억 달러 규모의 전략적 투자 가운데 첫 사업으로 텍사스주 가스발전소 건설을 선정했다.
미국 내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도 투자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조건을 놓고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미 투자 협상 경과와 향후 계획을 보고했다.
김 장관은 정부가 추진하기로 결정한 사업 1건과 아직 추진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사업 2건의 계획을 보고한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는 지난해 10월 한미 정상 간 무역·투자 합의 이후 구체적인 투자 사업이 처음 결정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첫 투자 사업은 텍사스 가스발전소
이번에 선정된 사업은 미국 텍사스주 엔시날 지역에 가스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총사업비는 223억 달러 규모로 알려졌다.
최근 텍사스에는 반도체 공장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잇따라 들어서면서 전력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번 발전소는 이러한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전체 발전 설비용량은 약 6.3기가와트(GW)다.
우선 1.4GW 규모의 가스터빈 발전소를 건설해 실제 전력 수요와 경제성을 확인한 뒤, 나머지 4.9GW 규모의 복합화력발전 설비를 단계적으로 늘리는 방안이 추진된다.
정부는 향후 20년간 약 433억~454억 달러를 벌어들여 투자 원금과 이자를 회수할 수 있다는 사업성 검토 결과를 국회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사업이 아직 개발 단계에 있는 만큼, 실제 수익을 거둘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성원 국회 산자위원장은 이날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해당 사업에 상업적 합리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하면서도 "개발 단계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다른 변수에 대한 우려가 있어서 상업적 안정성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원전·알래스카 사업은 추가 협상
후속 투자 대상으로는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건설과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이 검토되고 있다.
다만 두 사업은 텍사스 발전소와 달리 아직 구체적인 투자 조건이나 추진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
특히 원전 건설 사업에서는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의 지분을 한국이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 어떤 원자로를 건설할지가 주요 쟁점이다.
김 장관은 이날 국회 보고에서 웨스팅하우스 지분 5~10% 확보를 목표로 미국 측과 협상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는 미국에 건설할 원전 8기 가운데 6기는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모델로, 나머지 2기는 한국이 개발한 APR1400 모델로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도 추가 협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이 사업은 알래스카 북부 가스전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약 1300㎞ 길이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남부 니키스키까지 운송한 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수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총사업비는 440억 달러 규모다.
한국 정부는 앞서 현지에 실사단을 파견하는 등 사업성을 검토해 왔지만, 양국은 아직 사업 참여에 대한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김성원 산자위원장은 이날 국회에 보고된 사업 3건 가운데 투자 추진이 결정된 것은 텍사스 발전소 1건뿐이라며 나머지 2건은 별도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관세 협상에서 시작된 대미 투자
이번 대미 투자는 지난해 한국과 미국이 타결한 관세 협상에서 출발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의 후속 논의를 진행했다.
당시 한국은 미국의 관세 인하를 조건으로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약속했다. 이 가운데 1500억 달러는 조선업 협력에, 나머지 2000억 달러는 전략적 산업 투자에 배정됐다.
국회는 지난 3월 대미투자특별법을 처리해 투자에 필요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투자 사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는 투자금 회수 가능성과 사업 위험 등을 둘러싸고 논의가 이어졌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경제적으로 타당한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이른바 '상업적 합리성'을 협상 원칙으로 내세워 왔다.
이 대통령도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미 투자 협상과 관련해 "양국에 도움이 되는 사업으로 구상하기 위해 치열하게 논쟁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 측 요구에 따라 합의문에 포함된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표현이 구체적인 사업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다시 문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김 장관 역시 22일 국회에서 이 같은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정부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을 적극 발굴해 미 측과 협의했고 미 측이 제안한 프로젝트는 상업적 합리성을 일관된 원칙으로 면밀히 살펴봤다"고 말했다.
이어 "대미 투자가 단순한 자금 투입과 회수를 넘어 우리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나아가 세계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는 기회가 되도록 국익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실제 투자 규모가 합의된 총 2000억 달러를 넘지 않도록 하고, 연간 투자액도 200억 달러를 초과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한편 이날 국회 보고는 한미 간 협의 내용과 구체적인 투자 조건 등 민감한 정보가 포함돼 비공개로 진행됐다.
당초 정부는 지난 17일 국회에 투자 계획을 보고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연기된 바 있다.
첫 투자 사업에 관한 양해각서(MOU) 체결 날짜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