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간 끌어온 개헌', 우원식 의장은 성사시킬 수 있을까?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우 의장은 6일 오후 긴급 간담회를 열고 "삼권분립의 기둥을 더 튼튼하게 세우기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우 의장은 또 "위헌・불법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어느 때보다 개헌의 시급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크다"며 "세계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에 주목하는 이때, 성공적인 개헌을 통해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량을 보여주자"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이후부터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높아진 상황에서 우 의장의 이같은 제안으로 1987년 이후 약 40년 만에 처음 개헌이 이뤄질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삼권 분립 위해 개헌하자'
우 의장은 개헌 방향에 대해선 "삼권 분립의 기둥을 더 튼튼하게 세우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헌법을 통해 작동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며, "승자독식의 위험을 제거하고 국민주권으로 가기 위해 권력을 분산하고, 국민통합으로 가기 위해 협치와 협력을 실효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4년 중임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공감대가 높다는 부분은 확인"했으며,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것도 공감대가 넓은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개헌특위가 구성되면 거기서 논의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 말했다.
우 의장은 또 헌법이 만들어진 지 30년이 넘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담아낼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특히 기후위기와 디지털 전환, 저출생, 고령화, 양극화 같은 구조적인 위기에 대응하는 등 변화된 사회상과 국민적 요구를 담아내는 것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우 의장은 새로운 정부 초가 아닌 대선 때 맞춰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한 이유에 대해 "대통령 임기 초에는 개헌이 국정의 블랙홀이 될까 주저하고, 임기 후반에는 레임덕으로 추진 동력이 사라진다"며 "이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새로운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 물꼬를 터야 한다"고 설명했다.
'35년째 반복된' 개헌 실패의 역사
우 의장의 말처럼 1987년 이후 전임 대통령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개헌을 언급했지만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총 8차례의 개정을 거쳤으며, 현행 9차 헌법은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이 9차 헌법은 당시 전국민적인 요구였던 독재의 종식,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반영했다. 대통령직선제 및 대통령 5년단임제, 언론・출판의 허가・검열금지,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 금지 등 기본권 강화 내용을 반영하였고, 노동 3권의 보장, 헌법재판소 신설, 군의 정치적 중립 등이 명문화되었다.
그러나 대통령 권한이 비대해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개헌의 필요성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본격적인 개헌 논의의 시작은 1990년 '3당 합당', 즉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과 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하며 민주자유당(민자당)을 만들던 때였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상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는 '내각제 개헌'에 비밀리에 합의했다. 그런데 이후 언론에 이 내각제 합의서가 공개되자 김영삼 당시 민자당 총재는 "내각제 약속이 국민 위에 있을 수 없다"며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이 내각제 추진을 포기하겠다고 발표하며 개헌은 실패로 돌아갔다.
1997년 대선에서도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연대를 추진하며 내각제 개헌을 약속했지만, 김 전 대통령의 집권 후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도 모두 개헌을 약속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탄핵 국면에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개헌에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은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이 "개헌의 국민적 논의와 사회 공론화를 결여했다"며 반대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엔 성사될까?
우 의장의 이번 제안이 크게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이번 개헌에 대해 '각 당 지도부와 공감대가 있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우 의장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포함한 각 당 지도부와 논의했냐'는 물음에 "지도부와 개헌 논의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 민주당뿐 아니라 여러 당 지도부와 다 얘기를 했다"고 답했다.
우 의장의 간담회에 앞서 6일 오전 정대철 헌정회장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표가 지난 3일 통화에서 개헌에 동의했다"며 "권력구조에 국한한 '원포인트' 개헌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 측 인사들도 개헌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18일 이재명 대표와의 상견례에서 "전부 아니면 전무 게임인 대통령제를 좀 더 많은 국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고 상생과 협력을 할 수 있는 제도로의 변경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 12월 22일 MBN 뉴스에 출연해 "1987년 체제가 완전히 무너졌다"며 "(대통령) 4년 중임으로 개헌해서 5년 단임제의 폐해를 시정하되 폭정으로 가지 못하도록 감시·견제하는 장치를 헌법안에 많이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12월 2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승자독식의 의회폭거와 제왕적 대통령제를 허용하는 이른바 87헌법체제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며 개헌을 주장했다.
개헌 절차는 어떻게 될까?
헌법 개정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복잡한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선 헌법개정안의 발의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할 수 있다. 대통령이 발의할 경우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고, 국회의원이 발의할 경우 재적인원 과반수의 찬성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개헌안이 발의되면 대통령은 헌법 개정안을 20일 이상 공고해야 한다. 20일 이상이라는 기간을 둔 이유는 개헌 내용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적 여론 및 합의를 구하라는 뜻에서다.
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이를 의결해야 하며,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개헌안이 의결된다.
이렇게 의결된 개헌안은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져야 하며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최종적으로 개헌안이 확정된다. 확정됨과 동시에 대통령은 이를 즉시 공포해야 하고, 공포와 동시에 개정된 헌법이 발효된다.
이처럼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오는 6월 3일까지 치러져야 하는 대선과 개헌 국민투표 일정을 맞추기 위해선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 의장은 "국회 공고 기간 및 국민투표 공고 기간 등을 합쳐 최소 38일이 필요하다"며 "이같은 일정을 고려하면 즉시 개헌특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개헌에 대한 공감대가 모아진 상황에서 국회가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기간 내에 합의안을 도출해 국민투표를 성사시킬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