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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부통령 밴스는 왜 젤렌스키와의 설전에 나섰을까

2025.03.02

지난 28일(현지시간) 미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회담에서 JD 밴스 미 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질책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였다. 이는 밴스가 일부 전임자들처럼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정치 대역이 아닌, 공격수로서 무대의 중심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가세하기 전, 먼저 젤렌스키를 공격한 것은 바로 밴스였다. 회담은 원래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지만, 밴스 부통령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한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한 트럼프 대통령을 칭찬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과 러시아 간의 직접 대화에 비판적이었던 젤렌스키는 "JD, 당신이 말하는 외교란 무엇입니까?"라며 "무슨 뜻이죠?"라고 물었다.

밴스 부통령은 "당신 나라가 파괴되는 걸 끝낼 수 있는 외교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경직된 젤렌스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젤렌스키) 대통령님, 미국 언론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이를 논쟁하기 위해 집무실에 들어오는 건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또한 젤렌스키가 2024년 대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선거운동을 벌였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9월 중요한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의 군수 공장을 방문하고 백악관에서 트럼프의 맞수인 카멀라 해리스를 만났다.

젤렌스키에 대한 밴스 부통령의 비판은 공화당원들 사이에서 폭넓은 지지를 끌어냈다.

우크라이나의 오랜 지지자이자 외교 정책 매파인 린지 그레이엄 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은 "JD 밴스가 우리나라를 옹호하는 것이 매우 자랑스러웠다"라고 말했다. 그는 젤렌스키가 사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앨라배마주 상원의원인 토미 튜버빌은 젤렌스키를 "우크라이나 족제비"라고 불렀다.

뉴욕의 마이크 로울러 하원의원은 이번 회담과 관련해 "미국과 우크라이나 모두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말하며 좀 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방문한 국가 정상을 이처럼 공격하는 것은 미국 부통령으로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부통령의 임무는 종종 대통령 당선을 돕고 그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대통령을 대신해 해외 순방에 나서는 충성스러운 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한마음 한뜻으로 보좌해야 한다는 것이다.

훨씬 더 온화한 성향이었던 트럼프의 첫 번째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와는 대조가 될 수밖에 없다.

밴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에 대한 직감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인물로 알려졌는데,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에 대해 노골적으로 회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2022년 오하이오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밴스 의원은 팟캐스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우크라이나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별로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밴스 부통령은 8년 전 트럼프를 바보라고 조롱했지만, 이후 정치적 변화를 거치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운동의 후계자로 자리 잡았다.

보수적인 유권자들 사이에서 밴스 부통령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최근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밴스가 2028년에 차기 대선에 출마할지 여부를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밴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적에 대한 노골적 비판에서 더 나아가 트럼프의 정치적 싸움꾼으로서의 역할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좌)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중), JD 밴스 미국 부통령(우)과 대화하고 있다
EPA
방문한 국가 정상에게 이처럼 공격을 퍼붓는 것은 미국 부통령으로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한 가지 공통점은 밴스의 비판 대상 중 상당수가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점이다.

이는 지난달 미국 부통령이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뮌헨 안보 회의에서 시작됐다. 카말라 해리스는 그곳에서 종종 기억에 남지 않는 연설을 하곤 했다.

하지만 밴스는 이 기회를 이용해 유럽 지도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검열하고 이민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며 유럽 민주주의에 대한 맹렬한 공격을 시작했다.

그는 "유권자를 두려워하며 선거에 임한다면 미국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 발언에 정치인, 군 고위 관계자, 외교관으로 구성된 청중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는 유럽이 자국의 국방과 안보를 위해 더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지금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일반적인 주장이 아니었다.

이는 본격적인 이데올로기 공격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이 유럽에서 멀어지고, 중국으로 안보의 초점을 옮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 대륙에서 트럼프식 포퓰리즘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밴스는 연설 후 독일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지도부와 저녁 식사도 가졌다.

그의 연설은 유럽 지도자, 작가, 학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밴스는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을 비롯한 여러 사람과 X(옛 '트위터')에서 구체적인 논쟁을 벌였다.

밴스는 퍼거슨을 "도덕적 쓰레기", "역사적 문맹",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화주의자(globalist)"라고 비난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는지, 밴스는 이번 주 초 영국 총리를 직접 집무실에서 만나기도 했다.

그는 갑자기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에게 "영국인이 자국에서 무엇을 하느냐는 그들에게 달려 있지만, (영국에서의) 표현의 침해가 영국인뿐만 아니라 미국 기술 기업, 더 나아가 미국 시민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스타머 총리는 "영국 내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영국의 역사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며 "우리는 영국에서 아주 오랫동안 표현의 자유를 누려왔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단호하게 반박했다.

이는 밴스 부통령이 뮌헨에서 인공지능과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유럽의 규제에 대해 비판한 것의 연장선에 있었다.

해당 규제는 불안을 조장하고 사람들을 극단적으로 몰아갈 수 있는 허위 정보와 증오 발언에 대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밴스는 이를 정치적 동료와 빅 테크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상업적 이익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있다.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일부 외교관들이 믿는 것처럼 젤렌스키에 대한 밴스의 공격은 계획된 것일까?

백악관 소식통은 미국 언론에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요청에 따라 밴스에게 새로운 역할이 생겨나면서 일론 머스크와 함께 대통령의 정적들을 응징하는 임무를 분담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트럼프가 다시 나설 수 없는 3년 후를 대비해 선거 캠페인의 기반이 될 독자적인 입지를 다지려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무엇이든, 밴스는 트럼프의 2인자 이상의 존재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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