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대통령 끌어내리는데'...북한 주민들은 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국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됐다.
탄핵 찬반 시위 인파로 가득 찼던 광화문과 종로, 안국역 헌법재판소 앞 등 도심 곳곳은 잠잠해졌고 극과 극으로 치닫던 '남남갈등'도 어느 정도 수그러드는 듯한 모양새다.
누차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한국 사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이기에 가능하다.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통령에게 투표할 수 있고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자유롭게 지지 또는 비판할 수 있다. 한국은 해방 이후 이 같은 체제를 선택했고 민주화 과정을 통해 그 기반 위에 우뚝 섰다.
하지만 북한은 다르다. 사회주의를 내세웠지만 이내 3대 세습을 거치며 '수령은 곧 태양'인 독재 국가가 됐다. 전 세계 그 어디에도 없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말이다.
한국 국민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갈아치웠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반면 북한 주민들은 독재 속 자유와 인권을 유린당한 채 살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은 왜 자신들을 짓누르는 세습 독재 정권을 바라만 보고 있을까? 이는 정말 원초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굶주리고 핍박 당하면서 왜 들고 일어나지 않느냐는 의문이다. 북한에서 민중 봉기 혹은 지도자 탄핵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공포 정치 그리고 연좌제
결론부터 말하면 북한은 '탄핵'은커녕 민중 봉기조차 불가능한 사회다. 체제 자체가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전제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2023년 11월 탈북해 한국으로 망명한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정무참사는 BBC에 "북한은 독일 나치스, 쿠바, 베네수엘라 등과도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완전히 다른 체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권을 양보하면 존재하지 못하는, 즉 독재자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사까지 보장할 수 없는 체제라는 설명인데 최근 무너진 시리아의 알 아사드 세습 독재 정권이 대표적이다.
리 전 참사는 "그런 전제주의 세습 독재 국가에선 시위가 일어날 수 없다"면서 "감시와 통제, 처형이라는 3대 축을 기반으로 한 공포 정치가 극악하게 진행되다 보니 주민들이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공포 정치 외에 '연좌제'가 존재한다"며 "나 하나 잘못해서 나만 죽는 게 아니라 온 가족이 무너지는 시스템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반항할 엄두조차 못 내고 그저 순종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 때문에 4대 세습으로 가더라도 "주민들은 응당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전했다.
리 전 참사는 그러면서 "북한은 근본적인 시스템이 다르다. 그 세상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비교를 할 수 없다. 같은 세상일 때 비교가 되는 것 아니겠냐"면서 "한국 재벌들은 그들만의 세상이 있지 않나, 그들이 잘산다고 해서 그 세상을 뒤집어엎으려는 사람은 없다. 그와 비슷하다. 별도리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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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어떻게 갈아치워?'
북한에서 수령은 절대자, 즉 신(神)으로 통한다. 지도자를 절대자로 받들면서 주민들에게 끊임없이 세뇌했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는 평가도 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현인애 한반도미래여성연구소장은 "북한에서 수령은 신성화돼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꾼다는 것은 반역이자 역적"이라고 했다. 사상적으로 세뇌됐고 조직적으로도 뒷받침되는 시스템 속에서 '하느님을 감히 어떻게 갈아치우냐'는 것.
그는 "지인들이 모인 사석에서 '김일성 이 죽일 놈'이라고 말하면 정치범 수용소행, 총살감"이라며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야 그런 말을 하기도 힘들거니와, 그런 것을 허용하는 사회 분위기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게 철저하게 감시를 받다 보니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불문율로 굳어졌다고 현 소장은 설명했다.
내부 통제 기재 자체가 워낙 촘촘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한국 통일연구원 출신의 정영태 동양대학교 석좌교수는 "대부분의 정보가 차단돼 있어서 오랫동안 왕조 국가, 유일 독재 체제로 사는 자신들이 오히려 정당하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측면이 강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특히 "인터넷이 없고 외부 정보가 막힌 채 긴 세월을 보내다 보니 의식 자체가 많이 막혀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만약 누군가가 반정부 시위를 도모하더라도 동조할 수 있는 세력이 많지 않다 보니 '찻잔 속의 태풍'이 되는 꼴"이라고 했다. 대북 라디오 방송을 듣거나 중국을 오가며 외부 세계를 알게 되는 주민은 극히 소수라는 말이다.
정 교수는 "북한은 일찍이 김일성을 절대자로 삼아 집중적으로 이데올로기 교육을 했고 이미 의식화 수준을 넘어서 그게 너무나 당연시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충성 구조 자체가 상당히 깊다"고 평가했다. 그게 아니라면 "과거 김일성 사망 혹은 김정일 사망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북한 체제가 엎어져도 벌써 엎어졌어야 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아울러 "과거 김일성 사망과 관련해 탈북민 심층조사를 진행했을 당시 대다수가 김일성의 죽음을 믿지 않았고 나중에 진짜 김일성 사망을 확인한 뒤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며 "그 정도로 북한 주민들의 의식 구조 자체가 매우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전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혁명 세력?
그런 북한에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겠다며 등장한 혁명 세력이 있다. 바로 북한 안팎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진 '새조선'이다.
이들은 지난해 5월 18일 '평양에서 보내온 영상'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했다. "묘 비석보다 많아진 김가(金家) 흔적들을 이제부터 우리가 파괴한다"며 모자이크 처리된 한 인물이 붉은 글씨가 쓰여진 회색 비석에 검은색 액체를 뿌리는 모습을 공개한 것.
이들은 평양에서 '비밀 자유민주 정부'로 활동하고 있다면서 "새조선의 대총서가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목표는 오로지 김정은 암살이라고 한다.
이보다 앞선 2021년에는 반체제 정당 조직이 적발된 사건도 있었다.
2021년 하반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사회주의제도 좀먹는 위험한 독소"라는 제목의 영상이 한국의 한 탈북 단체를 통해 외부에 공개된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 인지한 북한 역사상 최초의 민간 주도의 반체제 정당 조직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특히 해당 기록은 북한 당국이 사상교육을 위해 만든 자료집에서 언급된 것으로, 북한 당국이 굳이 교육 자료까지 만들어 배포한 것을 보면 이러한 사례가 추가로 더 있었다는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반체제 집단은 전원 처형됐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해방 직후 '평북 신의주 학생 사건'과 같은 민중 봉기가 일어나 소련 군정과 공산당 통치에 저항했지만 처절하게 진압됐다"면서 "그 이후 북한에서 대규모 국민 저항이나 시위가 일어난 사례는 없다"고 했다.
당시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면서 핵심 계층을 위주로 정권 기반을 갖춰온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위원은 향후 북한 내 민중 봉기 가능성에 대해서도 "여타 독재 국가들처럼 보편적으로 시위가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내다봤다.
다만, 계속해서 북한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고 또 외부 정보 유입은 늘면서 북한 권력층과 주민들의 의식이 조금씩이나마 변화하고 있는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북한 주민들의 삶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