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통일을 바라는 젊은 세대가 점차 사라지는 이유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나한테 말을 좀 안 걸었으면 좋겠는데, 계속 말을 거는 거예요."
박준규(32) 씨는 한국의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통일'을 '지하철 불청객'에 빗대어 표현했다.
"자기 좋자고 다리 쩍 벌리고, 핸드폰 소리 크게 틀고…그래서 대화를 전혀 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말을 거는 상황? 사회·경제 문제나 청년들이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도 있고요. 가장 잘못한 건 기성세대가 북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문제로 각인시켰다는 거죠."
박 씨는 남북 청년 싱크탱크 ‘한반도청년미래포럼’의 창립자다. 남북 청년 간 대화와 협력, 정보 공유 등을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포럼을 이끄는 박 씨조차 젊은 세대의 통일에 대한 “무관심과 부정적”인 감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밝혔다.
많은 한국 청년의 머릿속에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통일담론이 설득력 없이 전개됐다는 지적이다.
오는 15일 윤석열 대통령의 제79주년 광복절 축사를 앞두고 새로운 통일구상에 대한 여러 궁금증이 쏟아진 이유이기도 하다.
10명 중 4명 '통일 불필요'
‘젊어질수록 통일과 멀어진다.’ 북한·통일 연구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우려다.
실제로 여러 설문조사에서 10~30대 젊은 세대의 통일 인식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낮다는 결과가 드러났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전국 17개 시·도에 거주하는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3 통일의식조사’에서 19~29세 응답자 중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한 비율은 28.2%,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41.2%로 60대 이상에서 각각 51.3%, 20.7%을 기록한 것과 큰 차이가 났다.
한편 통일부가 지난해 교육부와 함께 전국 초·중·고 756개교 학생 약 7만4000명을 대상으로 ‘2023년도 학교 통일교육 실태조사’를 시행한 결과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한 비율이 49.8%을 기록했다. 2014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반면 ‘통일이 불필요하다’고 응답한 학생 비율은 39.8%로 역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경제적 부담
두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공통적으로 통일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로 ‘통일의 경제적 부담’과 ‘통일 이후 발생할 사회적 문제’가 꼽혔다.
한국과 북한의 경제 규모가 차이가 크다보니, 통일 후 한국인들의 경제적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서독과 동독 간 통일 사례를 참고했을 때, 인구 비율과 소득 격차 면에서 한국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통일 비용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갑작스러운 통일을 맞이할 경우 30년간 약 2500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고등학교 2학년 정현준 군은 “최근 사회적 분위기를 보면 더 이상 자신이 부양해야 할 무언가가 늘지 않기를 원해서 혼자 살거나 자녀를 낳지 않는 등의 양상이 2030세대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며 “(통일이) 과연 이러한 세대들에게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남북 통일이 이뤄졌을 때의 경제적 기대효과도 분명 존재한다.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새해 기자회견에서 통일 비용보다 실익이 크다는 취지에서 ‘통일 대박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는 “통일 대박론을 통해 경제적 관점의 접근이 이뤄졌지만, (젊은 세대에게) 실질적으로 경제적인 부분이 와닿지 않는 상황에서 (통일에 대한) 부담이 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고등학교 3학년 권수민 양은 인구 균형과 국제 무역 등 중장기적인 이익을 고려했을 때 통일에 긍정적이라면서도 “주변 친구들을 보면 통일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굳이 (통일에 대해) 묻는다면 통일을 지향하지만 본인이 후세대가 됐을 때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했다.
깊어지는 단절
젊은 세대는 갈수록 북한과의 연결고리가 희미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하루가 멀다하고 미사일 발사, 오물풍선 등의 속보를 쏟아내는 미디어를 통해 북한을 접한다.
30대 초반인 박 씨는 ‘북한’이라고 했을 때 “연평도 포격 도발, 목함지뢰, 연락사무소 폭발, 오물 풍선” 등의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했다.
전 교수는 “내년이면 벌써 (분단) 80년”이라며 “그러면 본인의 기억 속에 있는 역사가 아니라 교과서에서 나온 역사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과 연관시켜서 얘기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북한에 대한 세대의 인식과 경험이 달라지고 있는 것에 비해 통일담론은 제자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젊은 세대가 공감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고 민족주의적이라는 것.
동국대 북한학연구소의 하승희 교수는 “세대는 계속 변화하고 있는데 (통일) 프레임 자체는 고정돼 있다”며 “(담론을) 현실로 끌고 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해외여행을 갔을 때 북한 주민을 만나면 접촉 신고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걸 모르는 국민들이 많아요. 또 1989년부터 통일부가 북한자료센터를 통해 특수 자료를 개방했는데, 지금도 ‘북한 책 보면 잡혀가는 거 아니야?’ 이런 인식이 있죠. 아직도 북한이나 북한 자료 이런 것들은 전문가 영역에서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거예요.”
탈정치·탈이데올로기
“우리 세대가 보기에 통일은 너무 레토릭(rhetoric·수사학)스러워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더 이상 먹히질 않거든요.”
박 씨는 젊은 세대의 또 다른 특징으로 탈정치·탈이데올로기(이념)를 꼽았다. 민족주의, 반공 등 통일담론을 이끌던 이념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
전 교수는 “예전과 달리 지금은 국적 자체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로, 세계 어디를 가든 선택지가 열려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젊은 세대는 (통일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이라고 했다.
박 씨는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등 남북 관련 중요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가가 두 개로 갈라져서 싸우”고 선거철 때마다 과거 사건이 다시 끌어올려지는 것을 보면서 눈살이 찌푸려졌다고 했다.
“이런 (정치적인) 부분들 때문에 젊은층이 (통일에 대해) 막연하게 거부감이 생긴 거죠. 보기도 싫은 거죠. 근데 이런 상황에서 통일 얘기를 한다? 반대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죠.”
실제로 젊은 세대의 ‘정치혐오’ 또는 ‘정치무관심’ 현상은 두드러지고 있다. 올해 총선에서도 2030세대를 중심으로 무당층 비중이 크게 늘면서 막판까지 중요한 선거 변수로 주목받았다.
젊은 세대만의 문제인가?
하지만 젊은 세대가 유독 통일에 무관심하다고 보긴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서혜주 양은 “그래도 2018년 평창 올림픽에 남북 단일팀이 출전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북한관과 남한 간의 관계 증진 관련한 긍정적인 측면도 봐서 그런지 주변에 (통일을) 긍정적으로 보는 친구들이 꽤 많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박주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젊은 세대의 통일인식이 특별히 낮은 것이 아니라, 사실 모든 세대의 통일인식이 높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2주차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남한과 북한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나’를 묻는 질문에 모든 연령이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2국가’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선택했다. 선택지 중에는 ‘통일된 단일국가’도 있었다.
반면 ‘남한과 북한이 반드시 통일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를 묻는 항목에 ‘반드시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한 18~29세 응답자는 28%로 연령대 중 가장 낮았다.
박 연구위원은 “통일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많은 가치를 수반하고 있어 일종의 사회적 의무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통일’이라는 단어를 빼고 ‘남한과 북한이 어떻게 살아갔으면 좋겠’는지 물어보면 의무감이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거죠. 그러니까, 이게 속마음이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는 “젊은 세대의 통일인식이 좋아지지 않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기성세대들이 그들에게 통일 필요성과 관련해 설득력있는 이야기를 못 해주기 때문”이라며 “어쩌면 기성세대들도 통일을 해야 하는 확실한 이유를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