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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6차례에 걸친 레바논 침공 역사

2025.02.17
발포하는 탱크와 주변에서 귀를 막는 군복 차림의 남성들
Getty Images
2006년 8월, 이스라엘 군인들이 레바논 남부를 향해 발포하며 자신들의 귀를 막고 있다

오는 18일(현지시간)은 레바논 남부 내 이스라엘군의 철군 시한이 만료되는 날이다. 앞서 이스라엘군과 헤즈볼라는 16개월 넘게 전투를 벌인 끝에 중재국들의 도움으로 이 같은 조건을 담은 휴전 협정을 체결했다.

해당 합의 조건에 따라 이스라엘은 레바논 전역에서 완전히 병력을 철수해야 하며, 레바논의 시아파 민병대인 '헤즈볼라'는 리타니강 이남 지역에서 전투 대원, 무기 등을 철수시켜야 한다.

동시에 레바논 정규군 수천 명이 이 지역에 배치된다는 조건이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철수하기로 합의한 지역을 표시한 지도
BBC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철수하기로 합의한 지역

레바논 당국에 따르면 이번 공세로 인해 레바논에서는 민간인을 포함해 약 4000명이 사망했으며, 120만 명 이상이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이스라엘 당국은 자국 군인 최소 80명(및 민간인 47명)이 사망했으며, 국민 6만 명이 집을 떠나야 했다고 주장한다.

이번 분쟁은 지난 수십 년간 이어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적대적 관계가 심각하게 격화한 경우로,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최소 5번 이상 레바논 국경을 넘어 대규모 군사 작전을 실시했다.

1978년: 리타니 작전(레바논에서는 '이스라엘의 1차 침공')

1978년 3월 14일,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기반을 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대원들을 국경에서 몰아내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앞서 이스라엘 북부에서 PLO가 해상 게릴라 공격을 벌이며 민간인 최소 30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당시 PLO는 1970년 요르단에서 추방된 이후 레바논에 기반을 두고 활동 중이었다.

이스라엘군은 리타니강까지 북쪽으로 진격했으나, 이스라엘군의 진격에 앞서 철수한 PLO와 교전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1978년 3월 3일 레바논 남부의 자브킨 마을에서 순찰 중인 이스라엘 군인들
Getty Images
1978년 레바논 남부에서 순찰 중인 이스라엘 군인들의 모습

2주 뒤 PLO는 휴전을 선언했고, 이스라엘은 그해 말 철수했다. 다만 해당 국경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고자 기독교 대리 민병대인 '남레바논군'을 지원했다.

그해 6월 '리타니 작전'이 종료되기 전까지 레바논인과 팔레스타인인 11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UN 안보리 결의에 따라 사실상 두 나라 간 국경선이 된 일명 '블루라인'을 따라 새로 창설된 '유엔 레바논 임시군(UNIFIL)'의 평화유지군이 배치되었다. 1978년 이후 이곳에서는 평화유지군 300명 이상이 사망하며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UN 평화유지군 근무지로 유명하다.

1982년: 갈릴리의 평화 작전('이스라엘의 2차 레바논 침공')

1982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중 폭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레바논 해안 도시
AFP
1982년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대원 수천 명을 몰아냈다

리타니 작전으로도 PLO와 이스라엘 간 국경 근처에서의 충돌은 끝이 나지 않았다. 그러던 1982년 6월 3일, 영국 런던에서 이스라엘 대사가 한 팔레스타인 조직에 의해 총상을 입자,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 국방장관의 지휘 아래 이스라엘 군은 병력 수천 명, 군용차량 수백 대를 동원한 훨씬 더 큰 규모의 작전을 전개하게 된다.

6월 6일 공세를 시작한 이스라엘군은 이번에는 며칠 만에 수도 베이루트 외곽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주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인 서베이루트를 포격했다.

2달 넘게 지속된 포위 공격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대원 수천 명은 바다를 통해 대피했다.

또한 이스라엘 군은 레바논 동부에서 시리아 군과도 충돌했는데, 전투기를 동원한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며 시리아 측 항공기 수십 대를 파괴하기도 했다.

1982년 이스라엘의 침공 경로
BBC
1982년 이스라엘의 침공 경로

레바논 당국은 해당 전투로 인해 레바논, 팔레스타인, 시리아 출신 민간인과 군인 약 1만9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이 수치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이스라엘 군은 1982년 6~9월 기준 자국 군인 376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레바논의 새로 선출된 기독교인 대통령이 그해 9월 14일 차량 폭탄 사고로 숨지면서 이스라엘군은 기독교 민병대가 사브라, 샤틸라 지역의 팔레스타인인 난민촌에서 700~3500명으로 추산되는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이듬해 이스라엘 군은 레바논 중부에서 철수했으며, 1985년에는 국경에서 약 19km 떨어진 '보안 구역'까지 철수했으나, 이후로도 18년간 레바논에서 전면 철수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레바논 땅에서는 이러한 외국 군대와 싸우겠다며 이란의 지원을 받아 '헤즈볼라'가 결성되게 된다.

2024년 레바논 남부 도시 나바티에에서 헤즈볼라 깃발을 흔드는 남성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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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영국,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테러 조직으로 지정된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스라엘 침공 이후 이스라엘에 저항하고자 결성된 시아파 민병대로 출발한 단체다

1993년: 책임 작전('7일 전쟁')

1993년 7월 25일부터 일주일 동안 헤즈볼라 관련 목표물 수십 개를 노린 폭격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레바논과 이스라엘 북부에 있는 자신들의 진지를 겨냥한 로켓포 공격에 대응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는 "(헤즈볼라가) 레바논 남부를 테러의 거점으로 삼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작전이라고 설명했다.

헤즈볼라는 자신들의 로켓포 공격은 앞서 이스라엘이 벌인 헬기 공격에 대한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수천 발을 발사했으며, 적의 전투원('테러리스트'라고 부른다) 50명을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건물 수천 채가 파괴되었으며, UN은 해당 분쟁으로 인해 민간인 130명이 사망하고 30만 명이 피난길에 오른 것으로 추정한다.

IDF는 이스라엘에서는 민간인 2명과 군인 1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1996년: 분노의 포도 작전('4월 공격')

1996년 4월 28일 레바논 남부 시디키네에서 헤즈볼라 전사 한 명이 어머니와 함께 파괴된 집 옆에 앉아 있는 모습
Getty Images
1996년 분쟁으로 인해 국경 양쪽의 수많은 주민들이 대피해야만 했다

1996년 IDF는 또 한 번 레바논에서 작전을 전개했다. 이번에도 패턴은 비슷했으나, 2배나 더 길었다.

1996년 4월에 발생한 이 분쟁은 이스라엘에 로켓포가 발사된 이후 다시 이스라엘이 포탄 수천 발로 맞서며 발생했다. UN에 따르면 이로 인해 200명 이상(대부분 민간인)이 숨졌다.

당시 IDF가 레바논 남부 카나 소재 UN 진지를 공격하며 100여 명이 사망했다. 피난 온 민간인들이 머무르던 곳이었다.

IDF는 레바논 남부의 시아파 마을들을 공격하기 위한 전술이었다면서, "민간인들이 베이루트 쪽으로 더 북진하게 해 시리아와 레바논 정부가 헤즈볼라의 행동에 대해 실질적으로 대응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목표였다고 주장했다.

UN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쪽으로 로켓포 수백 발을 발사했고, 이로 인해 민간인 약 55명이 부상당했다.

양측 간 교전으로 레바논인 수백만 명, 이스라엘인 수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

4월 27일 휴전 협정이 맺어지며 해당 분쟁은 끝이 났다.

2006년: 제2차 레바논 전쟁('2006년 레바논 전쟁')

제한적이었던 2006년 이스라엘의 지상 침공 지역을 표시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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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적이었던 2006년 이스라엘의 지상 침공 지역을 표시한 지도

2006년 7월 12일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군인 2명을 생포하자 이스라엘군은 약 1달간 공중, 육상, 해상에서 레바논 남부와 베이루트를 공격했다.

헤즈볼라 관련 목표물은 물론 베이루트 국제공항을 비롯한 민간 인프라에도 공격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지상전은 레바논 내부 깊숙이 전개하지 않았으며, 헤즈볼라는 자신들이 승리한 전쟁이라고 말한다.

그러던 8월 14일, UN이 중재한 휴전이 발효되었다. 휴전 조건에 따라 리타니강 이남에는 UNIFIL 평화유지군과 레바논 정부군만 주둔해야 했으나,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34일간 이어진 분쟁으로 레바논인 약 1125명 이상(대부분 민간인)이 사망했으며, 이스라엘에서는 군인 119명과 민간인 45명이 사망했다.

2023년~

동맹 관계인 '하마스'가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를 겨냥한 치명적인 공세를 가한 다음 날, 헤즈볼라는 팔레스타인을 지원하고자 분쟁 중인 국경 지역 내 이스라엘 진지를 향해 로켓포를 발사했다.

같은 해 10월 9일,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북부도 공격하기 시작했다.

2024년 11월 28일 이스라엘-헤즈볼라 간 전쟁 중 파괴된 이스라엘 북부의 키부츠 ‘메나라’ 소재 한 건물 창문에 이스라엘 국기가 펄럭이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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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최근 분쟁에서 헤즈볼라가 자국 북부 지역 및 이스라엘이 점령한 골란고원에 로켓포 수천 발을 발사했다고 주장한다

양측은 서로 공격을 주고받았고, 2024년 9월 17일 이스라엘에 의해 조작된 헤즈볼라 대원들의 무선 호출기가 폭발하면서 분쟁은 더욱 악화하게 된다.

9월 18일에는 무전기마저 폭발하며 레바논 전역에서 39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당했다.

일주일 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향한 강도 높은 공습 작전을 전개했고, 10월에는 지상전도 감행했다. 헤즈볼라의 로켓포 공격으로 인해 피난가야만 했던 이스라엘 북부 주민 6만 명의 안전한 귀환을 보장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내 진격 현황(2025년 2월 12일 오후 6시(GMT) 기준)을 표시한 지도
BBC
이스라엘의 레바논 내 진격 현황

지난해 9월 22일,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는 10월 7일 공격 이후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와 이스라엘이 점령한 골란고원에 로켓포 8000발 이상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9월 27일에는 헤즈볼라를 32년 동안 이끌었던 하산 나스랄라가 공습으로 숨졌다.

양측간 휴전 협정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레바논 내 헤즈볼라 관련 목표물을 계속 공격하고 있다. 헤즈볼라의 재무장을 막고자 작전을 이어갈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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