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한미 정상은 어떤 모습으로 만났나

한미정상회담은 시대의 과제와 대통령의 모습을 고스란히 비춰왔다. 북핵 위기, 경제 공조, 미중 갈등 등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양국 정상들은 손을 맞잡거나 때로는 온도차를 드러냈다.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리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회담은 그 궤적 위에 놓인 또 하나의 분기점이다.
이번 회담을 앞두고, 역대 한미정상회담 중 시대적 상황이나 여러 사건과 맞물려 의미가 남달랐던 정상회담들을 정리해봤다.
박정희: 파병과 경제지원...인권 문제도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직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미국을 찾아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회담했다.
그는 새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경제개발을 위한 차관을 확보하려 했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며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박정희는 독일 등 다른 통로를 통해 개발 자금을 모색해야 했다.
1965년 5월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린든 B. 존슨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베트남전에 깊숙이 발을 담근 미국은 한국의 전투병 파병을 간절히 원했고, 존슨 대통령은 전용기를 보내 박 대통령 일행을 모시는 등 이례적인 예우를 했다.
그 대가로 미국은 대규모 경제·기술 원조와 개발 차관, '사전 협의 없는 주한미군 철수는 없다'는 보장까지 내놓았다. 결국 한국은 그해 말 맹호부대와 청룡부대를 파병하며 '파병과 경제지원'이라는 실질적 거래가 이뤄졌다.
1979년 6월에는 지미 카터 대통령이 방한했다. 인권을 중시한 카터는 회담에서 한국의 정치적 억압 문제를 거론했고, 박정희는 "주한미군 철수해도 좋지만 장비는 두고 가라. 돈을 달라면 주겠다. 그러나 인권 문제에는 간섭하지 말라"고 맞섰다.
이에 격분한 카터가 참모들에게 "짐을 싸라, 당장 돌아가겠다"고 말한 일화는 지금까지 회자된다.
김영삼: 클린턴과의 '조깅 외교'
1993년 7월 한미 정상회담은 이례적인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으로 시작됐다. 미국이 외교 일정을 최대한 줄이던 시기였기에, 신임 대통령이 '먼저' 한국을 찾은 것은 한국의 중요성이 부각된 상징적 사건이었다. 회담에서는 북한 핵 문제 공동 대응, 주한미군 주둔과 방위 공약, 통상 현안, 아·태 협력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공식 의전은 간소화됐지만 국민적 관심은 뜨거웠다. 특히 두 정상은 청와대 녹지원에서 함께 조깅을 하며 친근한 모습을 보였고, 이를 두고 '조깅 외교'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러나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도 현실적 긴장과 국익의 균형은 필요했다. 1994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고 영변 핵시설 재처리 조짐을 보이자, 클린턴 행정부는 선제타격을 포함한 군사옵션을 검토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강하게 반대 의사를 밝혔고, 훗날 회고록에 "서울이 불바다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분명히 전달했다"고 적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중재로 위기는 봉합됐다. 이 사건은 한미 안보 공조와 한국의 자주 외교 판단 간의 미묘한 균형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
김대중: '햇볕정책'과 '악의 축'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직후 빌 클린턴 대통령과 만나 햇볕정책을 설명하며 대북 포용 기조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이에 우호적이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고위급 접촉 등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다. 클린턴은 퇴임 직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을 검토할 만큼 한반도 평화 구상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2001년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며 기류가 바뀌었다.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첫 회담에서 햇볕정책에 회의적 태도를 보였고, 이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대북 압박 기조로 선회했다. 당시 한미 관계는 대북 전략을 둘러싸고 엇박자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 이후, 김대중 대통령은 지지 의사를 밝히고, 아프간 파병을 단행하면서 안보 동맹은 더욱 강화됐다.
노무현: 자주와 동맹 사이, 북핵 위기 관리
2003년, 이라크전이 한창이던 시기 노무현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국은 한국의 파병을 요청했고, 국내 여론은 찬반으로 갈렸다. 노 대통령은 국익과 동맹 차원에서 파병을 수용했지만, 파병 부대의 임무를 재건 지원으로 한정하며 절충점을 찾았다.
2004년과 2005년 회담에서는 한미 FTA 추진, 주한미군 재배치, 전략적 유연성 등 민감한 현안들이 집중 논의됐다. 노 대통령은 자주국방과 수평적 동맹을 강조하며 한미 협의 과정에서 미국과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특히 주한미군의 용산 기지 이전과 평택 기지 확장은 미군 재편과 맞물려 한국 내부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06년 9월 워싱턴에서 열린 정상회담 중 노 대통령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미동맹은 한국 안보의 근간"임을 강조했다. 이어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북핵 문제를 외교적·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고, 6자회담 조기 재개와 '포괄적 공동 접근방안' 마련에 합의했다.
이는 북핵 2차 위기 국면에서 한미가 공조를 유지한 중요한 계기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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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변인 사건과 사드 배치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5월 첫 방미일정 중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로즈가든을 함께 걸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정작 국민들이 더 오래 기억한 것은 회담 성과가 아니라 '대변인 사건'이었다.
당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주미 한국대사관 인턴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정상회담 성과보다는 이 사건이 여론을 휩쓸기도 했다.
한편, 두 정상은 정기적으로 회담을 가졌으며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한미 양국은 확장억제력 운용방안에 합의하며 안보 협력을 심화했다.
특히 2016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결정은 미국과의 안보 공조를 상징하는 조치였지만, 동시에 중국과의 외교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박근혜 정부 후반기 외교 지형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문재인: 트럼프 1기와의 첫 한미정상회담

문재인 정부는 첫 해외순방지를 미국으로 정하면서 한미동맹이 무엇보다 우선에 있음을 미국에 확신시켜줬다. 2017년 6월 워싱턴에서 열린 첫 정상회담은 의전부터 이례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외국 정상 부부로는 처음으로 백악관 공식 환영 만찬을 열어 문재인 대통령 내외를 맞았다.
회담의 핵심 의제는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 재조정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대 압박'을 강조한 반면, 문 대통령은 대화 병행을 주장하며 접근법에 차이를 보였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한미 FTA 개정 문제도 논의됐고, 이후 동맹은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조율 과제에 직면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가 재개되자 문 대통령은 한반도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 의사를 전달했고, 트럼프는 이를 수용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당시 트럼프는 "문 대통령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언급했다. 그 결과 2019년 하노이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렸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됐다.
이후 대화 국면은 교착 상태에 빠졌고,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가 공개적으로 제기되며 한미동맹은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윤석열: 역대 최단기간 회담과 '아메리칸 파이'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불과 열하루 만인 2022년 5월 21일, 방한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는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 가장 빠른 시일 내 열린 한미 정상회담으로 기록됐다.
회담의 핵심 의제는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산업 공급망 협력과 확장억제 강화였다. 두 정상은 경제안보를 동맹의 새로운 축으로 삼겠다는 데 의견을 모으며, 한미 관계를 안보·경제를 아우르는 포괄적 동맹으로 격상시켰다.
이듬해 2023년 워싱턴 국빈 방문에서는 '워싱턴 선언'이 채택됐다. 양국은 핵협의그룹(NCG)을 창설하고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순환 배치를 약속하며 확장억제를 제도화했다. 이는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동맹의 두 축을 안보와 기술 협력으로 재정립한 조치였다.
당시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윤 대통령은 미국 팝송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를 직접 불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노래를 청하자 윤 대통령은 짧게 무대에 올라 노래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이 노래를 만들고 부른 미국 싱어송라이터 돈 맥클린의 친필 서명이 담긴 기타를 선물했다.
이재명: 트럼프 2기와의 만남, 실용외교 실험대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첫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8월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먼저 다뤄질 의제는 경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1기 집권 시기와 마찬가지로 방위비 분담금 증액, 농축산물 시장 개방, 무역 불균형 해소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이에 맞서 반도체·배터리뿐 아니라 조선·원자력 등 첨단산업 공급망 협력을 전면에 내세우며 절충점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안보 현안도 핵심 의제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는 가운데, 두 정상은 확장억제 강화와 외교적 해법을 어떻게 조율할지가 관건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반도 안정과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금 압박 기조를 앞세울 가능성이 커 양측 간 미묘한 시각차가 드러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번 회담은 이재명 정부가 한미 동맹의 현실적 이해와 국익 사이에서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를 가늠할 실용외교의 시험대로 평가될 전망이다.